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의 IT 확대경] 국가는 IT 프로젝트가 아니라 생태계 구축에 매달려야

  •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입력 2020.06.08 06:00

    2003년 2월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삼성의 스타 경영자인 진대제를 불러 정통부장관에 앉혔다.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일을 맡긴 것이다. 삼성 사장 자리에 있으면서 장관 임명장을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전격적으로 발탁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대기업의 경영자 발탁도 마다하지 않는 노대통령은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꽤 실리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운동권, 시민사회, 노동계에 머무르는 현정부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기존 정치권, 운동권에서 보아 오던 사람들과는 꽤 다른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당시 진대제장관의 파워포인트를 서로 구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을 정도다. 곧 정보통신 육성정책이 ‘IT839 정책’으로 발표했다. 8가지의 서비스, 3대 핵심 인프라 구축, 9대 신성장동력을 발굴해 2007년에는 연간 생산 380조원을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각 과제별 PM(주책임관) 제도도 만들었다. 이 PM제도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온다.

    역시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하던 최고의 인재라 정책을 포장하고 설득하고 추진하는 능력이 남달랐던 것 같다. 주요 권력 부처가 아니면서도 대통령을 측근 보좌하면서 참여정부 최장수 장관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미래 정보통신 산업을 조망한 정책에는 동의하면서도 나는 여러 칼럼을 통해 ‘IT839 정책’ 추진 과정을 비판했었다. 지금 돌아봐도 똑같은 지적을 할 수 밖에 없다.

    우선 정부가 기업이 해야 할 일을 기업 경영하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삼성이 택해야 할 정책이 국가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쓰기도 했다. 국가가 앞서 끌고 가야 한다는 60~70년대의 발상의 결과로 지금까지도 그 풍토가 이어져 온다.

    기업은 독보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걸 보고 투자자가 모여야 하는데 잘못된 정책으로 거꾸로 가는 것이다. 국가가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거기에 돈을 태우면 기업은 자신들의 핵심역량을 키우기 보다 돈을 좇기 마련이다. 정부가 벤처 창업을 그렇게 많이 강조하고 돈을 아무리 많이 뿌려도 세계를 흔들 기업이 나오지 않는 이유이다.

    지금도 청년 창업자들이 자신들의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 투자자들을 모으는 게 아니라 정부의 과제를 따내는 데 집중한다. 과제가 끝나면 돈이 떨어지니 또 다른 과제에 매달린다. 그야말로 약간의 정책자금을 좇아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반면에 대기업에 버금가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민 등은 하나같이 정부가 추진해온 프로젝트와는 상관없이 성장해 온 기업들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프로젝트를 직접 끌고 가는 방식을 멈춰야 한다. 민간 창의가 융성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데 집중하여야 한다. 법, 제도, 규제, 금융, 세제, 인력개발 등을 시대에 맞게 바꾸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이어진 정권에서 정통부가 해체되었음에도 지금까지도 국가 주도의 개발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매년 수 조원을 정부 주도 프로젝트에 투입할 것이 아니다. 국부펀드를 만들어서라도 능력있는 기업에 투자(지원이나 융자가 아닌)하는 방식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

    그 즈음에는 자주에 대한 인식이 커지며 한미간에 군사, 외교 분야에서 갈등의 싹이 트기 시작한 시점이다. 정보통신 분야의 정책에 대해 미국대표부(USTR)가 이의를 제기했다. 이통사가 공동 사용할 수 있는 한국형 무선 인터넷 플랫폼(위피: WIPI)을 표준으로 채택함으로써 외국 단말의 국내 진출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또 휴대인터넷 주파수를 할당하면서 국내에서 개발한 기술만 적용할 수 있는 규격을 포함시킴으로써 역시 시장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이의를 제기했다. 2008년도에 아이폰을 도입하면서 표준채택 의무가 해지돼 해결됐다.

    이 시기에 우리기술, 원천기술이 유난히 강조되었다. 의도는 그럴 듯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시장은 우리기술로 굳건히 지키며 해외시장을 개척하겠다고 하니 애초에 성공하기 힘든 전략인 것이다.

    항상 세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실력을 쌓고 경쟁해야 우리의 몫이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 시장을 갈라파고스로 만들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을 겸비해야 하는 것이다.

    세계시장을 이끌고 나갈 능력은 하루 아침에 의지만 가지고 생기지 않는다. 배 아파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 2대주주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개발되고 있는 기술들에 조기 투자해 2대주주가 됨으로써 원천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그 위에 특허 풀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제조기술이 아니라 원천기술은 수학, 물리 같은 기초과학을 기초로 한다. 미국 뿐 아니라 인도, 이스라엘,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의 인재들이 두각을 보이는 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해결책으로 제시했던 전략이었다.

    이제 정부 주도의 개발 관행을 버려야 한다. 세계 시장을 보고 진출도 하고 해외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 것만 주장하다가 시장은 갈라파고스가 되고 세계시장 진출의 길은 멀어진다 또 IT를 제조업 마인드로 산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IT를 기반으로 한 미래 사회를 상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ho123j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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