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경의 테크&영화] SF8 간호중·블링크·우주인 조안·만신 (SF8, 2020)'

입력 2020.07.12 06:00

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한국은 명실상부한 영화 강국입니다. 매년 관객 수천만명이 극장을 찾고, 아카데미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습니다. 한국 배우는 헐리우드의 눈길을 받고, 멀티플렉스나 실감미디어 등 기술은 미래 영화계를 주도할 기술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튼튼한 기본기를 가진 한국 영화계가 드라마와 영화의 장점만을 모은 ‘크로스오버(Crossover)’ SF(Science Fiction) 영화를 만듭니다. MBC·한국영화감독조합 기획에 웨이브 투자, 수필름이 제작한 SF 앤솔로지(Anthology) 시리즈 ‘SF8’이 그 주인공입니다. 재능있는 한국 감독과 유망 배우가 모여 인공지능(AI)·로봇·증강현실·게임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주제로 작품 8편을 만들었습니다.

SF8 전편이 10일 OTT 웨이브에 먼저 공개됩니다. 8월 중 완전히 같은 내용으로 MBC에서도 방영될 예정입니다.

SF8 1회 간호중(SF8 The Player, 2020) : ★★★★☆(8.5/10) / AI·로봇·윤리 드라마

줄거리 : 식물인간 어머니를 10년간 간호한 연정인. 지친 그녀가 세상을 등질 확률은 95%다. 간병 로봇 간호중은 어머니를 살리고 연정인을 방치할지, 연정인을 살리고 어머니의 간호를 그만둘지 고뇌에 빠진다. 간호중의 선택은 이들을 모두 다른 무엇인가로 변하게 한다. 수녀 사비나는 그저 무력하게 보고있을 수밖에 없다.

SF8 간호중 / 웨이브
사람은 편하고 안전하게 살려고 과학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정체가 AI와 로봇입니다. 로봇은 사람보다 우월하지만, 윤리와 종교는 갖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간병 로봇’ 간호중이라면 사람의 윤리와 종교를 가질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간호중은 윤리의 기로 앞에 섭니다. 사람 하나가 죽어야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둘 다 살릴 수 없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녀는 로봇다운 합리에 맞게, 사람다운 윤리에 맞게 선택하지만, 사람들은 허술한 종교의 탈을 쓰고 그녀를 비난합니다.

로봇의 임무와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알려진 윤리를 들어서 선택했건만, 종교적인 비난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로봇이 종교를 배우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로봇에게 사람의 법률과 윤리를 들이댈 수 있을까요? 그 기준과 자격은 누가, 어떻게 정할까요?

결국 기도하며 눈 감는 간호중.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비밀을 지켜보고 깨달은, 하지만, 망쳐버런 사람 사비나 수녀는 그저 뉘우치며 기도할 뿐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온갖 감정과 윤리간 갈등이 ‘간호중’의 매력입니다.

SF8 2회 블링크(SF8 Blink, 2020) : ★★★(5.5/10) AI·사이버네틱스(신체강화) 액션 코미디

줄거리 : AI, 사이버네틱스 기술을 적극 이용하는 다른 경찰과 달리 지우는 몸과 직감만 쓴다. 어렸을 때 자율주행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탓. 하지만, 얄궂게도 지우는 최신 형사 보조 AI ‘서낭’의 테스터가 된다. 서낭과 티격태격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지우. 조금씩 마음을 여는 지우와 서낭 앞에 강대한 시련이 찾아오는데……

SF8 블링크 / 웨이브
기술을 잘 쓰다가도, 별안간 불안해지고는 합니다. 혹시 기술이 잘못 동작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사실 아무리 완벽한 기술이라 해도 늘 어딘가 빈틈은 있습니다. 그 빈틈이 때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기술을 꾸준히 개발하고 더 좋게 만듭니다. 기술 역시 사람과 함께 성장합니다. 사람과 기술은 서로를 있도록, 발전하도록 이끄는 존재입니다. 먼저 이것부터 인정해봅시다. 그러면 지우와 서낭처럼 완전히 달랐던 이들도, 사람과 기술이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품과 흐름, 갈등이 평이하고 일부 구성은 살짝 허술합니다만, 재미는 확실합니다. 간편하게 보고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대중 SF 드라마로 손색없는 작품입니다.

SF8 3회 우주인 조안(SF8 Joan’s Galaxy, 2020) : ★★★☆(7/10) 미세먼지·포스트아포칼립스 멜로 드라마

줄거리 : 근미래, 독성 미세먼지 항체주사를 맞아 오래 사는 이들은 C, 항체주사를 못 맞아 채 30년도 못 사는 이들은 N으로 불린다. 26세 대학생 이오는 자신을 C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병원의 착오로 주사를 못 맞은 N이었다. 이오는 N 친구 조안을 만나 자신 대신 주사를 맞은 N을 찾고, N의 삶을 살면서 C였을 때 느끼지 못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다.

SF8 우주인 조안 / 웨이브
여러분은 ‘답답하게 오래’ 살고 싶은가요? ‘자유롭게 짧게’ 살고 싶은가요? 과학은 우리들에게 긴 수명과 건강, 편리를 줬습니다. 한편으로는 과학은 사람 사이 차별을 만들었습니다. 차별은 불안을 낳았고, 불안은 사랑을 지우고 그 자리에 시기를 세웠고, 시기는 사람 사이 관계를 더 멀게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속 C들은 오래 살 수는 있지만, 공포에 짓눌려 불안한 삶에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삽니다. 반면 N들은 오래 살 수 없지만, 서로 만지고 교감하고 아끼고 배려하며 마음만은 풍요롭게 살아갑니다. 이처럼 풍요로운 하루라면 과연, 하루는 1년만큼 충실할 것입니다. 찰나일 지라도 기억 속에, 눈 감을 때까지 남을 것입니다.

과학이 차별을 만들어도 그 차별을 벗고 서로의 체온을 느낀다면, 하루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끝이 정해진 비극, 어두운 근미래와 기술에 종속된 우리 삶을 우울하게 그리지 않고 도리어 밝은 희망을 그렸습니다. SF 속성은 옅지만, 예쁜 화면 속 짙은 메시지와 감성은 눈을 감아도 떠오릅니다.

SF8 4회 만신(SF8 Manxin, 2020) : ★★★☆(7.5/10) AI·빅데이터 미스테리 드라마

줄거리 : 96.3% 확률로 미래를 맞추는 앱 ‘만신’. 사람들은 만신을 신으로 섬기거나, 증오스런 적으로 삼는다. 만신의 예언 때문에 동생을 잃은 토선호는 만신교 신도 정가람과 함께 만신의 실체를 찾아나선다. 난관을 딛은 선호와 가람이 찾아낸 만신, 그 정체는……

SF8 만신 / 웨이브
AI는 데이터를 토대로 판단합니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왜곡됩니다만, 데이터는 변하지 않습니다. 수학 공식이 틀리지 않는 것처럼, 불변의 데이터를 분석해 내린 판단은 곧 진리에 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사람은 뭔가에 의존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지금까지 종교, 철학을 믿고 의존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순식간에 데이터와 AI에 빠지는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에 변수가 있듯 데이터에는 ‘노이즈’가 있습니다. 그래서 극중 만신의 예언도 수차례나 빗나갑니다. 노이즈는 누군가 만들어 임의로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노이즈가 곧 데이터를, 분석을, 믿음을, 의지를 왜곡합니다.

만신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애타게 추구합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그것’을 나눠준 순간, 최후의 예언을 내린 순간, 만신은 비로소 기계장치의 신이 됩니다.

빠른 전개와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보고 나서 곱씹어볼수록 만신이 남긴 메시지를 캐낼 수 있는 즐거운 미스테리 드라마입니다.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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