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경의 테크&영화] SF8 하얀까마귀·증강콩깍지·일주일만에사랑할순없다·인간증명 (SF8, 2020)'

입력 2020.07.19 06:00

주제로, 소품으로, 때로는 양념으로. 최신 및 흥행 영화에 등장한 ICT와 배경 지식, 녹아 있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영화만큼 내용이 깊고, 단편 드라마처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SF 크로스오버 콘텐츠 SF8. SF8 전편이 10일 OTT 웨이브에 먼저 공개됐습니다. 8월 중 지상파 방송사인 MBC도 방영한다.

SF8 1~4회에 이어 5~8회를 봤습니다. 작품별 소품과 주제, 장르가 다른데다 완성도가 사뭇 높아 영화 여러 편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줍니다. 잘 만든 자체 제작 콘텐츠는 OTT의 단기 성적을 판가름합니다. SF8 8편 모두 웨이브를 구독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SF8 5회 하얀 까마귀(SF8 White Crow, 2020) : ★★★★(8/10) / 가상현실·게임 호러

줄거리 : 구독자 80만명을 거느린 인기 게임 BJ 주노. 생방송 중 ‘주노는 과거든 현재든 모든걸 조작한다’는 동창생의 폭로에 모든 것을 잃는다. 복귀하기 위해 초대형 신작 게임 생방송을 준비하는 주노. 그 게임은 뇌를 조작해 기억 속 트라우마를 극대화하는 것이었고, 주노는 게임 속에 갇히고 만다. 순간, 그녀가 숨겨온 진실이 습격하는데……

SF8 하얀 까마귀 / 웨이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가 기억입니다. 기억이 항상 좋을수만은 없습니다. 지우거나 숨기고 싶은, 부끄럽고 잔인한 기억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골라 좋은 기억만을 남깁니다. 나쁜 기억은 더러는 고치고, 덧씌워 왜곡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진실은 늘 그곳에 진실로 존재합니다.

첨단 기술은 기억을 보존하고 나아가 재현합니다. 여기에 예외는 없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려 기억과 기록을 고치고 왜곡해도, 가상현실 공간에서 내가 아닌 것처럼 아바타를 쓰고 꾸며도 진실은 늘 그곳에 진실로 존재합니다. 그 진실은 첨단 기술의 힘을 얻어 실제 기억이 되고, 그 순간 기억의 공포가 되살아납니다.

어쩌면, 가상현실이야말로 트라우마를 고치고 진짜 기억과 나 자신을 찾을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가짜 나를 만들거나 진짜 나를 찾거나. 진실과 마주보는 순간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분위기가 으스스합니다. 호러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화면, 공포를 더하는 극중 설정과 소품이 아주 잘 어울립니다. 복선도 유효하고, 메시지를 한번에 폭발시키는 결말도 인상적입니다.

SF8 6회 증강 콩깍지(SF8 Love Virtually, 2020) : ★★★★(8/10) 앱·가상현실 코믹 로맨스

줄거리 : 가상현실 데이트 앱 증콩(증강콩깍지)에서 커플 1500만쌍이 탄생한다. 증콩 속 연인 지젤과 레오나르도는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것을 주저한다. 순간 증콩 앱에 오류가 생기자, 하루라도 못 보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이들은 서로를 찾아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마주친 지젤과 레오나르도 사이에 뭉게뭉게 피어오른 것은?

SF8 증강 콩깍지 / 웨이브
스마트폰 앱은 정말 편리합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앱만 있으면 실시간으로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한편 이렇게 사랑하기 편해진 시대이기에 그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앱으로 사랑을 외치고 이별도 전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앱은 오로지 0과 1로 만들어진 것. 사람의 감정과 온기를 뭉치고 뭉쳐 만드는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앱을 거치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닌 앱 속의 내가 됩니다. 게다가 앱은 사람을 편리하게 해 주는 동시에 소심하게 합니다. 손가락은 얼마든 놀려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만, 정작 그걸 목소리로 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정 어려우면 술의 힘을 살짝 빌려보세요. 퀘스트 클리어하는데 치트 좀 쓰면 어떻습니까? 자 그럼 여러분, 집 안에 있지 말고 사랑을 찾으러 지금 당장 나가세요. 손가락을 눌러 고백하지 말고, 상대의 눈을 보고 목소리를 내세요.

소품, 대사, 줄거리 모두 참신하고 재미있습니다. 귀엽고 안타깝지만, 행복한 연인의 이야기, 러닝 타임 내내 기분 좋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코믹 로맨스 드라마입니다.

SF8 7회 일주일만에 사랑할 순 없다(SF8 Baby, It’s Over Outside, 2020) : ★★★(6/10) 초능력·종말 코미디

줄거리 : 일주일 후 지구는 운석과 충돌해 멸망한다. 모태솔로 경찰 김남우는 종말이 오기 전 외로워 죽을 지경이다. 지구에 숨어있던 초능력자들이 종말을 막으려 모이는 가운데 남우는 초능력자 스승을 찾는 소녀 혜화와 만난다. 혜화를 보고 반한 남우. 그런데, 남우와 혜화가 초능력자였고 둘이 힘을 합하면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SF8 일주일만에 사랑할 순 없다 / 웨이브
곧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부터 하고 싶은가요? 가족, 연인과 시간을 보내려는 이들, 바라던 일을 하거나 갖고 싶던 것을 가지려는 이들, 그리고 아마 가장 많은 것이 바로 ‘사랑해보려는 이들’일 것입니다.

사랑은 ‘기적’입니다. 수년 혹은 수십년간 전혀 모르던 이들이 만나 호감을 가지고, 나아가 그 호감을 주고받고 이해해야 비로소 이뤄지는 기적입니다. 그러니 단숨에 만들어질 리 없습니다. 단숨에 만들어진 사랑도 있지만, 그야말로 기적 중 가장 드문 기적입니다.

아무리 급하고 궁지에 몰려도 사람의 마음이 빚는 기적은 쉬이 이뤄지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랑에 실패해도 늘 기회는 다시 온다고 하니 모쪼록 실패를 거듭하지 않도록 노력할 일입니다.

종말이 눈 앞인데 나사 빠진 듯한 모습만 보이는 인물들. 소소한 개그와 기발한 반전이 훌륭히 어우러진, 귀여운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위에 올린 사진 바로 다음 장면이 ‘SF8 8편을 통틀어 가장 어처구니 없으면서 웃기는 장면’이니 꼭 보세요.

SF8 8회 인간증명(SF8 Empty Body, 2020) : ★★★★☆(8.5/10) 인조인간·AI 미스테리 드라마

줄거리 : 가혜라는 차사고로 죽은 아들 김영인의 뇌 일부를 AI로 대체, 인조인간 A-796의 몸에 이식해 되살려낸다. 아들을 찾았지만, 혜라는 AI가 영인을 죽이고 영인인체 하는 게 아닐까 의심한다. 혜라에게 절망하고 분노하는 영인. 물리 검사 결과 영인의 생체 신호는 없었다. 영인은 그저 자신이 존재한다고 되뇌일 뿐이다.

SF8 인간증명 / 웨이브
인공지능(AI)은 발전을 거듭해 옛 예술가의 작품을 재현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수많은 정보, 데이터로 만든 AI를 실재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재현한 AI와 사람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요? AI는 사람이 잊어버린 기억, 모르던 습관, 숨겨온 감정까지 재현하는데요?

AI가 된 나, 내가 된 AI. 어느쪽이 진실인가요? 여러분은 나보다 더욱 나같은, 매사에 주저하는 나보다 모든 것을 과감히 선택하는 AI에 맞서 존재를 어떻게 증명하실 건가요? 또, 사람만큼, 사람보다 더 정밀한 AI를 없애면 그것은 살인인가요? AI가 사람을 없애면 그것은 살인죄에 해당하나요? AI가 죄를 말하면 자백인가요? 프로그래밍된 거짓인가요?

사람은 스스로 AI의 창조주라며 잘난체 하지만, 사실 한없이 무력할 뿐입니다. 더러는 의심할, 더러는 기대고 의지할, 더러는 숨을 뿐입니다.

과연 영인은 영인일까요, AI일까요? 영인의 대사와 표정을 곱씹어볼수록 깊은 재미와 전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미쌍관, SF8 1화 '간호중'과 이어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간호중이 인간성과 윤리를 다뤘다면, 이 작품은 존재론을 다룹니다. 기술을 꼬집는 물음을 던지며 SF8 전체를 마무리하는 걸작 드라마입니다.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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