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A.I.(Artificial Intelligence, 2001) : ★★★★☆(9/10)
줄거리 : 먼 미래, ‘사랑’하는 감정을 가진 아동형 로봇 데이빗이 만들어진다. 데이빗은 스윈튼 부부의 집에 입양된다. 불치병에 걸려 냉동 처리된 아들 마틴을 그리워하던 스윈튼 부부는 점차 데이빗에게 마음을 열고, 끝내 그를 아들로 맞는다.
어느 날, 기적처럼 마틴이 깨어난다. 스윈튼 부부는 마틴과 살기 위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데이빗을 버린다. 마틴처럼 사람이 되면 스윈튼 부부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데이빗은 친구 로봇 테디, 지골로를 만난다.
우여곡절 끝에 데이빗은 자신을 만든 하비 박사, 가공할만한 진실과 마주친다. 충격에 휩싸인 데이빗은 잠에 빠진다. 2000년 후 깨어난 데이빗을 맞은 이는…...
"사람이 아니라 죄송해요. 제발 버리지 말아주세요. 허락해주시면 사람이 될게요"
인공지능(AI) 기술은 곰씹을수록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소재입니다. ‘사람’이 ‘만든’ ‘지능’ AI. 과연 AI는 사람과 어디까지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형형색색, 복잡 다단해 같은 사람조차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뭇 감정과 감정들을 AI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영구에 가까운 기억력, 눈 깜박할 사이 천문학적인 양의 데이터를 이해하고 다루는 분석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AI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그렇다면, AI는 사람의 이해 범위를 넘어 감정을 색다르게 해석하고 또 행동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AI가 이해한 감정은 진심일까요? AI의 행동 또한 진심일까요?
이처럼 순수하면서도 엉뚱한, 그러면서 날것인 감정이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영화 A.I.의 주인공, AI를 탑재한 로봇 데이빗이 스윈튼 부부에게 사랑받기 위해 이리도 처연하게 애 쓰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태초에, 신은 그저 사랑하기 위해 아담을 만들지 않았나요?"
데이빗은 아이처럼 무구한 채로 태어납니다. 그의 세상에는 오직 스윈튼 부부, 엄마와 아빠만 가득 차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 받고 싶어합니다. 나아가 아이도 부모를 사랑하고 싶어합니다. 아이로 태어난 AI도, 이 AI를 가진 로봇 데이빗도 예외는 아닙니다.
데이빗이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모를 스윈튼 부부가 아닙니다. 데이빗은 로봇이지만 인공 지능과 프로그래밍된 감정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이 사람과 로봇이라는 높디 높은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스윈튼 부부의 친아들 마틴이 돌아오자, 이들 가족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동시에 한때는 친아들이던 데이빗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파괴됩니다. 사랑의 빛은 바래고 부모와의 관계는 끊어집니다. 데이빗의 감정과 존재도 희미해집니다.
사랑과 함께 외로움을 배운 데이빗은 친구 로봇을 찾아 외로움을 달래고, 함께 자신을 깨닫기 위한 여행을 떠납니다. 사랑과 함께 질투를 배운 데이빗은 질투에 눈 멀어 실수를 거듭합니다. 사랑과 함께 이해를 배운 데이빗은 끝내 스윈튼 부부와 친구를 이해합니다.
사랑을 포함한 감정을 배운 데이빗은 그제서야 사람으로, 아니, 사람보다 더욱 사람다운 이로 거듭납니다.
"나는, 나로 존재했었어"
우리는 우리가 만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설령 그것이 물건이든, 생각이든, 심지어 사람이든간에요. 우리는 흔히 감정의 유무가 사람과 로봇(AI)을 구분한다고 말합니다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입니다.
사랑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왜곡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보다 훨씬 농밀한 사랑의 감정을 논리적으로 말하고 증명하는 AI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해야 사랑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냐고요? 답은 여러 개 있겠습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는 것 또한 아주 유효한 답 중 하나입니다.
결말에 다다를수록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이 저절로 눈물샘을 쥐어짜고야 마니, 손수건이나 휴지를 꼭 준비하세요. 이 영화를 보면 으레 흐르는 그 눈물이 우리가 사람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증거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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