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경의 테크&영화] 순수한 인간성은 총알을 꽃으로 바꾼다, 아이언 자이언트(The Iron Giant, 1999)

입력 2020.03.29 06:00

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아이언 자이언트(The Iron Giant, 1999) : ★★★★(8/10)

줄거리 : 냉전 시대인 1950년대, 작은 시골 마을에서 어머니와 사는 9살 소년 호가드. 한밤중 바깥에서 난 큰 소리를 따라 숲으로 간 호가드는 거대 로봇과 만난다. 감전돼 고통스러워하는 로봇을 구해준 호가드. 이내 둘은 마음과 말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한편, 로봇의 소문을 듣고 시골 마을을 찾아온 정부 요원 켄트는 호가드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갖가지 소동이 일어난 끝에 호가드 외에 시골 마을 사람들과 켄트도 로봇의 존재를 알게 된다. 켄트는 로봇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군대를 소집, 파괴하려 한다.

순간, 로봇이 감추고 있던 가공할 비밀이 드러나는데…...

"어떤 비밀은, 감추기에는 너무 크다"

기계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잘못한 것이지요. 불과 화약은 사람에게 문명을 가져다줬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해칠 무기가 됐습니다. 오늘날 정보통신사회에서도 여전히 기계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인공지능(AI)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와 AI를 만들고 또 악용하는 사람이 잘못이지요.

로봇과 AI의 윤리의식을 규정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또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인간성’을 부여하면 됩니다. 문제는, 가공할 힘과 능력을 가진 로봇과 AI에게 인간성 가운데 어떤 면을 부여하느냐는 것입니다.

아이언 자이언트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제공
다른 이를 배려하고 대화하고 이해하는 인간 본연의 성격을 로봇과 AI에게 가르친다면? 숱한 소설이 그린, 사람과 기계가 공존하는 유토피아가 그려질 것입니다. 다른 이를 시기하고 배척하고 말살하려 하는 인간의 어두운 성격을 가르친다면? 인류가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아닌, 돌도끼와 나무창을 사용하는 시기가 다시 찾아올 지 모릅니다.

로봇과 AI에게 부여된 인간성과 그 말로.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이 주제를 다뤘습니다. 그 중에서도 눈여겨볼 작품이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입니다.

"그 놈이 우리를 부수기 전에, 우리가 그 놈을 먼저 부숴야 해!"

영화에서 어른·폭력·반목을 대변하는 인물 켄트는 아이언 자이언트의 본질을 보려 하지 않고, 그저 파괴해야 할 공포의 대상으로 봅니다. 이해·희생을 대변하는 어린아이 호가드는 아이언 자이언트에게 인간성을 알려줍니다.

가장 파괴적인 무기, 켄트의 생각대로 공포의 대상인 아이언 자이언트가 또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 사람을 위해 희생한 이유 역시 그가 켄트보다 호가드를 먼저 만난 덕분입니다.

명대사와 명장면이 많은 이 작품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대사는 호가드의 친구(?) 딘이 말하는 "네가 무엇인지는 너 스스로 결정하는 거야"입니다. 이 대사는 또 하나의 명대사 "......슈퍼맨?"을 이끕니다.

소모뿐인 대립, 무의미한 증오가 모든 것을 파괴할 기세로 자라던 냉전 시기. 파멸의 버튼을 누르려던 인류의 손가락을 걸어잠근 것은 천진한 어린아이, 그리고 그에게 마음과 말과 인류애를 나눠받은 가공할 무기였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어린이들이나 보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화면에 단순한 구성과 대사, 대부분 권선징악인 메시지를 가져서입니다.

하지만, 단순함과 천진함이 극의 무게를 더하고 메시지의 성격을 더 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노하우가 있었기에, 브래드 버드 감독이 훗날 디즈니 픽사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등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너는 악당과 달라. 좋은 사람이지. 마치 슈퍼맨처럼" "......슈퍼맨?"

이 작품은 1999년 개봉 당시 제작비의 절반도 건지지 못하는 등 흥행에 처참히 실패했습니다. 2019년 한국 재개봉 시에도 관객수는 1만명에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바래지지는 않습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한 아이언 자이언트. / 애니메이션 갈무리
2000년대 이후 헐리우드 키드들은 이 작품을 주목하고, 숨겨진 메시지며 눈물까지 자아내는 숱한 명장면을 발굴합니다. 이를 다룬 패러디도 많습니다. 가상현실 세계를 다룬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2018)’에서도 로봇(아이언 자이언트)의 반가운 미소와 특유의 손짓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단순하기에 가장 묵직한 메시지를 가진, 아이에게는 재미를 주고 어른에게는 감동을 줄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였습니다.


키워드

관련기사를 더 보시려면,

[차주경의 테크&영화] 그러게 PC 바이러스는 무섭다니까요,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 1996)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그러게 백업 필수라니까,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 2014)'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SF8 하얀까마귀·증강콩깍지·일주일만에사랑할순없다·인간증명 (SF8, 2020)'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SF8 간호중·블링크·우주인 조안·만신 (SF8, 2020)'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불평등한 기술에 이지러진 이상향, 엘리시움(Elysium, 2013)'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스크린의 경계를 기술로 허문 '하드코어 헨리(Hardcore Henry, 2015)'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사람이 긋는 과학의 경계, 업그레이드(Upgrade, 2018)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사람·로봇을 중재하는 심장,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2001)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창조주 인간이 두려워한 것은…인류멸망보고서(2011)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30년 전 메시지에서 읽는 가상현실의 명암, 론머맨 (The Lawnmower Man, 1992)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외계 로봇 가족과의 대소동, 8번가의 기적 (Batteries Not Included, 1987)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당신의 두뇌 용량은 몇GB인가요? '코드명 J(Johnny Mnemonic, 1995)'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AI와 정보의 시대, 인간의 자아를 구분하는 것은…트랜센던스(Transcendence, 2014)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말과 사상이 풀어헤친 경계의 틈 속 낙원, 컨택트(Arrival, 2016)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비인간성에 맞서 지팡이 대신 총을 든 해리포터, 건즈 아킴보(Guns Akimbo, 2020)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2000년간의 깨달음은 곧 사랑…A.I.(Artificial Intelligence, 2001)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강철 심장에서 0과 1로 짜여진 모성애가 자라다, 나의 마더(I AM Mother, 2018)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이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아는 거예요. 그녀(Her, 2013)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 불새 2772 : 사랑의 코스모존(火鳥 2772, Space Firebird, 1980)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인식론을 비웃는 걸작 사이버펑크…알리타 : 배틀 엔젤(Alita : Battle Angel, 2018)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인간의 피조물을 넘어 구세주로…아이, 로봇(I, Robot, 2004)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이 아닌 사람의 꿈을 꾼다 '조(Zoe, 2018)' 차주경 기자
[차주경의 테크&영화] 친구인가 적인가, 스마트폰 AI 서비스 명암 다룬 '하이, 젝시(Jexi, 2019)' 차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