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를 걷는 항공기 승무원은 선망의 대상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닐 수 있다는 점은 다른 직업군에서 경험할 수 없는 승무원만의 장점이다. 교육부가 2019년 발표한 ‘2019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자료를 보면, 항공기 승무원은 고등학생의 선망 직업 순위 8위에 올랐다. 1위는 교사, 2위는 경찰관이다.

하지만 항공기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상당한 노동력과 서비스 마인드가 동시에 필요한 직업이다. 한번에 수백명의 승객이 탑승한 항공기에서 일하며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 식사와 음료를 서빙해야 하고, 면세품 판매 업무도 척척 해내야 한다. 만에 하나 발생할 지 모르는 응급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 요원 역할도 담당한다. 업무 중 감당하는 스트레스 지수가 상당히 높다.

승무원은 항공기가 3만피트(9.15㎞) 상공을 순항할 때 다양한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며, 바쁜 일이 모두 끝난 후에는 일부 승무원이 자취를 감춘다. 이들은 어디에 숨은 것일까? 사실 숨었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고, 승무원은 일반 객실과 구분된 별도의 휴식 공간에서 체력을 보충한다. 이 공간은 ‘벙크’, ‘벙커’, ‘크루 벙크’, ‘크루 벙커’ 등 다양한 이름(아래에서는 ‘벙크’로 지칭)으로 불린다.

보잉 787 항공기의 벙크 위치를 나타내는 이미지 / 유튜브
보잉 787 항공기의 벙크 위치를 나타내는 이미지 / 유튜브
벙크의 위치와 규모 등은 항공기 기종별로 차이가 있지만, 보통 보잉 777이나 에어버스 A330 등 장거리 비행에 투입되는 대형 항공기에 설치됐다. 파일럿과 승무원용 벙크가 따로 설치된 항공기도 있다. 보잉 787의 경우 뒤쪽 꼬리날개 근처에 벙커가 있다. 샤워실을 구비한 벙크도 있으며, 2층 침대 형태이거나 혹은 옆으로 나란히 매트만 설치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1~2시간 짧은 거리를 운항하는 소형 항공기에는 벙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공기 내에 별도의 휴식 공간을 설치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1인용 침대로 구성된 한 항공기의 벙크 모습 / 유튜브
1인용 침대로 구성된 한 항공기의 벙크 모습 / 유튜브
승무원들이 마음대로 벙크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항공법 시행령 제143조에서 정한 ‘객실승무원의 승무시간 기준 등’에서 정한 휴식시간에만 벙크에서 취침할 수 있다. 승무원의 승무시간은 비행을 위해 근무한 시간부터 사후 브리핑을 하는 비용 종료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근무시간은 최소 객실 승무원만 배치됐을 때 최대 14시간이며, 최소 객실 승무원 인원에서 1명씩 추가될 때마다 근무시간이 2시간씩 추가된다. 최대 근무시간은 20시간을 넘을 수 없다. 휴식시간은 최소 8시간이지만, 14시간 초과 근무 시 12시간까지 쉴 수 있다.

항공기 승무원의 휴식 시간은 ‘자유 시간’과 거리가 멀다. 대한항공 등 항공사는 벙크를 승무원의 취침 장소로 규정하며, 여기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 행위는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이 보기에 벙크는 승무원만 이용할 수 있는 금단의 공간이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승무원 입장에서는 사실상 잠만잘 수 있는 통제의 장소가 될 수 있다.

항공기 내 벙크에 대해 소개하는 영상 / 유튜브

이진 기자 ji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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