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파트너 프로덕션I.G와 함께 ‘차세대 수작업 애니메이션'이라 평가받는 ‘솔 레반테(Sol Levante)’를 제작했다. 4K 해상도와 HDR 기술을 융합한 이 작품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세밀한 그림으로 보는 이의 전율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넷플릭스가 차세대 4K HDR 애니메이션을 실험적으로 만든 까닭은 수십년간 정체돼 있는 수작업 애니메이션의 혁신을 불러 일으키기 위함이다. 솔 레반테를 만든 사이토 아키라 감독 역시 고품질 애니메이션에 대한 갈망이 강한 인물이다.

4K HDR 애니 솔 레반테는 혁신과 거리를 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바라보는 포인트는 작품의 등장으로 인해 양질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탄생되는 계기를 만들어 내는데 있다.

"4K HDR 수작업 애니메이션 기술은 창작자의 숨결이 살아 있는 그림과 연출 의도를 시청자에게 다이렉트로 전달하는 것이다"


사이토 아키라(사진·齋藤瑛) 프로덕션I.G 감독은 IT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4월 2일 공개되는 세계 최초 4K HDR 애니메이션 ‘솔 레반테(Sol Levante)’ 콘텐츠가 지닌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프로덕션I.G는 한국에서 ‘공각기동대' 시리즈로 유명한 제작사다. 사이토 감독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작 ‘이노센스'와 ‘스카이 크롤러' 등 극장판 제작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차세대 수작업 4K HDR 애니메이션 ‘솔 레반테(Sol Levante)’. / 넷플릭스 제공
차세대 수작업 4K HDR 애니메이션 ‘솔 레반테(Sol Levante)’. /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가 공개한 ‘솔 레반테'는 이제까지 수작업 애니메이션 작품이 도전하지 않았던 4K UHD 해상도로 얼마나 세밀한 그림을 표현해 낼 수 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살아있는 높은 수준의 캐릭터 묘사와 움직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다. 이제까지 이런 세밀한 그림을 애니메이션 콘텐츠로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4K UHD 해상도로 그려낸 솔 레반테의 화면은 높은 명암비로 사실성과 입체감을 더해주는 ‘HDR(High Dynamic Range)’기술이 더해져 그림의 생생함을 배가시킨다.

넷플릭스와 일본 애니메이션 파트너사인 프로덕션I.G가 4K HDR 수작업 애니메이션에 도전한 까닭은 오랜시간 정체돼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혁신 일으키고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또 수작업 애니메이션에 대한 업계가 생각하는 한계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이토 감독에 따르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극장 애니 ‘이노센스'가 만들어졌던 2004년 즈음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작업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최선단에 서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디지털 기술을 그림의 품질을 높이는 것이 아닌, 싸게 많은 그림을 양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후, 몇몇 창작자들이 애니메이션 그림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4K HDR 애니메이션 ‘솔 레반테(Sol Levante)’. / 넷플릭스 제공
4K HDR 애니메이션 ‘솔 레반테(Sol Levante)’. / 넷플릭스 제공
사이토 감독은 "넷플릭스가 정체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보이지 않는 벽을 걷어냈다"라고 말한다.

사이토 감독은 넷플릭스의 투자로 고품질 애니 작품을 갈망하던 창작자의 갈증을 해소했다고 설명한다. 이제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프로젝트를 넷플릭스가 실행 가능하게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4K HDR 애니 ‘솔 레반테'는 고품질 애니 콘텐츠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창작자의 가슴을 두드리는 촉매제다.

사이토 감독은 "자신만의 선(그림)을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싶어하는 창작자에게 있어 4K HDR 애니 제작 기술은 멋진 도구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이 아닌 해외 창작자는 4K HDR 애니 기술을 선입감없이 받아 들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 애니업계는 새로운 기술에 보수적이고 반응도 느리기 때문에 기술 도입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창작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테크 블로그'를 통해 솔 레반테 제작 기술과 노하우, 관련 파일을 공개한다. 해당 기술과 파일은 제작자만이 아닌 누구나 볼 수 있게 공유된다.

넷플릭스는 4K HDR 애니 ‘솔 레반테'를 공개한 뒤 세계 애니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계획이다. 4K HDR 애니 기술을 이용한 장편, 시리즈물 제작 계획도 아직은 세워지지 않은 상태다.

◇ 4K HDR 애니 제작 위해서는 "완전한 디지털 전환이 필요"

사이토 감독에 따르면 솔 레반테 제작에는 수작업 애니의 필수품인 ‘종이'가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 모든 그림은 태블릿을 통해 그려지며,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진 그림은 페인팅과 편집 앱을 통해 움직이는 영상으로 완성된다.

미야가와 하루카(사진·宮川遙) 넷플릭스 크리에이티브·테크놀로지 엔지니어는 "일반 애니 제작환경에서 4K 해상도로 그림을 그려내려면 종이가 커져야되고 큰 종이를 넘겨가며 다음 그림을 그려야 되는데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설명한다. 또 "종이를 고해상도로 스캔하면 잡선과 종이질감 등 불필요한 데이터가 부가되는데 이를 없애고 수정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4K HDR 애니메이션은 그림 제작부터 태블릿이 사용되는 등 모든 제작 공정이 디지털화 됐다. / 넷플릭스 제공
4K HDR 애니메이션은 그림 제작부터 태블릿이 사용되는 등 모든 제작 공정이 디지털화 됐다. /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와 프로덕션I.G가 제안한 4K HDR 애니 제작 기술에는 전용 태블릿과 프로그램은 필요없다. 사이토 감독 자신도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펜슬로 그림을 그린다고 밝혔다.

그리는 도구는 비교적 저렴하게 입수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화면을 편집하는데 들어가는 기자재는 비싼 편이다. 4K 해상도로 동영상을 편집하고 화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선 고가의 워크스테이션이 필요한 상황이다.

솔 레반테는 초당 데이터 용량도 만만치 않게 높다. 미야가와 엔지니어에 따르면 솔 레반테는 초당 24장의 그림을 사용한다. 파일은 16비트 포맷 파일(TIFF)을 사용하는데 초당 1.2기가바이트에 달하는 고용량을 자랑한다.

초당 24장의 그림은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나마 고품질이라 평가받는 극장 애니메이션에서 조차도 초당 9장~12장이 보통이라는 것이 미야가와 엔지니어의 설명이다.

사이토 아키라 프로덕션I.G 감독. / 넷플릭스 제공
사이토 아키라 프로덕션I.G 감독. / 넷플릭스 제공
솔 레반테는 그림을 그리는 단계부터 HDR을 의식하고 컬러 작업을 진행한다. 미야가와 엔지니어에 따르면 최근 HDR 기술을 도입한 애니 콘텐츠가 증가세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작품은 일반 sRGB와 SDR 포맷으로 만들어진 것을 최종단계에서 HDR로 변환한 것 뿐이다.

반면, 솔 레반테는 제작 이전 기획 단계서부터 HDR을 의식하고 화면 구성을 한다. HDR 환경에서 어떤 색이 적절할지 판단해가며 컬러 작업을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미야가와 엔지니어는 "솔 레반테를 보고 4K HDR 애니에 관심을 보이는 창작자가 등장할 것으로 본다. 넷플릭스는 사이토 감독처럼 고품질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가진 제작자와 손잡고 실제 작품 제작을 위한 일을 진행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