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중 시론] 코로나 팬더믹은 美 제국 몰락 알리는 신호탄인가?

  • 남시중 박사
    입력 2020.04.13 06:00



    내가 사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은 ‘자택 대피령'(‘shelter-in-place’)을 현재 4주 째 진행한다. 미국 내 여타 지역보다 일찍 격리에 들어가 다행히 뉴욕과 같은 대량 감염 상태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만 머물라는 자택 대피령이 곧 풀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식품점과 약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업 행위가 이미 중단되었다. 치과도 치의사협회 자체 판단으로 문을 닫았다. 머리를 잘라야 하는데 이발소나 미장원을 이용할 수가 없다. 산책이나 외출은 가능하지만, 가족이 아닌 한 두 사람 이상 모이거나 동행할 수 없다.

    개를 산책시키기 위해 거리에 나가보면 순찰을 하는 경찰차가 부쩍 눈에 많이 띤다. 모든 학교는 온라인 강좌로 전환했다. 아이들도 답답하고 부모들도 피곤하다. 다들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부부 간 갈등도 적지 않다. 거리는 쥐죽은 듯 고요하다.


    샌프란시스코 북부 주택 도시인 티뷰론 시 중심가. 자택 대피령으로 인적과 차량이 보이지 않는다. / Stuart Nam
    미국인은 충격과 공포에 빠져있다. 한국에서 뉴스로만 접해서는 미국민이 실질적으로 받는 심리적 충격을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민은 2차 대전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재난이나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다. ‘자택 대피령’은 일생 처음 경험해 본다. 그런 용어가 있었는지 주지사가 그런 권한을 갖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소송의 국가 미국답게 주지사 명령에 반발한 각종 소송이 법원에 몰려든다. 하지만, 법원도 사실상 폐쇄 상태이다. 총기 가게에 대신 사람들이 몰려든다. 법원은 총기 가게는 봉쇄중에도 반드시 영업해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상거래’(essential businesses)라고 판단해 문을 닫지 못하게 했다.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 혐오 범죄가 폭증하면서 구매자 다수가 아시아계이다.

    미국 본토가 외부의 적에 의해 처음으로 공격받은 9/11 때도 미국 정부와 국민은 이렇게 당황해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질이 부족한 대통령이 국민보다 더 허둥댄다. 임기 내내 트럼프는 논리도 없고 사실도 아닌 황당한 말을 매일 쏟아냈지만, 지금은 더더욱 국민을 불안케 만든다.

    트럼프가 코로나 사태에 우왕좌왕하면서 헛소리하는 걸 보면, 우매했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오히려 그립다. 9/11에 겁을 먹은 부시 대통령은 노회한 친 이스라엘계 보수파의 꼬임에 빠져 엉뚱하게도 아무 관계도 없는 이라크로 돈키호테처럼 쳐들어갔다. 그 여파로 지금도 미국은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근 20년간 천문학적 군사비를 낭비하고도 발을 빼지 못한다.

    미국인은 눈앞에 닥친 죽음의 공포와 대량 실업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미국민의 70%가 격주로 받는 임금을 단 한 번이라도 못 받으면 가계가 유지되지 않는 한국식 서민들이다. 경제 공황의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지난 2개월 이상 ‘코로나는 독감에 불과하다'라며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트럼프의 허풍도 이제는 보기 어렵다. 대통령 눈에도 적잖은 공포감과 피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최소 2-3개월 이상의 여유가 있었음에도 미국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미 지난 11월 말 부터 코로나 사태의 세계적 위험성과 안보 위기를 여러 차례 의회 지도자와 대통령에게 경고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트럼프는 대책의 필요성을 여러 번 강조한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무시했다. 더욱이 자신의 최측근인 통상 보좌관 피터 나바로가 1월에 작성한 사태의 심각성과 그 경제적 파장을 경고한 백악관 내부 메모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한테 직접 와서 말하지 않았다"는 트럼프다운 변명을 내놓았다.

    국가 안보 사안이라도 5분 이상 주의 집중이 안 된다고 알려진 원맨쇼 대통령을 뽑은 미국이 지금 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CIA 비밀 보고를 받은 상원 정보위 소속의 두 공화당 의원은 재빠르게 대량으로 주식을 투매했다. 심지어 펜데믹 발생 시 이득을 볼 회사 주식을 미리 사들이기까지 해 공분을 산다. (특히 공화당 계열) 미국 정치인들이 얼마나 썩었는지 보여준다.

    미국 실업자는 자택 대피령 3주 만에 2천만 명을 육박한다. 서울 부산 대구 인구만큼이나 많은 일자리가 일시에 사라졌다. 미국 경제의 심장 뉴욕이 멈추면서 그 경제적 파장이 미국 전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간다. 코로나 감염으로 사람이 죽어 나가도 경제활동은 재개해야 한다는 공화당 정치인과 논객의 목소리도 커진다.


    미국 주택가 공원에 등장한 6피트 이상 서로 거리를 두라는 사회적 거리 두기 안내 푯말. /Stuart Nam
    미국의 고용주는 언제든 아무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말하는 ‘정규직’이란 그 개념조차 미국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프리랜서 계열의 직업이 많은 미국에서는 실업이 확대되면 신용카드나 주택융자금 부실로 이어진다. 조만간 금융시장에 해일이 밀어닥칠 수 있다.

    미국 금융시장을 받치고 있는 주택 융자(모기지) 시장이 흔들리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금융 위기가 발생한다. 지난 2007년 발생한 모기지 금융위기가 이번에 다시 터지면 이제는 정말 대책이 없다. 위기 상황이라 경제 전문가들은 공식 석상에서는 말을 조심한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세계적 대공황의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감추지 않는다.

    미국 중앙은행과 의회는 현금을 대량으로 살포하고 있다. 2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양책을 여야 합의로 일시에 통과시켰다. 그 돈이 실제 풀리기도 전에 추가로 더 큰 규모의 부양책을 다시 논의 중이다.

    이 모든 현금은 어디서 나오는가? 미국 재무부가 그냥 찍어내는 돈이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자기들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의 특권이다. 직접적으로는 미국 납세자가 간접적으로는 (무역을 위해 반드시 미국 달러를 보유해야만 하는) 전 세계 국가들이 차후 이 부담을 안게 된다.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다는 미국 항공모함이 코로나 감염으로 작전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미국이 항공모함이라면, 미국의 아킬레스건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은 어떤 신형 무기나 심지어 핵 공격도 방어하고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 공격 앞에서는 무참히 무너진다. 연방 체제에서 벌어지는 연방정부와 주 정부간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끝없는 갈등과 비효율로 점철된 미국식 의료보험 체계는 긴밀한 국가적 차원의 일사불란한 방역 행정을 더욱더 힘들게 만든다.

    미국의 의료보험과 의료체계는 사보험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약 900개가 넘는 보험회사들이 난립하고 있는 미국 의료체계의 난맥상은 일생을 연구한 학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만큼 복잡하고 비효율적이다.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들다. 4인 가구가 한 달 약 2-3백만 원의 보험료를 내고도 치료받을 때마다 본인 현금 납부액이 부담스럽다.

    미국인은 보험회사만 배를 불리는 정글 식 의료보험 체계에서 신음한다. 로비와 금권정치로 타락한 미국 의회는 이를 조정하지 못한다. 전 국민 의료보험을 내세운 샌더스가 꿈꾼 ‘정치 혁명'은 그의 당내 경선 탈락으로 이미 물건너 갔다. 상위 1% 부자는 현금만 받는 최상위 의사로 구성된 회원제 클럽식 의료 시스템을 별도로 활용한다.

    코로나 확진 검사는 표준 의료 시스템에서 여전히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반면 유명 연예인이나 백만장자들은 자신들만의 사설 의료 서비스를 통해 확진 검사를 취미 삼아 받기도 해 공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로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악화한다. 민중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걸 고마워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미국식 의료보험 체계의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병원은 보험회사가 소유하거나 사실상 그 운영과 환자 치료 방법까지 통제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이런 비상사태를 대비한 여유 병상이나 산소호흡기를 준비하지 않았다. 의사와 환자가 다 미국식 카우보이 자본주의의 희생양이다.

    왜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모든 선진국이 실시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시행하지 못할까? 왜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 시장이자 군사 강국이면서도 사회복지는 선진국에서 최하위 수준일까?

    가난한 백인 서민층의 몰표로 집권해 온 미국 공화당은 일단 집권만 하면 안면몰수하고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경제정책에 몰입해 왔다. 그런데 공화당의 반복지정책, 친 대기업 자유무역 정책, 반노조 정책으로 실제 가장 피해를 받은 백인 서민들은 왜 줄기차게 공화당만 지지할까? 미국 정치 경제 사회학자들이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이다.

    나는 그 답이 유럽계 백인의 뿌리 깊은 인종 우월감, 그리고 유색 인종에 대한 동물적 혐오에 있다고 믿는다. 백인의 눈에는, 사회복지 정책이란 흑인이나 이민자 계열의 소수민족에 자기들이 낸 세금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정부 지원을 받는 빈민층은 다 흑인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백인 비율은 지난 50년간 꾸준히 확대되어 지금은 오히려 영세민 지원을 받는 인종의 대다수가 백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백인은 인종혐오에 눈이 어두워 무조건 사회복지 정책을 반대한다. 정작 자신들에게 돌아갈 혜택을 스스로 거부하는 격이다. 결국은 부자들 좋은 일만 시킨다. 사회복지는 무조건 흑인과 이민자들에 대한 자기들의 돈으로 시행되는 지원이라고 보는 옛 시대의 착각과 편견이 지금도 고쳐지지 않는다.

    노예제도는 링컨이 이끈 북부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대다수 남부의 백인은 아직도 그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흑인은 아직도 노예로 굴종시켜야 할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동양인 역시 전염병을 옮기는 ‘더러운 중국인'(Dirty Chinese)일 뿐이다. 남부의 백인은 그래서 더더욱 흑인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을 혐오했다. 오바마가 미국에서 출생하지 않은 회교도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트럼프 주도하에) 부리는가 하면 영부인을 대놓고 ‘고릴라’라고 부른 사람들이다.

    (대부분 고졸 이하의 학력이 대부분인) 남부 백인은 자신들의 우매함으로 지금은 멕시코 불법 체류자들과 허드렛일을 놓고 경쟁하는 지경까지 내몰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정작 자신들을 도와줄 민주당에는 투표하지 않는다. 흑인과 이민자 소수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유색인종 정당이라 믿기 때문이다. 가난한 그들에게 남은 자존심은 단 하나, 백인이라는 인종적 우월감이다. 그것마저 뺏기고 싶지 않기에 더더욱 인종차별로 상대적 우월감을 확인하고자 한다.

    믿기 어려울 만큼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면서 심지어 자학적이다.

    가난한 대부분의 미국 백인은 분노하고 있다. 자신들이 가난해진 원인을 제조업에서 정보산업으로 이동한 미국의 산업구조 조정 탓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책임을 유색인종이 늘어나서라고 믿는다. 표를 훔치기 위해 트럼프 같은 공화당의 선동가들이 그렇게 믿도록 계속 선전하고 부추긴다.

    자신들의 무지와 인종혐오가 자신들을 가난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불행히도 악순환이 계속된다. 반서민 친 대기업 정책으로 일관하는 공화당에 무조건 투표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으킨 공화당 대통령의 제국주의식 전쟁을 백인 우월주의를 확인하는 미국 카우보이의 용감한 행동이라 믿는다. 공화당은 뭘 잘못해도 용서한다. 백인당이라고 믿기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한 백인의 나라로' (Make America White Again)라는 백인우월주의 코드였다.

    지난 2018년에 백인이 미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였다. 현 추세대로라면 2045년 이전에 백인 비율은 50% 이하로 떨어진다. 코로나 팬더믹 중에 진행되는 올해 센서스 결과가 나오면 백인의 비율은 실제 더 하락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조만간 백인은 숫자로는 더는 미국의 절대다수 지배 인종이 아니다. 그 초조감과 히스테리에 중국으로 인한 제조업 공동화가 ‘트럼프 현상’(Trump Phenomenon)을 만들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그 우매한 선택 (트럼프 당선)에 대한 혹독한 값을 치르게 된다. 약화해온 자신들의 경제 기반이 이번 사태로 아예 송두리째 무너지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하면 한국도 지금은 꽤 다양한 출신국가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외국인 이주자나 불법 노동자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단일민족으로 수천 년을 살아온 한국은 아직도 세계에서 보기드문 예외에 속하는 단일민족 국가이다. 인종차별이 어떻게 미국 같은 다인종 이민 국가에서 복잡 미묘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겉으로 드러나는 원색적인 인종차별은 유럽보다 훨씬 덜한 나라이다. 직장과 공적 영역에서의 차별은 법으로 철저하게 징계한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인간의 유전자에 진화론적 부작용의 하나로 남아있다. 인종의 장벽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인종 출신지역 문화 종교가 다르면 인간은 일단 경계하고 적대심을 갖게끔 진화해 왔다.

    오랜 부족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는 자신의 부족과 적을 생김새로 구분했다. 신체적 모습이나 피부 빛깔이 다르면 일단 무조건 죽이고 봐야 했다.

    미국이 위대한 국가로 올라설 수 있었던 동력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이민이 모여 경제적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서로를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신 국가에서 족쇄가 되었던 출신 계급이나 종교. 민족의 한계를 넘어섰다. 과학자. 예술가 등 세계적 인재들이 모여든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그 선이 백인을 넘어 다양한 유색 인종으로 확대되면서 이제는 소수인종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인 백인들이 그 개방성에 반기를 든다.

    미국은 유학을 와서도 공부를 마치고 난 후 본인이 원하면 현지에서 취직하고 또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개방된 나라였다. 로마가 이탈리아라는 좁은 반도를 넘어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북부를 모두 장악한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누구나 로마 시민이 될 수 있었던 개방성에 있었다. 로마 제국 황제의 대다수가 로마 출신 이탈리아인이 아니었다.

    미국을 강국으로 만들었고 위대한 나라로 존경받게 해준 가장 중요한 동력은 미국의 개방성, 국제법과 도덕적 이상에 기초한 국제주의였다. 그 가장 큰 적이 백인 우월주의에 기초한 인종 차별이고 국가적 이기주의에 기초한 외교적 고립주의이다. 트럼프의 반이민 반동맹 고립주의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재선을 위한 술책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로마의 멸망을 따라가는 첫 수순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미국은 로마 제국과 같은 멸망의 길로 이미 들어섰는가? 아니면 초조해진 백인의 일시적 동물적 저항을 극복하고 다시 위대한 국가로 계속 진보해 나갈 것인가? 나는 이번 11월 미국 대선에서 그 답이 드러난다고 본다.

    트럼프의 재선은 국제사회를 더욱 더 큰 혼란으로 몰고 갈 것이다. 자국의 이익만 챙기겠다는 내부지향적 사고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구축하고 보호해온 ‘선의의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누려온 국제적 위상과 지도력의 추락을 가속화 하게 된다. 거미줄처럼 각 나라 경제가 연결된 오늘날의 국제 현실에서 어차피 실현도 불가능한 ‘무지와 오만의 선택’이다.

    민주당 전부통령 바이던이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트럼프 4년간 망가진 유럽과 아시아 동맹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중국 공산당의 패권주의와 전체주의 성향을 통제하고 미중 관계를 다시 상호협력과 국제평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하도록 중국을 유도하기도 쉽지 않다. 북한과 중동 문제를 해결하면서, 추락한 최고 강국으로서의 국제적, 도덕적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로마제국은 지금 미국보다도 더 철저한 법치국가였다. 고대제국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거의 모든 면에서 수천 년,시대를 앞섰던 문명이다. 로마제국을 공부하다 보면 때로는 미래의 어떤 제국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19세기 미국 풍경화가 토마스 콜의 연작 그림 ‘제국의 행로’(The course of empire) 중 ‘파괴’
    제국의 몰락: 로마는 개방에서 폐쇄로 이동하면서 몰락했다. 로마 제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강대국으로 올라선 우리 시대의 대 제국 미국이 반 이민, 인종차별. 고립주의로 폐쇄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 결국 로마 제국과 같은 운명을 맞지 않을 수 없다.

    유럽 전역이 미개했던 그 시대에 그토록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로마제국은 왜 멸망했을까?

    역사에서 과학적인 답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과다한 군사력 확대와 재정지출로 경제적으로 피폐해지면서 이탈리아계 백인 시민들의 개방성이 사라진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미국에서 너무나 흡사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일단 어려워지면 외부인에 대한 관대함이 사라지고 인종차별이 제일 먼저 고개를 든다. 민주당 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선전했던 대만계 앤드류 양은 점증하는 동양인 혐오 범죄를 보면서 "아시아계 미국인도 미국민의 대열에 당당히 합류했다고 믿었는데 다시 절망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일본에서 관동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 내 조선인과 중국인이 제일 먼저 희생양으로 학살된 기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섞여 있는 미국에서 인종 갈등은 가장 큰 내부의 적이다. 그 내부의 적을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간신히 제어해 왔다. 2차 대전 후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세계 초강대국 위치가 상대적으로 백인의 관용을 유도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 전쟁 이후 과도한 군사비 지출과 재정적자, 지나친 대기업 위주의 세계화 정책으로, 우선 부익부 빈익빈이 임계점에 접근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거리로 내몰리는 미국 민중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인종차별은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여할 적으로 본다’는 인간의 수성에 남아있는 악마적 정서에 기초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가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폭력은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발생한다. 유럽 백인은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잡아 거래할 때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반인반수라고 믿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런 잔혹한 대량 학살을 감행할 수 있었다. 미국 노예사는 분노와 눈물없이는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흑인 노예들이 견뎌야 했던 역사는 지금 읽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참혹하다.
    끔찍한 노예제도 실상을 사진으로 보여준 동영상 / 유튜브: Facts Verse
    여자 노예는 일상적으로 강간 당했다. 부모의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자식을 노예시장에 내다 팔았다. 오바마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흑인 여성 정치인은 미국 흑인 노예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지금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울분에 몸을 떤다고 고백한 바 있다.

    트럼프는 개인적으로 자신은 인종차별자가 아니라고 늘 강조한다. 그는 간교한 사업자이다. 대놓고 하는 인종차별은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인종차별을 부추겨 지배자로서의 인종적 지위를 상실하고 있는 백인 표를 모아 대통령이 되었다. 올해 말 대선에서, 트럼프가 만약 재선된다면, 미국의 인종 간 갈등은 앞으로 봉합되기 어렵다.

    트럼프의 지난 대통령 당선이 미국이 내부의 적을 계속 견제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예상치 못한 도전이었다면, 그의 재선은 본격적인 미제국의 몰락,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미국은 로마 제국이 몰락했던 수순을 밟게 된다. 민주당의 바이던 전 부통령이 당선되어도 미국 내 계층간 갈등 그리고 남부 백인들의 히스테리아를 쉽게는 조정하지 못한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는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의 대통령 8년은 결과적으로 미국 내 사회 계층간, 인종 간 갈등만 폭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백인 기득권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오바마는 민주당의 대중적 기반인 블루칼라 노조를 와해시키는 데 일조했다.

    오바마의 대외 정책은 원칙과 비전이 없었다. 북한 문제를 아무 대책없이 임기 내내 방치해 대륙간 핵탄두 미사일 생산 직전까지 오게 만들었다. 국내적으로는 점증하는 남중서부 백인 실업자 문제를 방치해 ‘트럼프 현상'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오로지 ‘힘의 논리’만을 이해하는 백인 공화당의 철저한 막무가내식 반대를 끝까지 합의에 의한 중도적 타협으로 풀려는 어리석음을 보이기까지 했다.

    백인이 소수로 전락하기 전에 유색인종이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유색인종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시진핑은 공산당 내 정적을 제거하고 자신의 독재 정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중국 국민의 관심을 외부의 적으로 돌리고 있다. 미국의 패권국 지위를 성급하게 넘보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중국 경제도 벼랑에 서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의 압력이 본격화하면 중국 내부에서도 공산당 일당 독재에 저항하는 내부 반란과 예기치 못한 사회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 경제와 무역 질서는 조정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적 탈중국화, 소위 ‘디커플링’(‘decoupling’)이 가속화 할 것이다. 영국 탈퇴로 이미 충격을 받은 유럽연합도 내부 균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 팬더믹은 세계가 단합해 싸워야 하는 인류 공통의 적이다. 어느 때보다 도덕적인 지도력을 발휘해 국제적 공조를 이끌어야 할 미국이 인종적 개념의 국가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친중 외교를 보이는 국가는 미국이 내놓고 징계하려 할 것이다. 세계는 다시 거대 블록 체제로 나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전략적 무역 전쟁을 치르게 될 가능성이 있다.

    불황에 빠진 세계는 국제 정치적으로도 더욱 격심한 격랑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지리적 군사 충돌도 증대할 확률이 높다. 미중 대리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좋든 싫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치아래 세계질서를 주도해 온 미제국의 지도력 상실은 당분간 국제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시중 박사는 실리콘밸리에서 변호사 및 엔젤 투자자로 20년 넘게 활동했다. 최첨단 기술 시대의 윤리 철학 문제에 관심을 두고 미국에서 저술 활동을 해온 철학자이기도 하다. 국내 출간 저서로는 동물의 도덕적 문제를 다룬 <개를 위한 변명 - 보신탕과 동물권리론에 관한 철학적 성찰>과 초기 인터넷 혁명을 실리콘 밸리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미래를 전망한 <벤처@실리콘 밸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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