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29일 "일본 수출규제가 잠자는 한국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깨웠다"고 말했다.

박재근 회장은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개최한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와 과제’ 세미나에서 ‘수출규제 영향과 한국 소부장 경쟁력 변화’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10여년간 정체 상태에 있던 한국 소재부품장비 산업, 특히 고난도 소재 기술 개발을 위한 자극제를 일본이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소부장 산업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할 시기가 찾아왔다"며 향후 과제도 제안했다.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와 과제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박재근 회장 / 김동진 기자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와 과제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박재근 회장 / 김동진 기자
박 회장은 수출규제 직후 일본 소재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불산가스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핵심 3개 품목에서 국산화 성과를 얻었다"며 "불산은 일본산과 동일한 순도를 얻었고 생산량 증대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글로벌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제조된다. 일본 소재 기업도 한국에 공급해야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일본 불화수소 기업인 ‘스텔라케미화’가 수출규제 발동 직후 2019년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0% 급감한 것이 증거"라고 전했다.

일본 소재 기업의 빈자리를 채운 한국 기업의 활약은 눈부셨다. 고순도 불산 대량 생산에 성공한 솔브레인은 지난해 매출 첫 1조원을 달성했다. SK머티리얼즈는 해외 의존도 100%였던 초고순도(순도 99.999%) 불화수소 가스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코오롱 인더스트리는 독자 기술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모든 소재부품장비 자립 불필요, ‘선택과 집중'할 시기

박 회장은 국내 소재기업의 활약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큰 차질이 없었지만, 자립화 이후 생존을 고려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값비싼 연구설비와 석박사급 고급 인력이 필요한 소부장 모든 분야에서 자립하려고 자원과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다"며 "소재 공급처를 글로벌로 확대할 수 있는 품목 위주로 생존 가능성이 높은 중소업체 간 인수·합병이나 잠재력 있는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는 등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 김동진 기자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 김동진 기자
한일 소재기업 규모 차이 커
반도체는 장비, 디스플레이는 부품에 집중해야

박 회장은 한국과 일본 상위 소재기업 간 연구개발비 차이는 10배 이상이라며 기술개발이 가장 시급하고 시장 확장성이 높은 분야에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일본 최대 소재기업 중 하나인 신에츠화학 매출액은 18조원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의 4분의1 수준"이라며 "한국은 1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SK실트론을 제외하면 1조원 규모 매출을 올리는 소재기업이 없다. 장기·대규모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어떤 품목을 국산화할지 선택해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반도체·디스플레이와 관련된 소부장 모든 분야는 일본을 비롯한 해외 의존성이 여전히 높다"며 "국산화 대상과 품목의 우선순위를 검토해야 한다. 반도체는 장비, 디스플레이는 부품 분야가 기술 개발이 시급하고 시장 확장성이 높아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