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연기관차 퇴출 시기 2035년으로 5년 앞당겨
미래차 육성 위해 한국도 공론화 필요 목소리
업계는 ‘급하게 도입하면 위기 초래’ 우려

세계 각국이 경유차·휘발유차 등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향후 이같은 흐름에 동참할 지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0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오른쪽)의 안내를 받고 있다./ 조선일보 DB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10월 15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오른쪽)의 안내를 받고 있다./ 조선일보 DB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2030년 미래차 1등 국가를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전기·수소차 신차 판매 비중을 2030년 33%, 세계 1위 수준으로 늘려 세계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다만 내연기관차 감축 시기에 대해서는 특정한 바 없다.

전문가와 업계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도 내연기관차 퇴출 계획을 공론화하고 어젠다로 내놓아야 미래차 1등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또 다른 일부에서는 섣불리 선언에 대한 우려도 언급한다. 기술·환경적으로 완벽한 대안이 나와야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래차와 내연기관차의 상생전략도 절실하다는 의견이다.

11일 업계 및 외신에 따르면 유럽은 경유차를 중심으로 한 내연기관차 퇴출이 본격화되고 있다. 영국은 2035년부터 휘발유·경유차는 물론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를 금지한다. 2040년이었던 금지 적용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프랑스는 2040년부터 화석연료 차량 판매금지, 독일은 2030년부터 화석연료차 판매를 금지하는 결의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도 각각 2030년, 2040년에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목표를 선언했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도 동참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가 2030년부터 휘발유·경유차 판매를 금지한다. 싱가포르도 2040년까지 내연기관차를 단계 폐지하고 모든 차량을 친환경차로 바꾸는 비전을 2월 발표했다.

중국도 국가차원에서 내연기관차 퇴출에 적극적이다. 창안자동차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한다. 베이징자동차도 2020년부터 베이징에서, 2025년부터 중국 전역에서 내연기관차를 팔지 않기로 했다. 다른 완성차업체들도 퇴출까지는 아니지만 친환경차 비중을 늘리겠다는 목표를 속속 내놓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내연기관차 퇴출을 언급한적 없지만 2025년까지 전기차 14종을 포함한 총 38종의 친환경차를 개발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다.

현대차 수소전기차 넥쏘. / 현대자동차
현대차 수소전기차 넥쏘. / 현대자동차
우리 정부는 환경부가 2040년 내연기관차 퇴출을 공식 논의하려다 흐지부지된 바 있다. 홍동곤 환경부 국가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은 지난해 3월 한 세미나에서 "205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립 과정에서 2040년 내연기관차 폐지를 검토 중"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내연기관차 종식 선언에 따른 자동차 업계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돼 이 보고서는 국무총리실 주재 회의 안건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국회에서도 화두에 올랐지만 내연기관차 퇴출은 법제화되지는 못했다. 민병두 전 의원은 2017년 9월 ‘2030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금지 및 탄소무배출 자동차 보급 활성화를 위한 국가 실천계획 수립 촉구 결의안’과 ‘2030년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본회의 상정에 실패했다.

정부는 공공 부문에서 경유차 및 휘발유차의 퇴출을 공식화한 모습이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6일 공공부문 친환경차 보유비율을 현재 12.7%에서 2022년까지 35%, 2030년까지 90%로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1년부터 신차 구매 80% 이상을 전기·수소차 의무 구매하도록 부과하고 단계적으로 100%까지 상향하기로 했다. 의무구매비율을 달성하지 못한 전국 지자체 및 공공기관에는 2021년부터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운행 중인 휘발유차 및 경유차는 폐차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관계부처 합의 중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내연기관차를 축소하고 친환경차 보급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자동차 산업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 상황에서 수익성이 보장된 내연기관의 경쟁력을 강화해 친환경차 투자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배충식 한국과학기술원 교수(한국자동차공학회 부회장)는 "이런 시기에 정부와 기업은 특정 기술에 집중하기보다 불확실성에 대비해 균형 잡힌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과도한 이산화탄소 저감 목표를 근거로 성숙하고 경제적인 내연기관차를 급격히 축소하고 전기차를 무리하게 보급·지원하면 자동차산업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차 연구개발을 지속 지원하고 산업계와 환경이 상생할 전략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