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의 IT 확대경] 실리콘밸리 부러우면 노동유연성을 높여라

  •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입력 2020.07.16 06:00



    정치권은 노동 문제를 접근할 때 기업을 선악 프레임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선한 기업과 악덕 기업으로 나누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큰기업이든 자영업자이든 생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조건들을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

    최저임금인상, 주52시간제, 비정규직제로, 고용보험 확대 등 모든 정책은 뜻으로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의 수용 여부는 기업이 생존하는데 도움이 되느냐에 달렸다.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조건을 반영한 정책도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될 때 지속할 수 있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온갖 장치가 마련되었는데 기업이 사라져 버리면 백약이 무효다.

    공기업은 노동자를 위한 무리한 조치로 인해 경영이 어려워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대신에 국민 부담이 된다. 36개 공기업의 올해 정규직 인건비는 12조원에 달한다.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에 비해 16.7% 급증했다. 40% 이상 늘어난 곳도 여럿 있다. 공공서비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거나 적자 경영을 면하려면 국민의 세금을 투입할 수 밖에 없다.

    사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경영의 부담 또는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기댈 데가 없다. 물론 대규모 정부 자금이 투입되는 경우가 늘어서 걱정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사라진다. 그러니 경영계에서는 생산성에 연동하지 않는 어떠한 조치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샌프라시스코 인근 지역이 ‘실리콘밸리’로 명성을 얻게 된 배경은 금융생태계와 노동유연성을 들 수 있다. 수많은 기술기업이 생기고, 사라지며 또 생기기를 반복한다. 4대 기술기업의 시가총액이 5300조원에 달해 한국의 양대 주식 시장에 상장한 모든 기업의 시가총액의 3배나 된다.

    회사가 어렵거나 문 닫으면 언제든 회사를 떠날 각오가 된 유능한 인재들이 성공의 몫을 꿈꾸며 모여들고 있다.(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을 못해서가 아니라) 따지고 보자면 본인 스스로를 투자하는 꼴이다. 회사가 어찌되든 고용이 유지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한다. 그 대신 회사가 성공하면 월급 정도가 아니라 대박을 함께 나누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해서 준 재벌급 월급쟁이들이 태어난다. 이들이 또 투자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재벌급으로 성공한 회사 초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성공신화를 쓰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15일 전에만 통지하면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그러니 기업은 고용의 부담이 없다. 개인적으로 20여년 전에 한국사무소를 보름 후에 닫는다는 결정을 사전 협의 없이 전화로 통보받아 당황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결정을 한 사람들과 지금도 친구 관계를 유지한다. 사실 경영진과 종업원은 대척적인 관계가 아니다. 법인이라고 하는 가상의 존재를 매개로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여 성공을 지향하고 성공하면 몫을 나누고 실패하면 서로 부담을 떠안는 파트너인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흥하기도 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 쪼그라들기도 한다. 또 다시 일어나기도 하는 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이럴 때 풍선처럼 늘렸다 줄였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활동을 선악의 논리로 계속 옭아매려 하니 문제가 안 풀린다. 비정규직이 좋은 예이다. 보수정권에서 비정규직이 양산되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참여정부 때 만들어진 비정규직보호법부터 시작한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반대에도 밀어붙인 결과다.

    비정규직으로 2년 고용하면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규정이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현장에서는 2년을 채우기 전에 계약을 해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정규직은 또 다른 비정규직 자리를 찾아 전전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제 비정규직 제로를 외친다. 그런데도 기업은 임시직을 고용하거나 아예 자동화, 로보트화로 고용을 기피하는 사태로 번진다. 무리를 해서라도 고용을 늘리면 좋을텐데 한번 고용하면 끝까지 책임져야 하니 기업에는 많은 부담이다. 이에 더해 고용주에게 여러 가지 법률적 책임을 지우니 고용을 늘리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결국 늘어난 고용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든지 노동유연성이라도 늘리지 않으면 기업의 고용을 늘릴 수 없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ho123j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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