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작의 신약이야기] 포스트코로나 시대, 비대면 임상시험의 시작

  • 이영작 LSK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
    입력 2020.05.15 15:19 | 수정 2020.05.15 15:20

    미국 국립보건원(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의 클리니컬트라이얼(clinicalTrials.gov)에는 33만4000개쯤의 임상시험이 등재돼 있다. 그 중 5만여개 임상시험이 환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발생한 코로나19 대전염병은 이 모든 임상시험을 혼란에 빠뜨렸다. 환자가 임상시험 시행 병원에 갈 수 없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Eli Lilly)는 모든 신규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진행 중인 임상시험은 신규 참가자 등록을 잠정 중단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 바이오 제약기업은 일라이릴리뿐만이 아니다. 메디데이터(Medidata) 분석에 따르면 2020년 3월 현재 1년 전과 비교해 진행 중인 임상시험이 65% 줄었다. 코로나19가 신약개발에 준 충격 규모를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싸움은 머지않아 끝날 것이다. 선진국 제약산업은 신약개발과 임상시험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면(對面) 중심의 임상시험에서 벗어나 비대면(非對面) 임상시험으로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프리 코로나19 시대, 임상환자에는 주도권 없어

    코로나19 이전 시대 임상시험은 바이오 제약회사가 병원과 의사를 중심으로 조건에 맞는 환자를 모집하고 신약을 투여해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관찰했다. 임상시험은 병원·의사·제약회사 중심으로 이뤄졌을 뿐이다. 환자는 임상시험 모집대상자며 피시험자(被試驗者,study subject)일 뿐이다. 환자에게 주도권은 없다.

    코로나19사태로 환자가 병원에 갈 수 없게 되면서 임상시험 중단사태가 벌어졌고 제약회사는 엄청난 재정적 손해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에 참가하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임상시험 중단 내지는 지연조치를 취하게 됐다.

    임상시험 약물이 중단되면 금단현상, 질병의 악화 등으로 임상시험 참여자 건강과 생명에 해를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외적 원인으로 급작스럽게 중단될 수 있는 임상시험은 반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 임상시험도 비대면 시대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등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 거의 4-5년 간격으로 온다. 임상시험은 대면이어야 한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다음 팬데믹 때는 바이오 제약업계의 경제적 재정적 타격을 말할 것도 없고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가 다시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비대면 임상시험이 진행된다면, 코로나19 대전염병 같은 사태에도 불구하고 중단 없이 진행될 수 있는 임상시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미국의 엘리고 헬스 리서치(Elligo Health Research)에 따르면 이미 선진 바이오 제약업계는 팬데믹이 환자와 임상연구에 끼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전통적인 병원 중심, 의사중심, 스폰서 중심의 대면 임상시험에서 비대면 원격임상시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예를 들면 e소스 데이터 매니지먼트(e-Source data management), 리모트 모니터링(remote monitoring), site-less patient visits, 리얼월드 데이터(real world data) 방법이 도입될 것이고 환자의 편의와 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시대가 열린다.

    임상시험 데이터는 환자의 병원 방문과정에서 수집된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근거자료(source data)라고 한다. 병원 연구 간호사는 근거자료에 근거해 스폰서·CRO가 준비한 데이터 양식에 의해 데이터센터(한국의 경우 대부분 CRO가 임상시험 데이터센터를 관리한다)에 제출한다.

    제출된 데이터는 CRO에서 다양한 품질관리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CRA(Clinical Research Associate)가 병원을 방문해 데이터 정확성을 근거자료와 비교해 검증과정을 거친다. 이 검증 과정이 모니터링(monitoring)이다. 이 전체 과정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엘리고 보고의 요지다.

    비대면 임상시험에서는 데이터 수집이 대부분 병원외부에서 일어난다. 환자에게 지급된 원격진료 스마트 디바이스 또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의하여 수집된다. 수집된 데이터는 익명화 과정을 거쳐 CRO 데이터센터에 제출된다(실명의 근거 데이터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과정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이런 데이터를 e-소스 데이터라 부른다. 근거자료가 CRO에 제출되기 때문에 데이터 품질관리와 정확성 검증은 모두 CRO에서 일어난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 케어는 집에서 임상 간호사(nurse practitioner, NP) 방문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임상간호사가 약물투여도 할 수 있다. 또 필요한 경우 연구자와 원격진료에 의해 임상 간호사가 약을 처방할 수 있으며 소변 혈액 채취 등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진단 역시 인근 병원에서 가능할 것이다. 이런 비대면 임상시험에서는 환자가 연구자가 있는 병원에 가는 일이 최소화될 것이다.

    비대면 임상시험은 가상(virtual) 임상시험, 병원 없는(site less) 임상시험, 탈 중앙(decentralized) 임상시험 등 다양하게 불린다.

    물론 모든 임상시험이 비대면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건강인 대상 1상 임상시험, 초기 항암 임상시험, 외과임상시험, 방사선 치료 임상시험, 코로나19와 같이 전염성 치료제 임상시험 등은 대면 임상시험으로 계속되겠지만 많은 임상시험이 비대면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서서히 움직이던 비대면 임상시험이 코로나19라는 도화선(catalyst)으로 인해 급격하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대면 임상시험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의료계 반발로 원격의료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대전염병으로 정부에서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해 10만건 이상의 원격의료가 시행된 것으로 보고됐다. 코로나19가 계기가 되어 원격의료 가능성이 국내에서도 보여졌고, 식약처가 비대면 임상시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도 임상시험의 선진화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영작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통계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통계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미국 국립암연구소(NIH), 국립신경질환연구소, 국립모자건강연구소 등에서 데이터 통계분석과 임상연구를 담당했다. 1999년 한국으로 귀국해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를 겸임하며 2000년도에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LSK Global PS)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임상CRO협회장을 역임해 국내 CRO산업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세계 3대 권위 인명 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도 등재됐다. 현재 서경대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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