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에 투자 스타트업만 260곳!’

벤처캐피탈 인라인트벤처스 3년여 실적이다. 회사는 코로나19 사태가 주춤해지기 시작한 지난달 초 대구경북 소재 14개 스타트업에 투자를 단행, 화제를 모았다. 불확실성에 모두가 ‘스톱(Stop)’한 상황에서 ‘고(Go)’를 외친 셈이다.

회사를 이끄는 김용민 대표 파트너는 ‘당시가 적기’라고 말했다.

김용민 인라이트벤처스 대표 파트너 / 김준배 기자
김용민 인라이트벤처스 대표 파트너 / 김준배 기자
"설립 초기인 스타트업은 재무상황이 안 좋습니다. 제 때 투자를 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멈춥니다. 좋은 기술도 그냥 사장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식에 출자사인 삼성 그리고 대구·경상북도를 설득했다. 투자는 인라이트벤처스가 펀드 운용사(GP)로 삼성·지자체와 공동으로 이뤄졌다.

인라이트벤처스는 삼성 후광을 업고 출범했다. 삼성전자 사내 벤처 ‘C랩 인사이드’에 속한 스타트업을 돕는다. 삼성과 오픈이노베이션 목적 ‘C펀드’도 운영한다.

연결고리에는 김 파트너가 있다. 삼성벤처투자 재직 당시인 2014년 대구와 경북 창조경제혁신센터에 파견 나와, 지역 스타트업 투자를 총괄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2017년 인라인트벤처스를 공동 설립했다. 20년 넘게 벤처투자업계에 몸담아온 그는 남들이 눈독들이는 ‘프리IPO 벤처’가 아닌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고자 회사를 세웠다.

덕분에 삼성과 정부 모태펀드 자금을 확보해 200곳 넘는 투자처를 찾았다. 운용 펀드 규모만 1500억원에 달한다. 연말에는 2000억원으로 늘어난다.

김 파트너는 실리콘밸리형 벤처캐피탈을 지향한다. 스타트업의 창업 단계 컨설팅부터 시드(엔젤라운드), 프리A, 시리즈A 등 초기 단계 투자에 집중한다. 말 그대로 스타트업 ‘성장 파트너’다.

투자도 회사 각 파트너(투자심사역)가 맡는다. 주니어를 제외한 7명 파트너는 ICT, 소재부품, 헬스케어, 전장, 자율주행, 콘텐츠 등 자신의 전공 분야 투자를 총괄한다.

"파트너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발굴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전문성이 높아지고 피투자사에 대한 관리와 경영자문, 인력지원이 가능합니다. 미국식 벤처투자죠."

김 파트너가 사명을 ‘인라이트(Enlight)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성경에 남아 있고 사전에는 없는 고어다. ‘같이 깨우치고 성령을 받는다’는 의미다. 회사가 피투자사인 스타트업·벤처와 함께 고민하고 성장한다는 의미로 정했다.

사무실 입구 보드판에는 김용민 대표 파트너가 딸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 손님을 맞는다. / 김준배 기자
사무실 입구 보드판에는 김용민 대표 파트너가 딸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 손님을 맞는다. / 김준배 기자
초기 투자는 분명 리스크(투자 실패)가 크다. 잠재력을 보고, 투자를 집행하니 어쩔 수 없다.

김 파트너에게 투자 실패 사례를 묻자,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사례가 결코 많지 않음에도 한국에서의 벤처투자 실패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벤처캐피탈의 초기 투자 성공 비중은 채 30%가 안된다. 태반이 실패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투자 실패에 대해 자금줄인 공동 투자사(LP)들은 미덥지 않게 본다. 마치 몇몇 투자 실패를 이유만으로 우수기업 발굴 능력이 떨어진다고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대로 자금 확보 어려움으로 나타난다. 리스크(위험)를 추구해야 할 벤처자금이 검증된 프리IPO 기업으로 쏠리는 이유다.

"우리 처럼 ‘극초기(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곳은 투자 실패를 피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여부 입니다. 저희는 이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돕습니다. 만약 폐업할 상황에 처하면 재도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극초기 기업’은 김 파트너가 꺼낸 단어다. 설립 3년 이내 스타트업을 지칭한다. 작년 인라인트 투자액 58%가 극초기 기업에 이뤄졌다. 지난해 국내에서 3년 이내 스타트업에 들어간 벤처캐피탈 투자금 8.6%가 인라이트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김 파트너는 주변 시선과 별개로 스타트업 투자를 이어간다. 서울 강남구 선릉 근처 인라이트 사무실에는 스타트업 창업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함께 호흡하며 돕겠다는 취지다. 자금만 주고 전화로 실적점검만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김 파트너는 "우리에게 어려움은 ‘코로나19’가 아닌 ‘우리를 특별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 투자를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일침이다.

회사에 스타트업 업무 공간을 마련한 인라이트벤처스 김용민 대표 파트너 / 김준배 기자
회사에 스타트업 업무 공간을 마련한 인라이트벤처스 김용민 대표 파트너 / 김준배 기자
큰 그림을 갖고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과거 IMF시절 초기 벤처 투자 결실로 우리가 IT강국 코리아를 이뤄냈습니다. 초기 아이디어 스타트업 발굴로 우리나라가 더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미래를 보고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투자에 임하겠습니다."

김준배기자 jo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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