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통해 학습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게임 안에는 문학·과학·사회·상식 등 다양한 분야 숨은 지식이 있다. 게임에 과몰입하라는 것이 아니라, 게임 내 스토리를 잘 보면 공부할 만한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오시영의 겜쓸신잡(게임에서 알게된 데 없지만 알아두분 기한 느낌이 드는 동사니 지식)은 게임 속 알아두면 쓸데없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잡지식을 소개하고, 게임에 대한 이용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코너다. [편집자 주]

넥슨이 1996년부터 서비스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바람의나라’는 고구려·부여 시대 생활상을 다룬 게임이다. 게임 내 귀환 장소인 ‘주막’을 방문한 게이머는 NPC(주모, 도우미 캐릭터)에게 동동주, 막걸리 등 각종 술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다.

술 아이템은 마력을 회복하는 데 쓴다. ‘동동주 [200잔]’ 아이템을 한 번 사용하면 동동주가 한 잔 줄어 ‘동동주 [199잔]’이 되는 대신 마력이 30 차오르는 식이다. 대신 체력은 한 잔 마실 때마다 1만큼 줄어든다. 이용자에게 술이 건강에 해롭다는 교훈(?)을 주는 셈이다.

주모가 파는 술 중 하나는 ‘백세주’다. 동동주가 10전, 막걸리가 10전인 게임에서 2000전이라는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술이다. 게임 내 설명으로는 ‘한약재를 넣어 발효시킨 술’이라고 설명한다. 게임 내에서 백세주는 아무리 마셔도 체력이 소모되지 않는 고급 술(?)이기도 하다.

바람의나라에서 주모에게 백세주 아이템을 사는 모습, 실제 백세주의 모습(파란색) / 오시영 기자, 국순당
바람의나라에서 주모에게 백세주 아이템을 사는 모습, 실제 백세주의 모습(파란색) / 오시영 기자, 국순당
고구려·부여 시대에 전통주로 분류되는 백세주를 사 먹는 것은 얼핏 보면 딱히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당시에 백세주를 사먹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백세주는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주종이기 때문이다.

백세주는 故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가 1991년 개발한 전통주다. 백세주는 쌀과 누룩에 구기자, 오미자, 홍삼 등 한약재 12가지를 넣어 생쌀을 그대로 갈아 발효하는 '생쌀 발효법' 활용해 만든다.

백세주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실린 '구기 백세주 설화’에서 따왔다. 구기백세주 설화는 구기자를 넣어 만든 백세주를 마신 덕에 늙지 않는 젊은 청년이 80세에 낳은 아들을 회초리로 때린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국순당은 구기 백세주 설화를 소개하는 포스터를 제작한 후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했다.

과거 백세주 홍보 포스터 / 구글 이미지
과거 백세주 홍보 포스터 / 구글 이미지
자유기업원 자료에 따르면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가 백세주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술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민족주가 없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시안게임(1986년)과 올림픽(1988년) 등 대규모 체육 행사를 개최했는데, 배 창업주는 당시 세계인에게 내놓을 만한 전통주가 마땅하지 않았다는 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등장한 백세주는 2000년대 초반 ‘몸에 좋은 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고, 시장에서 인기를 끌엇다. 국순당의 2003년 매출은 1300억을 넘기며 정점을 찍었다. 당시 백세주는 단일 품목 매출액이 1237억원에 달하는 등 회사 전체 매출의 94%쯤을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기도 했다.

백세주를 활용한 ‘오십세주’의 인기도 더해졌다. 오십세주는 도수가 약한 백세주와 상대적으로 강한 소주를 반반 섞은 폭탄주의 일종이다. 최근 인기있는 ‘테슬라’(테라+참이슬), ‘테진아(테라+진로이즈백)’, ‘구름처럼’(클라우드+처음처럼), ‘카스처럼’(카스+처음처럼) 등 폭탄주처럼 전통주와 소주 간 결합이 유행이었다. 바람의나라 주모도 아이템으로 ‘오십세주’를 판매한다.

하지만 소주 도수가 낮아지면서 오십세주의 인기가 떨어졌다. 주류 트렌드가 바뀌고, 2015년 백수오 파동 사건이 일어나며 백세주가 타격을 입었다. 국순당의 최근 경영 상황도 좋지 못하다. 5년 연속으로 수십억원대 영업 손실을 기록 중이다. 국순당은 6월 29일 백세주를 전면 리뉴얼하며 실적 개선을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폭탄주 ‘오십세주’를 제조하는 모습(왼쪽)과 바람의나라 주모가 판매하는 아이템 ‘오십세주’ 모습 / 성실모터스 유튜브, 오시영 기자
폭탄주 ‘오십세주’를 제조하는 모습(왼쪽)과 바람의나라 주모가 판매하는 아이템 ‘오십세주’ 모습 / 성실모터스 유튜브, 오시영 기자
한편, 동동주는 ‘부의주(浮蟻酒)'라는 이름으로 고려 말에 쓰인 ‘목은집’, 조선 시대의 ‘수운잡방’, ‘고사촬요’ 등에 등장한다. 막걸리는 삼국사기에 미온주(美溫酒)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주막이라는 말이 실록에 본격적으로 올라온 것은 1700년대 부터다. 이전에는 주루, 주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