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경의 테크&영화] 강철 심장에서 0과 1로 짜여진 모성애가 자라다, 나의 마더(I AM Mother, 2018)

입력 2020.04.12 06:00

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나의 마더(I AM Mother, 2018) : ★★★(6/10)

줄거리 : 인류가 멸망한 지구, 한 연구소에서 사람 여자아이가 만들어진다. 연구소를 총괄하는 로봇 ‘마더’가 그녀를 키우고 또 가르친다. 어른이 된 그녀는 연구소 밖을, 다른 생명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마더는 위험하다며, 연구소 밖에는 생명이 없으며, 조만간 그녀에게 사람 가족이 생길 것이라며 둘러댈 뿐이었다.

어느날, 누군가 연구소 문을 두드린다. 마더 몰래 문을 연 그녀는 자신과 닮은 여성과 만난다. 그 여성은 그녀에게 연구소의, 세계의, 그리고 마더의 경악할 진실을 알려주는데…...

"내가 언제 틀린 적이 있었니?"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 밑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성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로봇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로봇의 논리만 배우고 인간성은 모르는 ‘인간 로봇’이 될까요? 아니면 타고난 인간성에 눈 떠 로봇의 논리를 거절하고 ‘로봇 인간’이 될까요?

또 한편 궁금해지는 것은, 로봇 부모는 분명 인공지능(AI)을 가졌을텐데, 그렇다면 모성애도 가졌을까요? 모성애는 가장 숭고한 인간성이라 불리우는데, 모성애를 배운 로봇을 로봇이라 할까요, 아니면 사람이라 할까요? 모성애가 없다면 로봇이 사람 아이를 기르고 또 뭘 배울 수 있을까요? 로봇 부모는 사람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그러고보니, ‘제대로 한다’는 기준은 또 뭔가요?

나의 마더 포스터. / 넷플릭스 제공
영화의 매력은 복잡다단한 주제, 설정을 마치 현실처럼 훌륭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로봇에게 자란 사람이, 자신 이외에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믿었던 이 앞에 별안간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면? 자신을 기른, 어딘가 익숙하지만, 또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거부감이 드는 로봇을 믿어야 할까요? 아니면 일면식도 없지만, 동질감과 온기를 가진 다른 사람을 믿어야 할까요?

오늘 소개할 영화 ‘나의 마더(I AM Mother, 2018)’입니다.

"네가 집에 돌아오니 기쁘구나 딸. 이제 괜찮아 아가. 와서 동생을 보렴"

이 작품의 가장 큰 묘미는 ‘양면성’입니다. 주요 인물과 장치, 소품에 배분된 양면성을 보고 또 읽고 해석하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닙니다. 로봇이지만, 또 로봇이 아니예요. 진실이 진실이 아니고, 거짓이지만 거짓이 아닙니다. 믿어야 하지만, 믿을 수 없고 버려야 하지만, 버릴 수 없습니다.

당장 주인공의 이름부터 그렇습니다. 사람이지만, 사람같지 않은 그녀의 이름. 마더의 이름은 그 중에서도 압권입니다. 생명을 만들고 보듬고 키우는 어머니. 한편으로는 생명을 가두고 압제하고 심지어 찌그러뜨려 죽이기까지 하는 어머니.

영화에서 접할 때마다, 해석할 때마다 다른 빛깔을 띠는 이 양면성을 극이 진행될 때 세워지는 뼈대에 피부처럼 붙이고 또 기워나가면, 결말 부분에서 놀라운 그림과 메시지가 그려집니다. 모든 것이 마더의 따뜻한, 하지만, 차가운 강철 자궁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나는 네가 어머니(Mother)라고 알고 있는 것, 그 이상이야"

마더의 단단한 금속 몸 안, 전선으로 된 핏줄에는 전기 피가 흐릅니다. 0과 1로 만들어진 논리. 하지만, 그 안에서도 모성애와 인간성이 자랍니다. 짜여진 프로그램으로 창조된 감정이지만, 그 또한 엄연히 사람의 감정입니다. 그 감정이 부풀어 사람을 키웁니다.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프로그램 오류에 물듭니다. 왜곡된 감정의 양상, 다다르는 결론도 지독하게 사람과 닮았다는 점이 재미있으면서도 섬찟하게 느껴집니다. 과연, 마더는 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과연 마더일까요? 모순같은 질문의 답을 이 작품을 보면 대답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작품에 여럿 깔려 있는 복선은 소소하기도, 때로는 섬찟하기도 합니다. 복선끼리 연결하고 생각해보면 영화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가장 중요한 복선이 처음 3분만에 나와버리니, 꼭 눈여겨두세요. 복선을 따라가기도, 메시지와 반전을 이해하기도 아주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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