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글로벌 확산)은 얼굴을 마주하던 일상을 비대면으로 바꿔놓았다. 재택근무가 확산됐고, 화상 회의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개막했다. 영상 기반 회식 문화까지 나왔다. 비대면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핵심 트렌드 자리를 꿰찼다.

관객과 배우가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공연 분야는 코로나19로 치명상을 입었다. 굵직한 공연이 취소는 것은 물론 일부 중소업체은 도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 콘텐츠 업계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대한 대안으로 비대면 공연을 늘리며 돌파구를 마련한다. 유튜브나 SNS 등을 통해 온라인 콘서트와 방구석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다.

공연 업계의 변화에 기여한 것은 ‘게임엔진’으로 구동하는 증강현실(AR) 기술과 실시간 렌더링(2~3차원 장면을 사람이 보기 좋은 영상으로 전환하는 것) 기술 등이다. 특히 게임엔진은 비대면 시대 공연 문화의 변화를 이끌 주인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비대면 라이브 공연의 숨은 주역 ‘게임엔진'

SM엔터테인먼트는 4월 네이버 V라이브를 통해 세계 109개국으로 실시간 송출되는 ‘비욘드 라이브’ 콘서트를 선보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공연 콘텐츠의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경됐다.

비욘드 라이브에는 언리얼 게임엔진의 AR 기술과 실시간 렌더링 기술이 사용됐다. SM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 제작사 자이언트스텝은 게임엔진의 AR 합성 기술로 가상의 무대 위에 음악 아티스트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융합해냈다. 무대 배경에 쓰인 가상 폭포 등도 언리얼 엔진을 통해 제작됐다. 공연장이 콜로세움으로 변하고 공연이 진행되는 무대는 팬들과의 채팅창이 가득했다. 게임엔진은 이런 장면을 화면 속에 그대로 구현해냈다.

비욘드 라이브 한장면 / 유튜브
비욘드 라이브 한장면 / 유튜브
인터넷으로 진행되는 비대면 콘서트는 개최사는 물론 관객에게도 이득을 준다. 관객은 첨단 AR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아티스트와 소통할 수 있다. 공연장 속 먼 거리에서 보던 스타를 눈 앞에서 바라보며 함께 호흡할 수 있다. 가상의 공간에서 열리는 행사다 보니 코로나19 감염 걱정도 없다.

기획·개최사는 공연장 입장 수익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공연장 임대료와 세트 꾸미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관객에게는 공연 티켓을 판매할 수 있다. 콘텐츠 업계가 비욘드 라이브 시청자 수와 유료 결제액을 토대로에 산출한 예상 매출액 규모는 20억원대에 달한다.

온라인을 통한 라이브 공연은 현실 상황에 상관없이 관객과 기획사가 원하는 비쥬얼을 실시간으로 구현할 수 있다. 향후 공연 업계와 연예 기획사, 게임엔진 업체 간 협업 사례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게임을 만들 때 사용하던 언리얼·유니티 등 게임엔진은 이제 게임을 뛰어 넘어 영상과 방송, 건축, 디자인,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사용된다.

언리얼 엔진을 보유한 에픽게임즈 한 관계자는 "아티스트와 기술이 만나 탄생한 새로운 콘서트 문화를 통해 언리얼 엔진과 같은 기술이 인간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느꼈다"며 "언리얼 엔진이 '비대면' 시대 사람을 이어주고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진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음악 시상식 공연에도 사용된 AR·게임엔진 기술

게임엔진과 콘텐츠 간 융합 사례는 비욘드 라이브 이전에도 있었다. 2018년 지니뮤직 어워드에 등장했던 방탄소년단의 ‘페이크 러브’ 무대는 게임엔진으로 구현한 AR 기술이 빛을 발했다. 당시 무대에 올랐던 BTS는 AR로 구현한 눈꽃이 날리는 거대한 얼음 조각 속에서 노래를 했다.

지니뮤직 어워드 방탄소년단 ‘페이크 러브’ 무대 한장면 / 유튜브
지니뮤직 어워드 방탄소년단 ‘페이크 러브’ 무대 한장면 / 유튜브
2019년도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펼쳐진 방탄소년단 ‘소우주’ 무대에도 언리얼 엔진이 활용됐다. 광활한 우주에 떠 있는 BTS의 모습을 게임엔진으로 구현해 냈다. 공연 무대에는 게임엔진의 실시간 렌더링 기술이 사용된다.

트래비스 스콧의 포트나이트 인 게임 공연 / 유튜브
트래비스 스콧의 포트나이트 인 게임 공연 / 유튜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도 게임엔진 기술이 활용됐다. 투썬디지털아이디어는 언리얼 엔진을 활용해 깊은 밤 연못 위에 떠 있는 나룻배와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 밤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보름달,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이어지는 빛 등을 구현해 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한장면 / 유튜브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한장면 / 유튜브
언리얼 게임엔진 제작사인 에픽게임즈는 글로벌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의 개발사이기도 하다. 에픽게임즈는 4월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의 새 음원을 공개했다. 세계 최초로 게임 속에서 열린 트래비스의 첫 공연에는 1230만명의 관객이 몰렸다. 총 5회에 걸쳐 진행된 공연 누적 관객수는 2770만명에 달한다. 이 숫자는 오프라인 공연장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기록이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