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 5일 어린이날을 맞아 게임 마인크래프트로 구현한 청와대에 어린이를 초청했다. 누구나 오픈 소스로 공개한 청와대 맵을 내려받아 방문하게 했다. 문 대통령 내외 캐릭터가 등장한 영상도 공개했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유명 영상 창작자들도 관련 콘텐츠를 게시했다.

코로나19로 어린이를 직접 초청한 행사가 어렵자 비대면으로 한 기획 자체는 참신하다. 소수 어린이만 참여하던 오프라인 행사를 온라인으로 더 많은 어린이가 참석하도록 했다는 점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게임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온라인 개학 등으로 집에만 머물고,‘게임만 하냐’는 부모 눈치를 봐야 했던 어린이를 위로하기에 딱 좋은 행사다.

그동안 ‘질병’ 취급을 받던 게임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킨 것도 긍정적이다. ‘게임은 문화다’라는 정부 슬로건에도 맞는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세계보건기구(WHO)도 코로나19 확산 후 게임을 적극 활용하자고 태도를 바꾼 마당이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 우리나라가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 나라라면 모르겠다. 청와대가 하는 상징적인 행사에 꼭 외산 게임만 활용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게임 업계는 상징성이 큰 이런 행사 무대를 외국 콘텐츠에 내줬다. 부끄러워 해야 한다.

행사에 우리 게임을 소개했다면, 참여한 어린이들 가운데 한국을 빛낼 게임 제작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친구도 있었을 것이다. 되레 어린 꿈나무들에게 ‘우리나라는 이런 게임을 만들지 못해’라는 자괴감을 들게 할까 괜한 걱정도 하게 된다.

마인크래프트는 스웨덴 기업 모장이 내놓은 게임이다. 단돈 3만원만 내면 평생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뚝딱’ 만들도록 돕는 게임이다. 인기 유튜버로 이름을 날리는 ‘도티’, ‘잠뜰’ 등이 활약하는 배경이기도 해, 아이들에게 더욱 친숙하다. 폴란드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학생 대상 게임과 교육을 결합한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마인크래프트 랜드마크 창작 대회를 개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모장은 함께 개발한 마인크래프트 기반 교육용 콘텐츠를 무료로 배포했다.

한국에서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을 만들 수는 없는가. 업계 전망은 회의적이다. 주요 게임사가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과금 모델 위주의 MMORPG 장르와 같이 돈 되는 게임 개발에만 집중하는 풍토이기 때문이다.

정작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 소형 독립(인디)게임사는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벅차다. 게임계 부익부 빈익빈이 너무 심해진 탓이다. 좋은 게임을 만들어 대박 신화를 꿈꾸기에는 문이 너무 좁고 위험도 크다. 최근 만난 인디게임사 대표들은 입을 모아 "한국에서 인디게임사를 운영하기 것이 너무 어렵고, 점점 마케팅 비중이 커져 애써 만든 게임을 이용자에게 노출시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묻히는 인디게임사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마인크래프트에 구현한 청와대 / 오시영 기자
마인크래프트에 구현한 청와대 / 오시영 기자
그래서 창의적인 인디게임사를 지원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온다.

모장도 출발은 작은 인디게임사였다. 마이크로소프트에 25억달러(3조원)의 가격으로 인수될 당시 직원 수는 40명쯤에 불과했다. 인수합병으로 ‘대박’을 터뜨려 성공 신화를 썼다.

한국에서 이런 인디게임 성공 신화가 나오려면, 더욱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히 현금을 더 쥐어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나 대형 게임사가 앞장서 좋은 인디 게임이 묻히지 않는 채널을 만들어 주고, 기업 운영과 관련한 제반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

청와대 어린이날 이벤트는 국내 게임을 소개할 좋은 기회였다. 마인크래프트처럼 어린이들에게 친근한 국산 인디 게임이 없는 게 현실이지만 기획단계라도 한번 찾아보는 노력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마인크래프트' 게임을 활용하더라도 국산 콘텐츠를 병행했다면 어땠을까. 이를테면 어린이들이 ‘카트라이더'로 청와대 주변을 질주하는 이벤트 말이다. 물론 참여자가 제한될 뿐만 아니라 엉뚱한 뒷말도 나올 수 있겠다. 그래도 정부가 게임업계 기를 세워주고 게임산업 육성 의지를 밝히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게임 업계도 이참에 자성해야 한다. 게임산업이 K팝과 K드라마를 합친 것보다 크며, 전체 콘텐츠 수출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정작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없다. 업계가 지나치게 과금 일변도 게임에만 몰두해 ‘마인크래프트'처럼 재미와 교육성을 함께 잡은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그 결과 마땅히 받아야 할 평가마저도 받지 못한 것은 아닌가. 업계는 스스로 되돌아 봐야 한다. 이런 반성이 없다면 다음에 이와 비슷한 이벤트 무대가 열려도 주연은 또다시 ‘포켓몬고'나 ‘동물의 숲'이 될 수밖에 없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