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했던 VR, 코로나 기점으로 ‘재도약’ 노려

입력 2020.03.31 06:00

2016년 HTC 바이브와 오큘러스 리프트의 출시를 기점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가상현실(VR) 기술은 고성능 HMD(머리에 장착한 후 VR을 즐기는 기기)의 보급 실패와 하드웨어 기술의 한계, 콘텐츠 부족, 높은 진입 장벽 등으로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교육, 제조업, 헬스케어 등 일부 산업 분야를 빼면 VR 관련 산업은 반쯤 변방으로 밀려났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 VR 기술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다시 재조명 받는다. 행여 발생할 수 있는 감염을 막기 위해 재택·원격 근무가 확산하고, 자가 격리가 늘어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VR 기술의 장점이 부각되는 것이다.

VR로 확대되는 새로운 협업 및 커뮤니케이션

지난 18일 VR을 이용한 가상 공간에서 진행된 HTC VEC 행사 모습. / HTC 제공
HTC는 매년 연례행사로 진행하던 ‘바이브 에코시스템 콘퍼런스(VEC)’의 올해 행사를 코로나 19 때문에 진행할 수 없게 되자 행사 플랫폼을 VR로 전환해 진행했다. 18일 열린 이 행사의 대부분 발표는 3차원 가상공간에서 진행됐다. 발표자는 물론 참석자들도 가상의 아바타를 만들어 가상의 발표회에 참여해 의견을 교환하는 등 ‘풀 VR 콘퍼런스’로 열렸다.

VR 기술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소규모 미팅은 물론 대규모 콘퍼런스 현장의 모습을 바꿀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페이스북은 2014년 오큘러스를 20억달러(당시 기준 2조1500억원)에 인수한 후 2017년 VR의 영역을 소셜 네트워크로 확장한 ‘페이스북 스페이스’를 선보였다.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가상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 간 커뮤니케이션을 구현하려는 했다.

VR 기술은 기존의 단문 텍스트(메신저), 음성(콘퍼런스 콜), 영상(화상회의)으로 구현하기 힘든 ‘현장감’과 ‘몰입감’을 제공한다. 코로나19로 재택·원격 근무가 확대되며 다양한 협업 솔루션이 활용되지만, 현실 세계에 모여 진행하는 미팅보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하소연이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실제 사무실에서 한데 모여서 협업하는 듯한 ‘현장감’을 제공하고, 업무 집중도와 협업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실감 VR 협업 솔루션’의 개발과 제품 출시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전진수 SK텔레콤 5GX서비스사업본부장 겸 클라우드 게임 사업담당은 "SK텔레콤은 5G와 VR 기술에 기반한 가상 협업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있다"며 "최근 시행 중인 재택근무에도 구성원간 회의, 기획 및 개발 회의 등에 일부 VR 기술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서 그는 "재택 기간 중 음성과 영상을 통한 기존의 소통 방식을 쓸 수 있지만, 갈수록 구성원들이 지루해하고 따로 논다는 느낌을 받는다"라며 "반면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해 진행하는 VR 미팅은 참가자들에게 실제 사무실에 모인 것 같은 동질감과 소속감을 제공해 반응이 좋다. 일반 음성이나 화상으로는 불가능한 입체적인 소통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라고 덧붙였다.

5G 시장 성장과 확대에 꼭 필요한 ‘실시간 VR’

국내외 주요 이동통신 회사들이 차세대 5G 네트워크의 핵심 콘텐츠로 삼고 있는 것 중 하나가 VR이다. 가장 기초적인 360도 영상은 물론, 본격적인 3D 기반 VR 콘텐츠와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기가급 속도로 대량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5G 네트워크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는 시범적으로 운영한 5G 네트워크를 통해 상당수 주요 경기가 전 세계 시청자에게 실시간 VR 콘텐츠로 제공된다. 올해 열릴 예정이었던 도쿄 올림픽에서도 더욱 진보한 5G 기반 VR 방송이 송출될 예정이었다.

지난 2월 KT는 5G 기반 8K VR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였다. / KT 제공
현재 5G는 혁신적인 속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까지 무선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나 콘텐츠의 상당수가 기존 LTE망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만큼 5G 가입을 이끄는 당위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용, 장비, 구축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5G 네트워크 인프라의 확충이 더디게 진행되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다. 이를 뒤집을 수 있는 확실한 ‘킬러 콘텐츠’ 마련이 절실하다.

다시금 주목받는 VR은 5G 대세론에 힘을 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요 기술이자 콘텐츠다. VR 기반 협업 및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려면 5G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속 데이터 네트워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5G 서비스를 시작한 국내 이통사들이 VR 기술과 콘텐츠, 활용 서비스에 꾸준한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비대면 협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코로나19 시대에 5G 산업과 가장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이 VR을 비롯한 증강현실(AR), 융합 현실(MR)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 재도약 기회 맞은 VR 콘텐츠 산업

근래 출시된 VR 게임 중 가장 잘만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밸브 코퍼레이션의 ‘하프라이프: 알릭스’ 게임 화면. / 벨브 유튜브 채널 갈무리
개발자들의 VR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비트세이버’처럼 VR만의 장점을 살린 콘텐츠들이 하나둘씩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 고품질 VR을 즐기기 위한 고성능 시스템과 전용 하드웨어의 가격도 저렴해지고 다양화되어 진입 장벽도 많이 낮아졌다. 다시금 VR 콘텐츠 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인다.

23일 출시된 밸브 코퍼레이션의 VR 전용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Half-Life: Alyx)’가 그 대표적인 예다. 폭넓은 팬층을 거느린 ‘하프라이프’ 시리즈의 최신작인 데다, VR 특유의 다소 이질적인 움직임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현한 조작성, 가상현실만이 구현 가능한 각종 상호 반응과 그로 인한 높은 몰입감으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등장한 VR 게임 중 가장 잘 만든 작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고정된 화면 속에서만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기존의 일반 콘텐츠와 달리, VR 콘텐츠는 처음부터 제3의 공간에 직접 들어가 1인칭 시점에서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요즘처럼 외출을 자제하고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VR 콘텐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몰입감’과 ‘해방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게임처럼 집이나 실내에서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시장 전반이 커지는 상황이다. VR 콘텐츠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인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제공하는 셈이다.

VR 디바이스의 확산과 보급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최대 숙제다.

VR 업계 관계자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상용 VR 기기가 출시된지 벌써 수년이 흘렀지만, 일부 전문가나 개발자, 얼리어댑터를 제외하면 가격 탓에 보급이 더디다"며 "VR 기기가 스마트폰처럼 널리 보급만 될 수 있다면 기존 협업 방식의 근간을 확실하게 뒤바꿀 파격적인 기술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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