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경의 테크&영화] 스크린의 경계를 기술로 허문 '하드코어 헨리(Hardcore Henry, 2015)'

입력 2020.06.28 06:00

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하드코어 헨리(Hardcore Henry, 2015) : ★★★☆(7/10)

줄거리 : 수술대에서 눈을 뜬 주인공,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옆에 있던 여성 의사는 그의 이름이 ‘헨리’이며, 헨리는 자신의 남편이자 기계 팔다리를 차고 다시 태어난 사이보그라고 말한다. 순간 보이지 않는 힘을 쓰는 초능력자 아칸과 그의 군대가 습격해 아내를 납치하고 헨리를 죽이려 한다.

아내의 부탁대로 도망친 헨리 앞에 죽어도 죽지 않는 사나이 지미가 나타난다. 지미는 헨리와 아칸, 아내의 비밀, 나아가 이들과 전쟁을 치러야 할 헨리의 운명을 설명한다.

순간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과 진실을 깨닫고 권총에 탄창을 장전한 헨리, 지미와 함께 아칸의 거대 군대와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는데……

"축복받은거야 넌. 항공모함 끌 힘도 있고."

책은 눈으로, 음악은 귀로, 연극이나 공연은 눈과 귀로 즐기는 예술입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오감에 즐거움을 주는 종합 예술이라고 하겠습니다. 연극, 공연보다 훨씬 화려하고 실감 넘치는 장면 및 소리를 즐기게 해 주고, 심지어 냄새와 촉감까지 전달하니까요.

영화가 처음부터 이렇게 다양한 즐거움을 준 것은 아닙니다. 1900년대 초반에 볼 것이라고는 소리 없는 무성 영화뿐이었습니다. 이윽고 영화에 소리가 들어갔고(이 시기를 다룬 영화가 유명한 작품 ‘아티스트(The Artist, 2011)’입니다), 상상을 현실처럼 묘사해주는 CG(Computer Graphic)가 들어갔습니다. 입체 영상 3D 기술은 영화의 실감을 더욱 높였고, 최근에는 영화에 냄새와 감촉, 바람과 빛 등 실감 요소를 더한 4DX 기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드코어 헨리 포스터 / 코리아스크린
영화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는 관객의 생각, 반응과 실시간 교감하는 ‘상호 작용’, 나아가 관객을 아예 영화 안으로 이끌어 등장 인물 중 하나가 되도록 만드는 ‘실감 미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된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화려한 CG가 이제는 보편적인 기술이 됐듯, 실감 미디어는 이미 영화 업계가 주목하는 기술입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 ‘하드코어 헨리(Hardcore Henry, 2015)’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네 기억을 믿어. 그 기억은 모두 진짜니까."

영웅 영화의 주인공이 건물 사이며 하늘을 날아다닐 때,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격투를 벌이고 위험천만한 절벽에서 아슬아슬 곡예를 펼칠 때면 으레 우리 몸도 움찔움찔해집니다. 간혹 이 스릴을 잊지 못해, 착각해 현실 세계에서 영웅 영화의 주인공처럼 행동하다 다치는 관객들도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화면으로만 즐겨야 한다면, 관객은 기왕이면 화려한, 자극적인 화면을 원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CG가 이 역할을 맡았는데,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콘텐츠를 실감 넘치게 보여주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Head Mount Display)가 복병처럼 등장했습니다.

HMD의 장점은 ‘몰입감’입니다. 관객과 스크린 사이 있는 경계를 허물고 눈 바로 앞에 영상을 만듭니다. 여기에 영상 내용, 콘텐츠 자체를 1인칭으로 만들면 몰입감은 더욱 커집니다. 사실, 영화는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왜냐면 관객은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실감 넘치게 보기만 할뿐, 개입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직까지는 매력보다 한계가 더 크다고 판단했는지, 영화 업계는 아직 이 작품을 이을 1인칭 시점 영화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관객이 콘텐츠에 개입할 수 있는 게임 부문에서는 제법 큰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평단과 게이머로부터 찬사를 받은 VR 게임 ‘하프라이프 : 알릭스(Half-Life : Alyx)’가 예입니다. 이 게임 덕분에 하드코어 헨리같은 영화가 더 많아질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HMD도 만능은 아닙니다. 시야가 좁고, HMD에 탑재된 렌즈, 모니터 해상도가 낮으면 화면이 흐리고 어색해집니다. 머리에 쓰기 부담스러운 부피와 무게, 어지럼증도 해결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기술이 기기를 자유롭게 합니다. 최근에는 냄새, 촉감을 재현하는 HMD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한심한. 겁쟁이야. 누워서 피 삼키고 있을래, 일어나서 피 뱉고 놈들 피 쏟게 할래?"

실감을 극대화한, 사뭇 색다른 영화입니다. 하지만, 내용 자체는 좀 심심한(?) 복수극입니다.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게임을 많이 해 본 관객이라면 쉽게 예측할 수 있고 복선도 많아 새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영화라기보다는, FPS(First Person View, 1인칭 시점) 게임을 보는 듯합니다. 실제로 게임에나 등장할 법한 요소와 연출이 빈번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어지럽기도 하고, 주인공의 시야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만큼 매우 잔인합니다. 거의 5분에 한번씩, 갖가지 방법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니 호불호가 아주 크게 나뉠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완성도, 흥행 결과는 별개로 영화사에 한획을 그은 작품이라 할 만합니다. 스크린 밖에서 극을 감상하던 있는 주시자 관객을 스크린으로 잡아끌어 멱살을 잡고 ‘네가 주인공이 되라’고 구슬린, 최초의 영화니까요.

더 쓰기 편리한, 성능도 좋아진 HMD가 나온다면 이 영화의 속편, 더러는 비슷한 유형의 영화를 기대해볼만 하겠습니다. 물론, 장르도 액션이 아닌 로맨스, 멜로, 다큐멘터리 등으로 넓어질 수 있겠지요.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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