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8번가의 기적 (Batteries Not Included, 1987) : ★★★(6/10)
줄거리 : 노부부, 무명 화가, 은퇴한 권투 선수와 종업원. 소시민들이 모여 살던 낡은 아파트가 철거될 위기에 놓인다. 어느날 아파트에 신기한 손님, 접시 모양 외계 로봇 한쌍이 찾아온다. 쉴 곳을 찾던 로봇 부부는 아파트의 전기와 폐금속을 먹어치우는 대신 헌 건물을 고쳐준다.
귀여운 로봇 부부와 마음을 주고받는 주민들. 로봇 부부의 아이까지 태어나는데, 그 중 하나는 배터리 없이 태어나 죽을뻔한 것을 한 주민이 살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철거반원은 주민들을 조여온다. 급기야 아빠 로봇이 철거반원에게 맞아 큰 상처를 입자, 로봇 가족은 실망하며 아파트를 떠나는데……
"누구도 주민들을 구할 수 없습니다. 기적이 아니고서야 말이지요"
‘외계 로봇’이라고 하면 어떤 상상이 드나요? 앞서 소개한 영화 ‘아이언 자이언트’처럼 덩치가 크고 힘도 세지만, 천진난만한 로봇? ‘우주전쟁’의 문어 모양 살인 로봇? ‘지구가 멈추는 날’의 무섭지만, 신비로운 분위기의 로봇?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차로 변신하는 오토봇과 디셉티콘도 외계 로봇으로 볼 수 있겠군요.
"기계가 또다른 기계를 만드네요? 마치 가족같아요!"
사람은 미지의 세계,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빛의 속도 이상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우주, 어둡고 음산한 심해, 보이지 않고 없을것도 같지만 또 있을것도 같은 유령 등을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선지 영화 속 외계인은 대개 악역입니다. 징그러운 모습, 가공할 초능력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고 또 괴롭히는 것도 대개 기본이고요. 하지만, 드넓은 우주 어딘가 살고 있을 외계인이 무조건 악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일단 호감을 느낄 만한 모습이라면? 대화는 통하지 않더라도 움직임으로 통할 수 있다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불후의 SF 영화 명작 ‘ET’로 외계인과 사람 사이의 교감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으니, 사람과 외계인도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개중에는 사람의 탈을 쓴 짐승같은 이보다 훨씬 더 사람다운 외계인이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사람에게 값진 선물(의 정체는 영화에서 확인하세요)을 준, 이 영화 속 로봇 부부처럼 말이지요.
"너희가 지구에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영화의 제목 ‘배터리는 포함되지 않음’의 뜻이 꽤 귀엽고 재미있습니다. 극중 로봇 아기 셋 중 하나는 배터리 없이 태어나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은퇴한 권투 선수는 안타까워하다, 순간 가전 설명서에서 본 ‘배터리는 포함되지 않음’이라는 문구를 떠올리고 기지를 발휘합니다.
전원을 먹여(?)서 로봇 아기를 살린 것이지요. 죽다 살아난 이 로봇 아기의 극중 활약이 특히 귀엽습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로봇 아기 셋 중 어떤 녀석이 죽을 뻔한 녀석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8번가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배급됐습니다. 원래 제목과 사뭇 다른 의미지만, 그렇다고 영화의 주제와 관계 없는 엉뚱한 제목도 아닙니다.
가족 영화는 대개 따뜻한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그 가족이 꼭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물도, 인형도, 이 영화처럼 로봇도 사람과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모습이 달라도, 말이 달라도, 사는 곳과 심지어 종이 달라도. 공감하고 공존하며 가족애를 만들고 또 느끼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입니다.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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