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포커스] 당신의 초상권은 안녕하십니까?

입력 2020.06.12 06:00

금요일마다 디지털 카메라·캠코더·렌즈·스마트폰 카메라 등 광학 업계 이슈를 집중 분석합니다. [편집자주]

2월 후지필름 디지털 카메라 X100V의 광고 영상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캔디드 포토(사람을 몰래, 동의 없이 촬영한 사진)를 미화하는 내용을 담은 광고였다. 후지필름은 소비자를 불쾌하게 만들었다며 사과하고 광고 영상을 지웠다.

※네덜란드 법원은 부모 동의 없이 손자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할머니에게 사진 삭제를 명령했다. 네덜란드 법률상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사진을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곳에 올리려면 법적 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할머니는 사진을 지울때까지 하루 50유로(6만7500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인스타그램은 임베디드 사진 복사(게시물을 통째로 복사해 다른 곳에 올리는 기능) 권한을 일반 사용자에게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인물, 풍경, 음식, 보도 등 사진을 허락 없이 가져갈 수 없게 함으로써 사진과 글을 만든 이의 권리와 초상권을 보호한다.

※한 앱 개발자가 사진 속 인물 얼굴에 자동으로 모자이크를 씌우는 앱을 선보였다. 미국에서 일어난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인권 운동 참여자를 보호하는 앱이다. 보도 사진에 BLM 인권 운동 참여자의 얼굴이 실리면, 그를 알아본 반대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논리다. 보도 사진과 초상권의 경계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초상권 갑론을박이 활발한 사진 업계 이슈를 표현한 이미지 / 차주경 기자
불 붙은 초상권 논쟁…"개인의 자유 존중해야" vs "저널리즘 방해 우려"

위 사건은 모두 최근 반년 사이 일어난 일입니다. 사진 ‘초상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초상권. 내 초상(모습)이 내 허락 없이 악용되는 것을 거부할 권리. 당연히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푸대접을 받는 권리 중 하나였습니다.

신문이나 뉴스 기사 사진, 이름난 사진 작가가 찍은 거리 사진, 인플루언서의 맛집이나 여행지 탐방 사진 등에 내 얼굴이 나왔다면? 기분이 좋거나 신기할수도, 더러는 불쾌하고 나쁠수도 있습니다. 전자는 문제가 없지만, 후자는 문제가 됩니다.

내 얼굴이 나온 사진, 모두 지우거나 내 얼굴만 고쳐달라 요구해도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보도용 사진 혹은 예술 작품 사진이라는, 찍은 사람의 저작권도 보호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기 일쑤입니다.

최근 사진 업계에서 초상권을 엄격히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언론 보도나 개인 용도로 쓴다고 말만 하면 초상권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던 과거의 경향은 틀렸다, 천부적으로 부여된 초상권을 본인이 아닌 다른 이가 멋대로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입니다.

반대 의견도 거셉니다. 보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를 다루는 언론계의 목소리가 가장 큽니다. 초상권 때문에 역사와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알리는 저널리즘의 사명을 방해받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입니다.

사진 저널리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 최대한 날것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 초상권만큼 대중의 알 권리도 중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앱으로 BLM 인권 시위 참가자의 얼굴에 모자이크를 씌운 사진 / 페타픽셀
사진 문화·시대 바뀐 만큼 초상권 개념·정의·범위도 다시 논의해야

두 주장 모두 튼튼한 논리를 내세웁니다. 가부는 쉬이 가릴 수 없지만,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있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사진 문화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바뀐 시대, 문화에 맞게 초상권의 개념과 정의, 적용 범위를 다시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초상권 침해의 부작용, 파급력도 고려해야 합니다. 초상권과 가장 밀접하다는 보도 사진부터 살펴볼까요?

예전에는 신문과 TV, 책 등 일부 매체만 보도 사진을 썼습니다. 사진을 찍고 독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시간도 걸렸고, 그 사이 초상권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TV 재방송이나 신문 아카이브(디지털화해 보관하는 자료)가 되지 않는 이상, 보도 사진은 오래 남아있지도 않았고 많은 이들이 볼 수도 없엇습니다. 그만큼 부작용을 낳을 위험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보도 사진은 인터넷을 타고 불과 10초도 안돼 이곳저곳에 전송됩니다. 매체뿐 아니라 커뮤니티 게시판, SNS 등지로 순식간에 퍼집니다. 많은 이들이 보고 공유합니다. 누군가 초상권 문제를 제기해도,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세계 곳곳에 뿌려진 보도 사진을 모두 지우거나 고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오늘날 사진의 위력은 예전과 비교할수 없을 만큼 강력합니다. 제어하기 힘듭니다. 곧, 부작용도 큽니다. 사진, 특히 초상권과 연관 있는 인물 사진의 부작용은 더욱 크고 심각합니다. 보도 사진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거의 모든 사진 부문에서 초상권 침해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오늘날 소비자는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폰으로 많은 사진을 남깁니다. SNS를 포함한 온라인 공간에 사진을 올려 다른 사람과 나누고 보관합니다.

그 사진에 내가 찍혔는데, 불쾌한 생각이 든다면? 게다가 그 사진이 논란이나 오해를 일으킬 만한, 예컨대 시위나 사건사고 현장을 찍은 사진이라면? 온라인 공간에 내가 찍힌 사진이 올라갔는데, 수많은 음담패설과 욕설이 달린다면? 나를 알아본 누군가가 내가 어디에 살고 무슨일을 하는지 이야기한다면?

딥페이크 등 초상권 부작용 현실화…제어할 수 없다면 최대한 지켜야

‘딥페이크(실제 사진 속 인물이나 배경을 토대로 가짜 인물과 배경을 만드는 기술)’는 초상권 침해의 부작용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악화할 기술입니다. 인물 사진 몇장만 있으면 딥페이크로 얼마든지 가짜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분명 집에 있었는데, 전혀 모르는 곳에서 웃고 있는 내 사진이 나온다면? 음란 사진이나 영상 속 주인공의 얼굴이 나나 친지라면? 내가 등장한, 말도 안되는 가짜 사진뉴스가 SNS 우스개가 돼 퍼지고 마치 사실인 것인양 확산된다면?

침소봉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비판할 수 있겠습니다만, 위 사례는 불가능이 아닌, 이미 현실로 나타난 부작용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물 사진 몇장’만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제 의견은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 사진과 초상권 침해의 부작용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초상권을 가장 우선 지켜야 한다’입니다. 위에 설명한 숱한 부작용이 근거입니다. 가장 먼저 설명한 초상권 침해 사례와 업계의 대응도 제 편을 드는 듯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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