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동시에 기회를 얻은 기업이 있다. 유무선통신장비 제조기업 ‘텔라움'이다.

케이블모뎀 제조 및 판매업이 주력한다. 유료방송 시장성장이 정체되자 기존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나섰다. 자동복구형 누전차단기 ‘스마트분전함'이 바로 그것이다.

IT조선과 만난 김형엽 텔라움 대표는 ‘스마트분전함'을 시장에 내놓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회고했다. 텔라움의 스마트분전함은 통신사의 무인기지국 전원함에 설치되는 ‘자동복구 누전차단기’에 사물인터넷(IoT)기술을 결합해 원격으로 전원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자동 복구한다.

김형엽 텔라움 대표/ 류은주 기자
김형엽 텔라움 대표/ 류은주 기자
김 대표는 "국내 통신장비 생태계를 보면 국내 중소기업들이 중계기 외에 할 만한 부품들이 별로 없다"며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한 5G 시대 글로벌 장비업체들이 생태계를 장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먹거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통신장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가장 기초적인 ‘전원부'를 노리자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6~9월까지 낙뢰로 인해 차단기가 떨어지는 경우가 매우 많다"며 "이통사의 유지보수 업체들도 비가 와서 차단기가 떨어질 때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직접 사람을 보내야 하는 것을 불편사항으로 꼽았다"고 덧붙였다.

규제샌드박스로 기사회생한 ‘스마트분전함'

그렇게 텔라움은 유지보수 인력을 급파하지 않고도 전원공급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스마트 분전함' 개발에 착수했다. 시작은 SK텔레콤과 함께 국책과제로 진행했다. 문제는 국책과제가 끝난 뒤였다. 시장에 출시하려면 인증을 받아야 하는 데 관련 기준이 전무했던 것이다.

현행 전기생활용품안전법에는 ‘원격 제어 기능이 있는 자동복구 누전차단기’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다. 전기사업법상 원격 누전차단기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기준도 없다.

김 대표는 "국책과제를 끝내고 사업을 시작하려고 봤더니, 관련 법 규정이 없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며 "1년간 전기안전공사, 기술표준원, 중소기업혁신개발원 등을 쫓아다녔지만, 모두 책임을 서로 핑퐁(떠넘기기)하다보니 결국 사업화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다. 규제샌드박스라는 제도가 생긴 것이다.

그는 "규제샌드박스라는 제도 덕분에 ‘스마트분전함'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며 "임시허가를 받은 소식이 알려지며 곳곳에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지난해 낙뢰 다발성 지역과 유지보수 출동이 어려운 SK텔레콤의 무인기지국을 대상으로 제품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검증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했고, 정식계약을 맺고, 5월부터 납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5G, 포스트코로나 시대 더 중요해진 원격관리 솔루션

텔라움의 ‘스마트분전함'은 5G와 코로나19에 필요한 기술로 주목받는다. ICT 규제샌드박스 심위위도 5G 시대 급증할 무인기지국의 효율적·안정적인 관리·운영을 위해 임시허가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불필요한 원격 출동 방지를 통해 통신사당 연간 약 15억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형엽 텔라움 대표/ 류은주 기자
김형엽 텔라움 대표/ 류은주 기자
김 대표는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중국 OEM 납품 일정이 미뤄지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스마트분전함이 주목받는 기술이 됐다는 점은 기회로 바라본다.

김 대표는 "당초 차단기는 20억원, 분전함 시스템은 30억원 정도 매출을 낼 것으로 예상했는데, 코로나19로 제품 공급과 설치 공사가 중단되면서 일정이 2달쯤 순연됐다"며 "하반기 정상적 투자가 이뤄져 55억원 가량의 매출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장석영 과기정통부 차관도 텔라움을 찾아 격려했다. 장 차관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로 비대면 서비스의 필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텔라움의 ‘무인기지국 원격전원관리 시스템’은 비대면 서비스의 모범사례라고 추켜세웠다.

김 대표는 "차단기에 문제가 생겨서 출동할 때 사람 1명이 가는 것이 아니라 상주 인력과 함께 움직이는데, 스마트분전함을 설치하면, 상주 인력 자체가 필요없게 된다"며 "사람 대 사람이 대면하지 않는 것도 ‘비대면'이지만,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없도록 하는 것도 ‘비대면'의 큰 측면으로 볼 수 있으며, 정부도 향후 수출 등의 지원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텔라움은 향후 통신사뿐만 아니라 보안업체, 지자체 등으로 공급처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해외 진출도 노린다.

김 대표는 "통신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적용하면, 스콜과 천둥번개가 심한 동남아 지역에서도 적용하려 할 것이다"며 "우선 미국과 일본 등 통신선진국을 목표로 삼고, 향후 동남아를 타깃으로 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남북경협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며 "남북경협이 잘 돼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이뤄진다면 철도차량 시스템 시장도 텔라움이 노리는 분야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