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트랜센던스(Transcendence, 2014) : ★★★(6/10)

줄거리 : 불세출의 천재 과학자 윌 캐스터. 인류의 역사와 모든 지식, 학습·사고 능력까지 가진 양자컴퓨터 ‘핀’을 개발하던 그가 반과학단체의 습격을 받고 사망한다. 윌의 연인 에블린은 핀에 윌의 뇌 속 정보를 업로드(저장)해 그를 살려내는데 성공한다.

윌의 동료들은 양자컴퓨터 핀과 융합, 트랜센던스가 된 윌이 정말 사람이었던 윌인지 혼란에 빠진다. 몸 없이 정신만 남은 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해 지식의 한계를 꾸준히 넘어선다. 나아가 윌은 신의 영역 ‘OO와 OO’으로까지 발을 디디는데……

"인공지능도 사람처럼 욕구를 가지고 있지"

수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어려운 계산과 작업도 척척 해내는 컴퓨터. 우리는 과연 컴퓨터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사실 초기의 컴퓨터는 사람보다도 계산 능력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면서 컴퓨터의 능력은 꾸준히 향상됐고, 이윽고 사람처럼 생각하고 추리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등장했습니다.

트랜센던스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트랜센던스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컴퓨터를 쓰다보면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장 공간과 연산장치를 가진 컴퓨터. 이거 알고 보면 사람의 ‘뇌’와 똑같지 않나요? 우리는 정보를 뇌에 저장하고 그 정보를 뇌로 연산하니까요. 그렇다면, 컴퓨터의 저장 공간에 사람의 기억과 지식을, 연산장치에 사람의 판단과 사고 능력, 나아가 감정까지 이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게 가능하다고 가정하면 또 궁금해집니다. 컴퓨터에 이식된 사람은 영생하는 걸까요? 아니, 그 이전에 컴퓨터에 이식된 사람을 정말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무한에 가까운 저장 공간을 가진다면? 나아가 인류의 역사가 쌓아온 지식을 단숨에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신과 대등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 컴퓨터(든 사람이든)는 무엇부터 하려 할까요?

영화 ‘트랜센던스’의 주제입니다.

"우리는 그를 Save(구하다, 혹은 저장하다)할 수 있어!"

누군가 말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다른 모두에게 잊혀졌을 때’라고. 반대로 많은 이들이 누군가의 모습이며 삶의 흔적, 생각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는 어떤 의미로는 영생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또 그렇게 생각하기도 애매합니다. 살아있는 이라면 새로운 삶의 흔적과 생각을 남겨야 합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이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죠.

숱한 예술가, 철학자들이 남긴 지식은 수천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미 작고한 이들의 유산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곱씹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컴퓨터와 AI의 발전이 수천년간 이어져온 이 양상을 바꿀 낌새가 보입니다. 유산을 ‘새로 만드는 것’이지요.

최근 과학계는 예술가가 남긴 그림과 화풍을 분석해 AI에 적용, 새로운 예술 작품을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유명 가수의 목소리를 AI가 재현해 새 음반을 내기도 했습니다. 같은 기술로 작고한 소설가의 새 소설도, 땅에 묻힌 철학자의 새로운 사상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됐습니다.

신기한가요? 혹은 거부감이 드나요? 당사자가 만든 것이 아닌데, 되려 당사자보다 더 잘 만든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할까요?

이것을 인정한다면, 언젠가 AI가 나를 대체하고 나처럼 행세할 우려도 있지 않을까요?

AI가 보편화된 현대 시대, 무엇보다 중요시할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미 ‘딥 페이크(Deep Fake, 사실처럼 꾸며진 거짓)’의 무한한 가능성과 해악, 가공할 양면성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 영화 덕분에 딥 페이크가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줄 만합니다.

"처음부터 나였어"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개성 넘치는 초반, 흡입력 있는 중반과 달리, 종반과 결말을 진부하게, 나아가 흐지부지하게 그립니다. 머리통만한 큰 수박을 갈랐는데, 속살이 주먹 하나정도만 있는 느낌? 한도 무제한인 신용카드를 갖게 된 사람이 정작 편의점에서 딸기우유 하나 사 마신다는 느낌? 용두사미 영화의 전형입니다.

그렇더라도 참신한 주제, 화려한 화면과 예측불허(중반까지는) 전개만으로도 이 영화는 즐길 만합니다. 주제가 비슷한 ‘코드명 J(Johnny Mnemonic, 1995)’, ‘리미트리스(Limitless, 2011), ‘루시(Lucy, 2014)’ 등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