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경의 테크&영화] 당신의 두뇌 용량은 몇GB인가요? '코드명 J(Johnny Mnemonic, 1995)'

입력 2020.05.17 23:04

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코드명 J(Johnny Mnemonic, 1995) : ★★★(6/10)

줄거리 : 가까운 미래, 과학을 이용해 부흥한 인류는 되려 과학 때문에 멸망할 위기에 처한다. 컴퓨터 네트워크는 인류의 지식을 해킹하고 나아가 대체하려 한다. 전자기기가 내뿜는 전자파는 불치의 신경병이 돼 인류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주인공 죠니는 해킹할 수 없는 두뇌에 정보를 저장, 운반하는 밀사다. 저장 공간 확장을 위해 어릴 적 기억을 지운 그는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은퇴, 기억을 되찾을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임무는 너무나 위험한, 나아가 인류의 생존 여부까지 결정할 중대한 것이었다.

거기에 죠니가 저장한 정보가 두뇌에 과부하를 줘 그의 수명을 갉아먹는다. 모든 것이 친구, 혹은 적이 된 상황. 죠니의 마지막 선택은……

"나는 거의 80GB 용량을 머리에 저장할 수 있소"

살면서 생기는 ‘인상깊은 기억’들은 수십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반면 ‘사소한 기억’은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기억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평생 기억해야 한다면, 그것도 아주 힘든 일이겠습니다.

한편으론 잘 잊혀지지 않는 기억처럼 책과 지식, 정보를 평생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한번 읽은 수학 교과서, 외국서적, 석학의 논문 등을 한번만 읽고도 평생 기억할 수 있다면……

코드명 J 포스터
정보를 머리 속에 저장할 수 있다면, 거기에 한계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천재들과 그들의 불가사의한 업적을 떠올리면, 머리에 정보를 저장하는 한계가 없을 듯도 합니다. 그렇지만, 열역학 제2법칙을 고려하면 또 분명 한계가 있을법도 합니다.

25년 전, 1995년에 이 주제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코너에서 잠깐 소개하기도 했던,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젊은 시절 주연한 영화 ‘코드명 J(Johnny Mnemonic, 1995)’입니다.

"데이터? 꺼내주지. 두개골 드릴과 겸자가 있으니"

이 영화의 주인공 죠니는 두뇌를 저장 공간으로 쓰려고, 그 공간을 넓히려고 어렸을 때 기억을 모두 지웁니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추억을 임의로 지우고, 그 공간을 저장 공간으로 쓰려던 것이지요. 과거를 지운 그는 스스로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USB 메모리’가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살아있는 USB 메모리치고는 용량이 퍽 작다는 점입니다. 죠니는 영화 속에서 가장 우수한 정보 운반자로 꼽히지만, 단지 ‘80GB’ 용량만 머리에 담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80GB는 2시간 분량 고해상도(풀 HD) 영화 여남은편 혹은 고음질 음악을 천곡쯤 담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사람의 두뇌 용량이 고작 손톱만큼 작은 USB 메모리 하나만 못하다니요. 게다가 그는 원래 용량의 두배, 160GB 용량을 두뇌에 강제로 저장한 탓에 점점 죽어가기(!)까지 합니다.

사람의 실제 두뇌 용량은 분명 80GB보다 많을 것입니다. 살아가며 접하는 수많은 시간, 경험, 정보를 모두 저장할 수 있으니까요. 두뇌는 용량뿐 아니라 검색 속도와 효율, 수명 면에서도 어떤 저장 매체보다 우수합니다.

우리는 0.1초도 안 되는 찰나에 수십년 전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립니다. 그 기억을 고치거나 덧씌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기억의 수명은 곧 우리의 수명과 같습니다. 이렇게 고성능인 저장 매체가 또 어디 있을까요?

이런 면에서 인류가 꾸준히 연구하는 컴퓨터(인식 및 사고), 저장 매체(기억), 광학기기(시각) 등 ICT의 최종 진화형은 사람의 ‘그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를 토대로 이 영화를 보면 각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위험이 그의 머리 속에 담겨있다"

25년 전 만들어진 영화라 구성이 다소 난잡합니다. 등장 인물도 멋있다기보다는 괴이, 독특한 느낌이 강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두뇌를 저장 장치로 쓴다는 기발한 아이디어, 미래상을 그린 상상력은 이전 어떤 영화보다 돋보입니다.

영화에서 죠니는 해킹, 통신할 때 ‘BRT온라인’ 소프트웨어를 씁니다. 이 소프트웨어는 오늘날 가상현실(VR)을 연상케 합니다. 가상공간을 펼치는 안경(이름이 아이폰, Eye Phone입니다), 가상공간 속 사물을 만지고 조작하는 글러브는 각각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 콘트롤러를 연상케 합니다.

25년 전 만들어진 영화가 최신 기술을 이렇게 엉뚱하게, 이렇게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니!

죠니의 가명이 ‘미스터 스미스’라는 점도 사뭇 재미있습니다. 죠니 역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의 최고 흥행 영화 중 하나가 ‘매트릭스’입니다. 25년 전 만들어진 영화가 가상공간 매트릭스에서 벌어진 네오와 스미스의 대결을 암시하고 있었다면……

이 영화의 배경은 2021년, 내년입니다.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신경병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고 영화 속 첨단 기술이 부작용 없이 원만하게 구현된 점은 더 다행입니다.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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