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창작자 표현의 자유 침해', ‘사전검열'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정부 주도 영상물 사전심의제도가 민간 주도 ‘자율등급제’로 바뀔 예정이다. 자율등급제가 시행되면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 심의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웨이브 등 국내외 OTT 사업자는 물론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수입사도 보다 계획적으로 자사 콘텐츠를 시장에 선보일 수 있다.

콘텐츠 업계는 자율등급제 도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23일 업계 한 관계자는 "영상물 자율등급제 도입에 따라 OTT 서비스의 콘텐츠 유통이 강화되고 OTT 사용자들 또한 시의적절하게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며 "OTT 간 과도한 경쟁 속에서 자율등급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의 모니터링과 사후 제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2일 열린 제12차 정보통신전략위원회를 통해 국내 디지털 미디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혁신 성장을 견인하는 디지털 미디어 강국’을 비전으로 2022년까지 ▲국내 미디어 시장규모 10조원 ▲콘텐츠 수출액 16조2000억원 ▲글로벌 OTT 플랫폼 기업 최소 5개 육성 등을 목표로 한다. 정부는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육성을 위해 각종 규제를 폐지·완화하고 콘텐츠 제작·투자 지원을 위해 2022년까지 3207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OTT 등 신유형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1조원 이상의 문화콘텐츠 펀드 등을 2024년까지 조성한다.

정부의 투자 예산 외에 콘텐츠 업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자율등급제' 도입이다. OTT로 유통되는 영상 콘텐츠에 대해 영등위를 거치지 않고 업체가 가이드라인에 맞춰 자율적으로 등급을 분류한다.

영화 ‘6언더그라운드’ / 넷플릭스
영화 ‘6언더그라운드’ / 넷플릭스
영등위의 영상물 사전심의제도는 콘텐츠 업계 성장에 방해 요소로 작용해 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매달 봇물처럼 쏟아지는 영상 콘텐츠 수량 탓에 사전 심의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처럼 특정 콘텐츠를 전 세계 동시 공개하는 경우, 한국은 사전 심의제도 탓에 글로벌 서비스 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홀로 빠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영상 콘텐츠 방영을 위해 사전 심의를 받는 국가는 북미 포함 아태지역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넷플릭스는 190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등위에 따르면 한국 외 영상물 사전심의제도를 운영하는 지역은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소수 국가다.

OTT 업체들은 늘어난 콘텐츠 수 만큼 영등위의 심의 비용에 부담을 느낀다. 영등위에 따르면 영상물 심의 비용은 10분당 1만원이다. 보통 60분쯤인 어린이용 극장 애니메이션 심의에는 6만원이 든다. 해외 영상 콘텐츠의 경우 영등위 심의비는 더 비싸진다. 10분당 1만7000원이며, 60분 분량 콘텐츠의 경우 10만2000원이 필요하다.

비용 문제는 OTT 업체들처럼 한 번에 심의 받아야 할 영상 콘텐츠가 많을 때 심각해진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경우 월간 150~300개쯤의 영상 콘텐츠 심의를 영등위에 의뢰한다. 심의 받는 콘텐츠를 30분 분량의 해외 드라마라고 가정하면, 매달 최대 1530만원의 심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매달 밀려드는 심의 관련 업무량은 영등위에 부담을 준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당장 넷플릭스 만으로도 영등위 업무가 마비된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월트디즈니컴퍼니의 OTT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하면 영등위 심의 통과에 필요한 시간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영등위 한 관계자는 "OTT 서비스 특성을 감안해 자율등급분류제도 도입에 공감한다"며 "자율등급분류를 위해서는 등급분류 기준과 방식, 사후관리체계, 청소년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제도 구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