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항의에도 취임식에서 의연한 모습 보여

구현모 KT 체제가 30일 출범했다.

이날 서울 서초구 태봉로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주추총회에서 구현모 사장은 대표로 공식 선임됐다. 임기 3년이다.

구 대표 취임일성은 ‘기업가치 높이기’로 정리된다. 그는 주총에서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에 최우선을 두겠다"며 "성장성 높은 사업에 역량을 모아 지속 성장과 기업가치 향상을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장성 높은 사업으로는 금융, 유통, 부동산, 보안, 광고 등을 꼽았다. 새로운 먹거리를 지속 창출하겠다는 의지다.

구 대표는 주총에서 ‘많은 기대와 우려’ 목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사실이다. 구현모 대표 책상에는 해결야 할 숙제가 산적하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타이틀은 달았지만, 아직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하지 못했다. 유무선 결합 시너지 한계 속 유통경쟁력 확보도 절실하다. 무엇보다 ‘황창규 키즈'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야 한다.

구현모 KT 사장./ IT조선
구현모 KT 사장./ IT조선
KT에서만 33년간 근무한 구 사장은 회사의 강약점을 두루 파악하고 있는 인물인 만큼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구 사장은 1987년 KT에 입사해 2004년 KT 경영전략실 출자관리팀을 거치고 2005년에는 KT 기획부문 전략기획실 팀장으로 근무했다. 2014년부터 2년 가까이 황창규 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후 경영지원총괄, 경영기획부문장,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5G 승부 가를 B2B

이통3사는 2019년 4월 세계 최초 5G 상용화 이후 커버리지 및 가입자 확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출혈경쟁으로 실적에 큰 타격을 입은 만큼 2020년은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

특히 기업간거래(B2B) 5G 융합서비스 발굴이 핵심이다. 소비자가 5G를 체감할 수 있는 실감콘텐츠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은 B2B에 있기 때문이다. 이통3사 CEO가 B2B 시장 공략을 강조하는 이유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26일 주총에서 초협력을 강조하며 2020년 B2B 수익모델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구현모 사장 역시 B2B를 통해 성장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구 사장은 올 초 조직개편에서 기업고객(B2B)과 글로벌고객(B2G)을 담당하던 기업사업부문과 글로벌사업부문은 '기업부문'으로 합치고 박윤영 사장에게 맡겼다. 자신과 함께 KT 대표이사 선임 최종 후보에 올랐던 인물에 중책을 맡긴 것이다.

유통경쟁력 및 인접사업 강화

KT의 주력사업은 MIT(모바일, 인터넷, TV)다. 매출의 80%쯤을 차지한다. 유선에서는 KT가 1위지만, 무선은 SK텔레콤이 1위다. KT가 우위를 점하려면 유무선 사업 간 시너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유통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KT 광화문 사옥./ 류은주 기자
KT 광화문 사옥./ 류은주 기자
KT 고위 관계자는 "MIT는 결국 유통경쟁력에 달려 있지만 KT가 (유통경쟁력이)미미한 것이 사실이다"며 "LTE 때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며 폭발적 수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5G 킬러콘텐츠도 없고, 10기가 인터넷이 나와도 수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은 송출수수료 등의 수익이 있는 유료방송, 즉 미디어 사업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 방법으로 인수합병(M&A), 자체 투자, KT스카이라이프와의 공조 등이 있을 수 있다"라며 "SK텔레콤이 인접 사업으로 커머스(11번가, SK스토아), 보안(ADT캡스)를 키우듯이 KT도 자회사를 통해 커머스(KTH)와 보안사업(KT텔레캅)을 키우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투명경영

내부출신 CEO가 12년 만에 선임되며 KT그룹 안팎으로 기대감이 크다. 다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구 사장은 전임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인물이다 보니, ‘황장규 키즈'라는 꼬리표가 붙는 탓이다. 실제로 황 회장과 함께 정치자금법 위반 협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혐의가 아직 완벽히 풀리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CEO 리스크가 잔존한다.

이 때문에 구 사장은 CEO 후보자 면접 당시 임기 중 법령이나 정관을 위반한 중대한 과실 또는 부정행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사회의 사임 요청을 받아들이는 조건을 수용했다.

주가 부양도 숙제다. 투명한 경영이 주가 상승의 열쇠이자, 회사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KT는 최근 ‘인터넷전문은행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막히며 인터넷은행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KT의 로비 그리고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등이 결국 이번 법 통과를 막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회사의 부정적 이미지가 결국 신사업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구 사장은 최근 애널리스트와 기자 등을 만나 비공개 간담회를 가지는 등 외부적인 소통을 이어간다.

KT 고위 관계자는 "경영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으로 주가를 부양해야 한다"며 "K뱅크 정상화가 무산된 것은 구현모 사장이 ‘황창규 키즈'라는 외부의 부정적 인식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 승진자의 여유? 취임식서 의연한 구현모

"취임하기 전부터 그만두라는 얘기를 듣는 대표이사는 제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30일 오전 9시 주총장서 대표이사로 선임된 구 사장이 취임사에 앞서 던진 말이다. 주총장에서 터져나오는 KT노조 관계자 항의를 의연하게 웃으며 받아친 것.

계속되는 소란에도 담담하게 취임사를 이어갔다. 구 대표는 "지난 3개월 동안 회사 내∙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KT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구체적으로 실감했다"며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에 최우선을 두겠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이어 "세계 경제가 불안한 상황이지만 기회요인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5G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혁신은 새로운 성장 기회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그간 쌓아온 디지털 역량으로 다른 산업의 혁신을 이끌고, 개인 삶의 변화를 선도하는 한편 핵심사업을 고객 중심으로 전환해 한 단계 더 도약시키고 금융, 유통, 부동산, 보안, 광고 등 성장성 높은 KT그룹 사업에 역량을 모아 그룹의 지속 성장과 기업가치 향상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