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엘리시움(Elysium, 2013) : ★★★☆(7/10)

줄거리 : 2150년대, 기술을 독점한 부유층은 피폐해진 지구를 버리고 우주 도시 ‘엘리시움’을 세운다. 지구에 남은 빈민층은 그저 엘리시움을 위한 노동자로 살아야 할 뿐, 엘리시움의 기술을 누릴 수는 없었다.

지구인 맥스는 방사능 피폭 사고를 당해 5일 후 죽을 위기에 처한다. 엘리시움의 최첨단 의료 기기를 쓰면 살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을 들은 맥스, 그는 엘리시움에 가는 조건으로 납치 임무를 맡는다.

간단해 보이던 임무는 곧 지구와 엘리시움, 나아가 인류 전체의 존망을 결정할 전쟁의 열쇠가 되는데……

"당신은 5일 후 죽습니다. 그 동안 수고했습니다."

과학 기술은 대개 사람의 삶을 더 편리하게, 더 낫게 하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사람을 위해 만든 과학 기술을 모든이가 공평하게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 기술에도 빈부격차가 있습니다. 이 불평등을 무작정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 기술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력과 자원을 생각해보면……

오늘날 과학 기술의 빈부격차는 크고 깊게 벌어졌습니다. 깨끗한 물, 음식을 먹고 의료 진료를 받으며 건강하게 사는 우리의 일상은 지구촌 어딘가, 낙오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아닙니다. 인류는 생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지성인입니다. 가장 시급한 ‘의료 기술’의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세계 각국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엘리시움 포스터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엘리시움 포스터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그럼에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과학 기술의 빈부격차는 큰 문제입니다. 이로 인해 벌어진 의료 차별과 인권 문제는 여전히 심각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 깊게 벌어진다면, 과학 기술이 으레 만들어야 할 이상향 한쪽에 어두운 구름이 끼게 될 것입니다.

불평등한 기술에 이지러진 이상향, 영화 ‘엘리시움(Elysium, 2013)’이 그린 미래입니다.

"이거면 그들의 모든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어."

이 영화에서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 백미는 ‘메디컬 머신’입니다. 백혈병이나 암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도, 심지어 팔다리며 얼굴 반쪽이 날아갈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해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쳐줍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생명’을 지켜줄 기술입니다.

하지만, 메디컬 머신은 엘리시움에 사는 사람만 누릴 수 있습니다. 과학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원. 그 자원을 만드는 지구 사람들은 그저 착취당할 뿐, 자신이 만든 자원의 혜택인 메디컬 머신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저 아래에서 위를, 모든 것이 풍족한 엘리시움을 올려다보며 조금씩 분노를 키우던 이들이 별안간 폭발합니다. 계기는 무구한 아이를, 생명을 빈부격차 때문에 살리지 못한 것입니다. 평등해야 할 생명이 구조와 불합리 속에 허무하게 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갈아온 분노의 칼이 결국 차별을, 격차를 만들고 유지하려는 이들의 목젖을 찌릅니다. 과학을, 기술을, 편의를 독점하려는 이들의 정수리를 내리칩니다.

"넌 아주 특별한 일을 하려고 이 세상에 온 아이란다."

이 영화의 감독 ‘닐 블롬캠프’는 각종 차별과 갈등을 독특하게, 개성있게 그리는 감독입니다. 그의 첫 영화 ‘디스트릭트9’는 지구인과 외계인간 종족 갈등을, 두번째 영화 ‘엘리시움’은 가난한 일반인과 기술을 독점한 부유층간 빈부 갈등을, 세번째 영화 ‘채피’는 사람과 로봇(AI)의 경계 갈등을 각각 그립니다.

개성 강한 소재와 매력적인 주제, 예측하기 힘든 전개로 큰 인기를 끈 ‘디스트릭트9’에 비해 이 영화의 인상은 다소 밋밋합니다. 중반까지는 과학 기술의 빈부격차, 그로 인해 일어날 법한 암울한 미래를 아주 설득력있게 그립니다. 종반 이후 개성과 메시지는 희미해지다가 결말은 평범한 구세주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영화 자체의 속성은 진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앞서 소개한 영화 ‘코드명 J’처럼 이 영화에서도 사람의 두뇌를 저장 공간으로 쓰는 모습이 나옵니다. 코드명 J의 주인공, 죠니의 두뇌 용량은 고작 80GB(기가바이트)였고, 그나마도 죠니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뇌에 과부하를 줬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맥스의 두뇌 용량은 무려 50EB(엑사바이트)입니다. 뇌에 과부하도 없습니다. 50EB는 5만1200PB(페타바이트), 5242만8800TB(테라바이트), 536억8709만1200GB입니다. 이 막대한 용량으로 저장한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 소품이니, 보고 확인하세요.

2021년 죠니의 세대에서 130년쯤 지나 2153년 맥스의 시대가 오면, 인류 두뇌 용량은 이렇게 7억배나 늘어나고 튼튼해지나봅니다. 진화할 보람이 있겠네요.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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