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수분의 신비, 초롱꽃의 암술대 칫솔 사용법

  • 이동혁 칼럼니스트
    입력 2020.06.27 06:00

    관심사를 수분기제로까지 넓히니 신기한 게 많아져서 좋습니다. 고생고생해서 어렵사리 희귀식물을 찾아갈 필요를 이제는 좀 덜 느낍니다. 가까운 곳의 흔한 꽃에서도 궁금해지는 것이 많이 생겨 행복하니까요.

    초롱꽃속이나 금강초롱꽃속 식물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실 금강초롱꽃속 식물에 대한 의문은 작년에 이미 많이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의문을 풀기는커녕 외려 더 큰 의문만 혹처럼 얻어 붙이고는 다음해 숙제로 넘겨야 했습니다. 하여 올해는 초롱꽃속의 초롱꽃부터 확실히 해둬야겠다는 생각에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초롱꽃은 빠르면 5월 말부터 피기 시작한다
    드디어 여름이 왔습니다. 어김없이 초.롱.꽃.이. 피.었.습.니.다! 그러나 초롱꽃은 자신의 신비를 쉽사리 들키지 않으려는 듯했습니다. 암술과 수술의 성숙 시기를 달리 하여 자가수분을 피하려는 건 알겠는데, 꽃가루가 언제 터지는 건지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자꾸 들여다보다가 암술대에 잔뜩 묻어 달린 것이 꽃가루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꽃가루가 처음에는 흰색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약간 노르스름해질 뿐 진한 노란색은 아니었기에 꽃가루인지 몰라봤던 것입니다.

    암술대 표면에는 솔 모양의 털이 길게 자라 칫솔 같은데, 그것이 점성이 있는 꽃가루를 붙들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암술대는 점점 길어지고 그곳에 붙은 꽃가루가 떨어지면서 솔 부분은 사그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그라진다고 표현했습니다만, 실은 솔 부분이 대부분의 유사종에서 암술대 안으로 난 구멍으로 도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즉, 제 몸 속으로 도로 집어넣는다는 뜻입니다.


    초롱꽃의 웅예화 시기로, 암술대 표면의 솔 부분에 아직 꽃가루가 묻어 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결국 암술대 표면이 밋밋해지면 단순한 암술대처럼 보여 그곳에 꽃가루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합니다. 이때까지가 수술의 성숙 시기인 웅예화 시기입니다. 이들의 암술대를 흔히 펜대(stylar)라고 표현하는데, 암술머리가 갈라지기 직전의 모습은 정말로 펜대를 연상시킵니다.

    꽃가루가 다 없어지고 나면 암술대 끝부분의 암술머리가 세 갈래로 갈라져 암술의 성숙 시기인 자예화 시기로 접어듭니다. 이를 두고 수꽃에서 암꽃으로 변하는 것이라면서 성전환으로 표현하는 자료가 있지만, 성을 전환하는 것은 아닙니다. 암술과 수술의 성숙 시기를 달리하는 자웅이숙의 양상 중 하나인 웅예선숙(암술보다 수술이 먼저 성숙하는 방식)을 하는 것이므로 꽃의 성별은 양성화입니다.

    초롱꽃 웅예화 시기로, 암술대 표면의 솔이 거의 사라졌으나 아직 암술머리는 갈라지지 않았다
    초롱꽃의 자예화 시기로, 암술머리가 3갈래로 갈라졌다
    그렇다면 과연 수술의 꽃밥에 든 꽃가루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쏟아지는 걸까요? 벌어진 꽃은 아무리 어리더라도 이미 꽃밥에서 꽃가루가 터져 나와 암술대에 묻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꽃봉오리 상태의 꽃을 까 보니 아직 터지지 않은 다섯 개의 온전한 수술이 보입니다. 그 수술을 젖혀보면 그 속에 완전한 칫솔 모양의 암술대가 드러납니다. 암술대가 수술보다 길어지면서 솔 부분이 수술을 자극해 자연스레 꽃밥이 터지면서 꽃가루가 나와 암술대에 얹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진을 찍느라 좀 괴롭혔더니 꽃밥의 바깥쪽이 세로로 갈라지면서 꽃가루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초롱꽃의 꽃봉오리 속의 어린 수술
    어린 수술 사이의 어린 암술대, 칫솔 모양이다
    꽃밥이 갈라져 꽃가루가 나오는 모습
    금강초롱꽃도 같은 방식이기는 한데, 수술이 서로 붙어 있고 꽃밥의 바깥쪽이 아니라 끝 쪽이 구멍 나듯 터져 꽃가루가 나오는 구조라 꽃가루가 다 나온 후에도 암술 주위에 수술이 모여 있는 점이 다릅니다.


    금강초롱꽃의 웅예화 시기로, 암술대에 꽃가루가 잔뜩 묻어 있다
    금강초롱꽃의 웅예화 시기로, 암술대가 길게 자라나고 있고 아직 꽃가루가 보인다
    금강초롱꽃의 자예화 시기로, 꽃가루가 거의 보이지 않고 암술머리는 3갈래로 갈라져 있다
    어쨌든 암술대의 솔 부분은 카메라가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아무리 손에 들고 찍어도 엉뚱한 곳에 초점이 맞는 사진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수동 초점으로 찍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작년에 금강초롱꽃의 암술대를 그렇게 여러 번 찍었는데도 제대로 초점이 맞지 않아 그곳에 묻은 꽃가루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초롱꽃속 식물이나 금강초롱꽃속 식물뿐 아니라 도라지속 식물인 도라지 같은 것도 암술대를 솔처럼 활용해 꽃가루를 묻혀 두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런 것을 ‘브러싱 매커니즘’(brushing mechanism)이라고 합니다. 도라지가 자웅이숙을 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꽃가루를 어떻게 퍼뜨리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기에 전혀 알지 못한 사실입니다.

    도라지의 웅예화 시기로, 암술대에 꽃가루가 많이 묻어 있다.


    도라지의 자예화 시기로, 암술머리가 5갈래로 갈라져 있다
    이들의 브러싱 매커니즘은 일본의 ‘다나카 하지메’라는 전문가가 쓴 <꽃과 곤충>이라는 책에도 나옵니다. 그 옛날 나카이 박사 시절의 논문에도 소개된 내용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초롱꽃속 식물을 방문하는 벌들의 수분기제에 대해 자세히 밝혀놓은 대목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초롱꽃속 식물의 수분기제에서 제가 궁금하게 생각한 건, 종 모양의 꽃 속으로 들어가는 벌의 진입 방향입니다. 다나카 하지메의 책에서는 뒤영벌이 찾아와 초롱꽃의 안쪽에 난 거친 털을 발판삼아 기어 올라가므로 등이 암술을 스치게 되면서 암술에 붙어 있던 꽃가루가 옮겨 묻는다고 기술했습니다. 같은 내용으로 그려진 세밀화를 제시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암술대를 등진 방향에서는 암술대의 솔에 얹힌 꽃가루가 등에 묻기는 해도 세 갈래로 벌어진 암술머리에는 잘 묻을 것 같지 않아 효율적인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침 어느 지인께서 울릉도섬초롱꽃에 찾아든 벌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거기 섬초롱꽃에 찾아든 꿀벌도 암술대를 등진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암술머리가 갈라지기 직전이기는 한데, 아마도 꽃 속으로 들어갈 때 그 방향으로 진입해도 될 정도로 크지 않은 체구를 가진 벌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체구가 작은 벌은 암술대를 등진 채 진입해 털을 붙잡고, 체구가 큰 벌은 암술대를 마주한 채 진입해 암술대를 붙잡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로, 꽃가루를 먹으러 오는 파리류나 체구가 아주 작은 벌류는 꽃가루받이에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섬초롱꽃 속으로 날아든 꿀벌, 암술대를 등진 방향에서 활동한다
    제가 운 좋게 촬영한 사진에서는 암술대를 붙잡고 있는 벌 종류의 모습이 찍혔습니다. 암술에 배가 닿아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 자세여야 꽃가루받이가 일어나기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상으로는 정확히 판별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가위벌 종류 같고, 가위벌 종류는 꽃가루를 배에 모으는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느 벌보다 가위벌 종류가 초롱꽃속 식물의 효율적인 수분매개자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암술머리가 갈라진 시기는 자예화 시기이므로 암술대의 솔 부분에는 남은 꽃가루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문했다가 꽃가루가 없음을 확인한 벌들은 몇 초도 안 돼 금세 꽃을 빠져나가버리기 십상입니다.

    초롱꽃 속으로 날아든 가위벌류, 암술대를 붙잡은 방향으로 활동한다
    벌은 꽃가루 또는 꿀을 얻을 목적으로 꽃을 방문합니다. 그런데 초롱꽃속 꽃들은 길어지는 암술대의 솔 같은 조직에 꽃가루가 얹히므로 곤충이 암술대를 등진 방향으로 진입하면 꽃가루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암술대의 꽃가루를 등진 방향으로 진입하는 벌들은 꽃가루가 아닌 다른 것이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반대로, 암술대를 붙잡는 방향에서 진입하면 꽃가루를 얻기 좋지만 그건 웅예화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암술머리가 갈라진 자예화 시기에는 꽃가루가 없으므로 벌들의 방문 횟수가 적고 머무는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꿀을 만들어놓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다나카 하지메의 세밀화에는 뒤영벌의 긴 주둥이가 초롱꽃 수술의 밑부분에 닿게 그려져 있어서 꿀의 존재를 짐작케 합니다. 증명만 하면 되겠구나 싶었건만, 어느 동영상 전문 사이트에 이미 초롱꽃속 식물의 꿀을 설명하는 컨텐츠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제 의심대로 수술 밑부분의 크게 부푼 지점에 꿀이 있다고 합니다. 벌들은 그 꿀 쪽으로 올라가면서 꽃가루받이에 관여하게 됩니다.

    초롱꽃 속 내부의 수술이 붙어 있는 자리, 이곳에 꿀이 있어 벌을 비롯한 여러 벌레들이 방문한다
    그 동영상 전문 사이트에는 초롱꽃의 암술대와 솔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타임 랩스 카메라로 찍어 만든 영상도 있었습니다. 좀 더 찾아 들어가 보니 식물에 대한 다채로운 영상들이 선명한 화질로 올려진 게 많아서 신세계를 보는 듯했습니다. 보통 장비로 촬영한 것이 아닌 그 영상들을 반복해 돌려보다가 갑자기 할 일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껏 초롱꽃이나 까 보고 앉아 있는 제 신세가 한심했습니다. 그들의 스케일을 어떻게 따라간단 말입니까? 한숨이 절로 납니다. 이제 산에 가면 휴지부터 줍겠습니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동혁 칼럼니스트는 식물분야 재야 최고수로 꼽힌다. 국립수목원에서 현장전문가로 일한다. ‘혁이삼촌’이라는 필명을 쓴다. 글에 쓴 사진도 그가 직접 찍었다. 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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