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경의 테크&영화] 말과 사상이 풀어헤친 경계의 틈 속 낙원, 컨택트(Arrival, 2016)

입력 2020.05.03 06:00

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컨택트(Arrival, 2016) : ★★★★☆(9/10)

줄거리 : 딸을 잃고 상실감 속에 사는 언어학자 루이스. 어느날 지구 곳곳 상공에 외계 비행선 12척이 나타나고, 정부는 루이스에게 외계인과의 접촉·통역을 의뢰한다. 다리 7개인 오징어 모습을 한 외계인 헵타포드는 다행히 싸움보다 대화를 선호하는 종족이었다.

루이스, 햅타포드는 교감하며 서로의 언어를 배운다. 하지만, 외계인을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급기야 헵타포드가 지구에 ‘무기를 주러 왔다’고 말한 점이 알려지자, 중국은 공격받기 전에 이들을 공격하자고 주장한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루이스는 비로소 헵타포드의 언어와 사고 방식을 이해한다. 루이스가 깨달은 헵타포드의 말의 진실, 그 속에 인류의 미래가 담겼는데……

"언어는 문명의 기초다. 사람을 묶는 끈이다. 그리고 분쟁의 첫 무기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되레 이천냥 빚을 지기도 합니다. 모든 이해가 말에서 생기고, 또 모든 오해가 말에서 비롯됩니다. 수만년 전 인류가 서로 모일수 있도록 도운 것, 문명을 만들고 유지하고 기록할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말입니다. 바벨탑을 쌓을 정도로 교만에 빠진 인류에게 신이 내리친 철퇴 또한 말이라는 점이 사뭇 재미있습니다.

컨택트 포스터 / 유니버설픽처스
그런 말이라서, 그런 말이기에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기록해온 말은 인류가 이 땅에서 사라진 후에도 어떻게든 남아있고, 또 어떻게든 전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수만년 전 인류의 기록을 지금 보고 있듯. 말은 과거의 주춧돌이 지금의 기둥이, 나아가 미래의 서까래가 되고, 이 모두를 묶는 매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매개야말로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사상의 세계로 이끌 것입니다.

그래서 말은 시간을, 나아가 공간까지 초월할 수 있는 기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어떻게 기적이 되냐고요? 그깟 말에 어떤 힘이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영화 ‘컨택트’를 보면 대번에 느낄수 있습니다.

"네 삶의 너머에도 네 이야기는 있단다"

이 영화는 아주 영민하게도 매력적인 SF 요소를 통해 말의 기적을 소개합니다. 누구나 한번쯤 가져본 의문이 아닐까요? 이 넓은 우주에 외계인은 있을까, 그 외계인은 어떻게 말을 할까. 그 말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와 외계인은 서로 이해할까, 증오할까 등등등.

그리고 이 SF 요소에 말(언어)과 양자역학이 더해집니다. 말은 사람의 사상을 만듭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우리는 말로 기록하고 주고받습니다. 따라서 말은 사상에 큰 영향을 줍니다. 자연스레 외계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말, 언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다시 주제인 말로 돌아와 말로 빚어진 갈등을 묘사합니다. 외계인의 말을, 무기를 준다는 말을 적의로 오해한 세계 각국 정부는 공격을 시도합니다. 그 결과는 어떤 의미에서는 명확합니다.

외계인의 말을 배우고 사상을 이해한 루이스는 깨닫습니다. 말은 정말 무기였습니다. 사상의 지평선을 넓힐,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직접 다룰 수 있게 해줄, 과거와 지금과 미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운명과 더욱 진중하게 대면하게 해줄 가공할 무기가 바로 말이었습니다.

그 무기를 손에 쥔 루이스의 선택은 전율과 감동, 그 자체입니다.

"시작과 끝은 내게 무의미해. 결과를 알고 있지만, 나는 모든 순간을 반기겠어"

과연 말이란 타임머신도, 양자의 끈도 될 수 있는 가공한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이해하면 더 이상 시공간은, 운명은 무의미해집니다. 여기까지 다다른 후 눈을 감았다 뜨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야로 전혀 다른 사고를 하고, 전혀 다른 사상을 갖게 됩니다.

정작 사고의 경계는 있었지만, 시공간과 운명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하루 한달 일년의 시작과 끝, 나아가 삶과 죽음 사이에도 경계는 없습니다. 이 영화의 구성과 전개 과정에도 경계는 없습니다. 그러니 영민하달수밖에요.

이 영화의 실제 제목은 ‘컨택트(Contact, 접촉)’이 아니라 ‘어라이벌(Arrival, 도착)’입니다. 이를 두고 관객간 갑론을박이 오고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스스로는 사뭇 인상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역시 경계를 둘 일은 아닙니다. 메시지가 중요하지, 메신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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