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의 IT 확대경] 어쩌란 말이냐 이 모순을

  •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입력 2020.06.24 06:00

    미국의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대부분은 IT 기업 또는 IT 기반의 기업이다. 또 대부분은 창업자 또는 그 가족이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유지한다. 기업에 필요한 자본을 시장에서 충분히 유치하기 위해 많은 지분을 내놓고도 차등의결권 제도 덕분에 적은 지분으로도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한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재용 회장의 승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특히 합병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사주 대량 매입을 통해 분식회계와 주가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워낙 복잡한 내용이라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재판부의 최종적인 판단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재판 결과보다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나타난 여러 모순이다.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 모순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해결할 지 정치권을 비롯한 당사자들이 나서야 한다.

    먼저 기업을 일구어 자손들에게 상속하는 것이 필요한 일인지, 그냥 당대에 끝내게 해야 하는지 사회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 또 서구의 수많은 기업들이 왜 대를 이어 경영을 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물론 자식에게 상속을 스스로 안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속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욕구다. 과연 어떤 것이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 국가에 도움이 되는 길인지 판단해야 한다.

    토론에 나온 한 국회의원은 상속세를 내고 경영권을 승계 받으면 될 것을 왜 이런 편법을 써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세금을 내고 상속 받으면 된다고 쉽게 말할 일이 아니다. 50%의 상속세(할증의 경우 65%)를 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편법(다양한 방법이라는 표현이 타당할 듯하다)을 쓰지 않으면 경영권을 유지한 채로 기업을 상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부거래를 통한 부의 이전도, 복잡한 순환출자도 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행해져 왔다.

    적은 지분으로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기업의 승계나 대주주 일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가족의 일원이 경영을 승계하게 하느냐 마느냐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과 주주들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가족이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이 기업과 주주에 유리한 경우에 적은 지분으로도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나라가 차등의결권을 인정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다. 적은 지분으로 큰 기업의 경영권을 갖는 것을 마치 죄악인 것처럼 여기는 우리와 아주 다른 상황이다. 그러니 그런 나라에서는 굳이 여러 편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제 결정해야 한다. 정치권은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 기업의 승계를 법 조항이나 말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허용할 것인가? 그렇다면 현 상속세율로 상속세를 내고도 거대 기업을 승계할 수 있다고 보는가? 차등의결권 같은 제도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순환출자를 죄악시 하며 그 고리를 끊으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기업인에게 모두 책임을 지우는 온갖 법을 만들기 이전에 기업가들 앞에 놓인 모순부터 먼저 해소해야 한다. 이런 모순 상황에서 기업가정신이 싹을 틀 수가 없다. 기업인들에게 모두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또 본인이 당대에 잘 먹고 살기 위해서는 기업을 그렇게 많이 키울 필요도 없다.

    기본적으로 기업을 통해 보국(報國)을 하지만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 또한 기업가정신을 고양하는 중요한 동기다. 수도 없이 많은 서구의 오래된 기업들이 아직도 가족 경영을 하는 이유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ho123j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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