[#하루천자] (25) 그리스인 조르바 ⑤… 여러 이름으로 삶은 이어지고

입력 2020.03.27 05:00

이번 주 ‘#하루천자’ 글감은 해외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라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그리스인 조르바》(Vios ke politia tu Aleski Zorba) 중에서 다섯 대목을 추천받아 게재합니다. 고(故) 이윤기 선생이 번역한 열린책들 출판본을 참고했습니다.

카잔차키스가 자기 삶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다음으로 꼽은 사람이 조르바입니다. ‘위대한 자유인’ 조르바를 즐거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A4 크기의 종이에 천천히 필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하루천자 태그를 붙여 올려주세요. /편집자 주

작가 카잔차키스와 실제 인물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⑤
(역자 이윤기가 꼽은 《그리스인 조르바》 속 ‘이 장면’ / 글자수 976, 공백 제외 739)

6~7개월 뒤에는 가슴이 파인 옷차림의 풍만한 여자가 그려진 엽서가 루마니아에서 날아왔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마말리가(주, 루마니아의 강냉이죽)를 먹으며 보드카를 마십니다. 유전에서 일하고 있는데 시궁창 생쥐보다 꼴이 더 더럽고 냄새가 납니다. 그러면 어때요. 이곳은 등 따뜻하고 배부릅니다. 나 같은 늙은 건달의 진정한 낙원입지요. 두목,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요? 정말 살맛이 납니다……. 달콤한 음식이랑 달콤한 여자가 시장에 널렸어요. 하느님을 찬양할지라! 그럼 이만. 시궁창 생쥐, 알렉시스 조르베스쿠 올림.’

2년이 지나갔다. 이번에는 세르비아에서 엽서가 날아왔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오라지게 추워 할 수 없이 결혼했습니다. 뒤집어 보면 사진이 있으니 얼굴 한번 보세요. 여자 하나 아주 제대로 건졌어요. 허리가 조금 뚱뚱한 건 지금 날 위해서 꼬마 조르바를 하나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 곁에 나는 당신이 준 양복을 입고 서 있습니다. 내가 낀 결혼반지는 우리 불쌍한 부불리나 겁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하느님, 부불리나의 영혼을 돌보소서! 아내 이름은 류바라고 합니다. 내가 입은 여우 목도리 외투는 아내가 혼수로 해온 거예요. 아내는 암말 한 마리, 돼지 일곱 마리도 끌고 왔어요. 웃기는 떼거리예요. 전남편 소생인 아이 둘도 데리고 왔군요. 아차, 여자가 과부였다는 이야기를 빼먹었군요. 가까운 산에서 동광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자본가를 또 하나 구슬러서 지금은 파샤처럼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럼 이만. 전직 홀아비 알렉시스 조르비치 올림.’

엽서 뒤에는 신품 양복에, 털모자, 긴 외투를 입고 멋쟁이 지팡이까지 쥔 사진이 있었다. 그의 품 안에는 스물다섯을 넘지 않았을 듯한 예쁜 슬라브 여자가 하나가 있었다. 굽 높은 장화를 신고 가슴이 풍만한 이 여자는 암말처럼 엉덩이가 큰 데다 사람이 좋아 보였다. 사진 밑에는 조르바의 꼬부랑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나 조르바, 그리고 필생의 사업인 여자. 이번에는 이름이 류바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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