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KT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센터 정문은 까만 옷을 입고 마스크를 낀 경호 인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KT연구개발센터 내부에도 수십명의 경호 및 안내직원들이 배치돼 있었다. 매년 수십명의 시위대가 왔기 때문에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주주들과 시위 참여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주총 시작 전부터 시위하는 풍경은 올해도 여전했다. KT민주동지회·KT노동인권센터 관계자 10여명이 주주총회를 앞둔 8시20분쯤 시위를 벌였다.

./ 류은주 기자
./ 류은주 기자
이들은 "전임 최고경영자(CEO)들의 불법경영에 대한 구상권 청구 등을 요구한다"며 "오늘 KT CEO로 정식 선임될 예정인 구현모 신임 사장은 황창규 회장과 함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당사자므로, ‘황창규식 적폐경영'과 단절하겠다고 선언하라고"고 주장했다.

주총 시간이 다가오자 정문 앞 시위는 마무리됐다. 2020년 KT 주총은 코로나19로 외부인 통제가 강화됐다. 건물을 들어가기 전 한번, 주총장에 들어가기 전 한번 더 이중으로 비접촉 체온계로 체온을 체크했다. KT는 주주총회장을 A, B, C 3개 구역으로 나눠 발열 및 기침증세가 확인된 주주는 C구역으로 안내했다. 주총장 내부도 한 칸씩 띄워 앉는 '지정좌석제'를 실시했다.

주주총회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처럼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로 주총장이 시끄러워졌다. 황창규 회장이 의사 진행을 하는 와중에도 일부 주주들의 항의성 발언이 이어졌다.

질책과 기대

지난해보다 덜 소란스러웠지만 여전히 KT 주총장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주주들로 시끄러웠다. 황 회장이 발언을 시작하자마자 "KT를 망쳐놓은 황창규 발언 그만하고 내려가라"등의 고성이 이어졌다. 일부 주주들은 작은 현수막으로 항의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는 KT연구개발센터 정문 입구./ 류은주 기자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는 KT연구개발센터 정문 입구./ 류은주 기자
황 회장은 의연하게 주총을 진행했다. KT는 이날 회장 직급을 없애 ‘대표이사 회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바꾸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이에 한 주주는 "회장이란 표현은 보통 재벌가에서 쓰는 말이며, 오너가 없는 KT에 맞는 제도가 아닌가 싶다"며 "다만 표현만 바꾸는 걸로 돼선 안 될 것 같고 새로 선출되는 대표이사가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달다"고 말하며 찬성했다.

또 다른 주주도 "항상 CEO 교체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는데, 이번엔 다른 것 같다"며 "구 후보자가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많이 했던 것 같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한 주주는 "범죄행위를 한 사람이 취임한 적이 없었으며, 황 회장 역시 KT 왔을 때는 범죄 이력이 없었다"며 "이런 사람이 대표이사가 될 수 없도록 정관을 변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회장은 "신임 대표는 KT 이사회가 역량과 자질, 리스크 등을 검증한 후 기업가치를 성장시킬 최적의 적임자로 승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을 이 자리에서 답변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받아쳤다.

주주발언 때는 KT 주가 하락에 대한 질책과 주가 부양을 요청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 주주는 "금융자산 절반쯤을 KT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지금 2만원도 안 되는 주가를 올려 주셔야 한다"며 "회사를 위해 고민하고 주가를 올려줄 방법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또 다른 주주도 "자사주를 매입하든지, 배당금을 높이든지, 돈 안 되는 자회사를 팔든지 제발 주가를 올려달라"며 "주가만 올려주면 이사로 누구를 올리든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황창규 회장이 주총을 진행하는 중에 현수막을 펼치며 항의하는 한 주주./ 류은주 기자
황창규 회장이 주총을 진행하는 중에 현수막을 펼치며 항의하는 한 주주./ 류은주 기자
새로운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한 주주는 "11명 중 7명의 이사를 교체하는 것은 다시 판을 짜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대가 크다"며 "KT가 새롭게 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다른 주주도 "여러 회사를 투자하고 있지만, 30년 넘게 다닌 분이 대표이사 되는 것은 처음 본다"며 "경영목표를 달성해, 주주들의 소원인 주가를 반드시 올려달라"고 당부했다.

발언권을 얻지 못한 일부 주주들의 항의 속에서 KT 주주총회는 마무리됐다. 이날 부의된 정관 일부 변경, 대표이사 선임, 제38기 재무제표 승인, 이사 선임 및 감사위원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경영계약서 승인, 임원퇴직금 지급규정 개정 등 총 8개 안건은 원안대로 처리됐다.

신임 사내이사에는 기업부문장 박윤영 사장과 경영기획부문장 박종욱 부사장이 뽑혔고, 신임 사외이사에는 강충구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박찬희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여은정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표현명 전 롯데렌탈 사장을 선임했다. 2019 회계연도 배당금은 주당 1100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4월 22일부터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