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이름을 갖는 것처럼 민간 항공기도 나름의 ‘호적’이 있다. 항공기는 태어날 때부터 수명을 다한 후 폐기될 때까지 겪은 역사를 호적에 남기며, 호적상 이름은 일반적으로 영어와 숫자를 병기해 정한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소속 비행기의 주날개나 동체 뒷부분을 보면 ‘HL1234’와 같은 이름이 새겨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호적상 이름이다. 정식 명칭은 ‘국제 민간항공기 등록 기호(Civil Aircraft Marking)’며, 모든 항공기는 한 국가에서 발행한 등록 기호를 갖는다.

주날개와 후방 수직꼬리날개에 등록기호 ‘HL8314’을 새긴 대한항공 항공기 모습. 대한항공은 2019년 3월 4일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항공기 외관에 다양한 디자인 문양을 넣었지만, 국제 민간항공기 등록기호는 장식체를 쓰지 않았다. / 대한항공
주날개와 후방 수직꼬리날개에 등록기호 ‘HL8314’을 새긴 대한항공 항공기 모습. 대한항공은 2019년 3월 4일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항공기 외관에 다양한 디자인 문양을 넣었지만, 국제 민간항공기 등록기호는 장식체를 쓰지 않았다. / 대한항공
항공기 이름은 항공사 마음대로 짓는 것이 아니라 국제 규칙에 따라 짓는다. 국제전기통신연합 산하 국제무선위원회는 국가별로 독립된 부호를 할당하며, 한국의 식별부호는 HL(호텔 리마)이다. 식별부호는 에이(A), 비(B), 씨(C)가 아니라 알파(A), 브라보(B), 찰리(C) 등 포네틱 코드 형식으로 읽어야 한다.

포네틱 코드 읽는 법 안내 표 / 이진 기자
포네틱 코드 읽는 법 안내 표 / 이진 기자
모든 나라가 두 자리의 식별 부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 군사·경제 강국은 일반적으로 한 자리의 식별부호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영어와 숫자를 혼용한 경우도 있다. 미국은 N(노벰버), 영국은 G(골프), 중국은 B(브라보), 프랑스는 F(폭스트롯), 이탈리아는 I(인디아) 등 식별부호를 쓴다. 여담이지만 일본은 애초에 J(줄리엣)이라는 식별부호를 썼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JA(줄리엣 알파)로 식별부호가 변경됐다. 국제 민간항공기 등록 기호를 사용하는 민간 항공기로는 점보기나 제트기 등 대형 항공기와 경비행기, 헬리콥터, 글라이더 등 다양하다.

국가 식별부호 뒤에는 총 4자리의 숫자가 자리하며, 이 숫자는 국토교통부의 ‘항공기 및 경량항공기 등록기호 구성 및 지정요령’ 고시에 따라 정한다. 이 숫자를 통해 항공기 종류와 엔진 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숫자를 읽을 때도 일반 영어 단어처럼 포네틱 코드 형식에 따라 읽는다.

첫 자리는 항공기 종류를 나타낸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 자리 0은 글라이더와 비행선을 ▲1과 2는 피스톤 엔진 비행기를 ▲5는 터보프롭엔진 비행기를 ▲6은 피스톤엔진 헬리콥터를 ▲7과 8은 제트엔진 비행기를 ▲9는 터빈엔진 헬리콥터를 나타낸다. 국외 여행 중 탑승하는 항공기는 HL7XXX 이름을 달았다.

두번째 자리는 항공기가 탑재한 엔진 수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엔진이 하나면 1 ▲엔진이 두개면 0, 2, 5, 6 ▲엔진이 3개면 3 ▲엔진이 4개면 4, 6을 쓴다. 항공기가 얼마 없던 과거에는 1과 2만 써도 됐지만, 현재는 운항 중인 항공기 수가 늘어난 영향으로 이용 숫자가 확 늘었다. 세번째와 네번째 자리는 등록 일련번호로 이해하면 된다.

만약 대한항공 항공기의 국제 민간항공기 등록 기호가 HL7612라고 하면, 이 항공기는 제트엔진 2개 탑재한 항공기라고 이해하면 된다.

국제 민간항공기 등록 기호 표기 방법을 안내하는 자료 / 국토교통부
국제 민간항공기 등록 기호 표기 방법을 안내하는 자료 /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는 국제 민간항공기 등록 기호의 표기 방법을 법으로 정해 엄격히 관리한다. 여객기와 같은 항공기의 경우 꼬리날개 또는 동체, 날개에 등록 기호를 표시해야 한다. 꼬리날개나 동체에 표시할 때는 글자 높이가 30㎝ 이상이어야 하고, 날개에 표시할 때에는 50㎝ 이상이어야 한다. 글쎄는 장식체가 아닌 글씨체를 써야 하며, 외부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폭은 문자 및 숫자 높이의 3분의 2(아라비아 숫자 1은 제외)며, 굵기는 문자 및 숫자 높이의 6분의 1이다. 간격은 각 기호의 폭의 4분의 1 이상 2분의 1 이하여야 한다.

항공사는 국제 민간항공기 등록 기호와 별도로 KE0123편이나 OZ201등 ‘편명’을 별도로 사용한다. 공항에 근무하는 장내 아나운서는 항공기 탑승 관련 안내를 할 때 이 ‘편명’을 사용한다. KE나 OZ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부여하는 부호며, 부호 뒤에 오는 3자리 혹은 4자리 숫자는 항공기 운행 관련 대략적 정보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 편명의 첫 숫자의 경우 0은 국제선을, 1은 국내선을, 5는 공동운항을 나타낸다. 두번째 자리는 운항 지역을 나타내며, 3번째는 취항 도시, 마지막 자리는 입국(짝수)·출국(홀수) 여부를 나타낸다. 단, 항공사별 이름 짓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이진 기자 jinle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