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 10월부터 가상자산 거래소득에 세금 부과
투자자들 "투자자 보호 조치 없이 세금 걷기 혈안"

정부가 내년 10월부터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공개했다. 가상자산 투자자들 불만이 최근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배경이다. 정부가 납세자 보호 조치를 뒤로 하고 투자자에게 성급하게 경제적 부담만 안겼다는 평가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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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21년 10월부터 ‘가상자산 과세’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내년 10월부터 가상자산 거래를 통해 250만원 이상의 투자 수익을 얻은 투자자는 양도차익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가상자산 거래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이 포함된 세법개정안 때문이다.

정부는 국내 거주자가 가상자산을 양도 또는 대여할 경우를 ‘기타소득’으로 분류키로 했다. 과세표준이 되는 가상자산 소득금액은 양도대가(시가)에서 취득가액과 부대비용을 제외한 비용으로 정했다. 세율은 20%다. 국제회계기준과 현행 상표권 등 무형자산에서 발생한 소득에 과세체계 등을 감안해 정했다.

국내 비거주자 및 외국법인은 국내원천 기타소득으로 과세 및 원천징수키로 했다. 원천징수세액은 양도가액의 10%와 양도차익의 20% 중 낮은 것으로 한다.

가상자산 투자자=보호받지 못하는 납세자

정부가 과세안을 발표하자 투자자 불만은 쏟아져 나온다. 가상자산으로 얻은 소득이 기타소득으로 분류된 까닭에 결국 ‘보호받지 못하는 납세자’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납세자 보호를 받는 주식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간 정부는 가상자산을 ‘자산’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투기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투자자 보호 조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특히 투자자들이 가장 문제 삼는 점은 형평성이다. 우선 가상자산 비과세 소득구간은 연 250만원으로 주식(5000만원)에 비해 턱 없이 낮다. 또 주식 양도세율 적용시기는 2023년인 반면 가상자산 거래소득세는 당장 내년부터 시행된다.

이 밖에도 투자자들은 주식 시장에는 손실 이월공제 기간(5년)이 있는데 가상자산 시장에는 없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예컨대 지난해 2000만원의 손실을 보더라도 올해 1000만원의 이익이 발생하면 세금을 내야 하는 꼴이다. 이익이 나면 세금은 칼 같이 걷되, 손실에 대해선 알 바 아니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과세안의 이 같은 형평성 문제를 지적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만명 이상의 참여자가 동의 의사를 밝힌 상태다.

권단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주식 투자자와 가상자산 투자자를 차별 대우하는 입법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주식과 가상자산 시장의 역사와 범위, 사회경제적 영향력 등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하게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을 주도한 기재부는 가상자산 성격이 주식과 확연히 다를 뿐 아니라 시장이 주식시장처럼 양성·제도화된 게 아닌만큼, 손실 이월공제를 따지기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후 이 시장이 양성화 및 제도화된다면 손실 이월공제를 논의해 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악물고 세금 안낸다"…묘책 찾기 분주

투자자 보호 조치 없는 세금 걷기에 투자자들은 해외 거래소나 장외거래(OTP), 개인 지갑 거래 등을 통한 세금회피를 노리는 모양새다.

이에 법조계 관계자들은 해외 거래소 이용은 현명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해외 거래소 등을 통해 우회하더라도 현금화를 하기 위해서 국내 거래소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취득 경위나 기준 가격을 소명해야 한다"며 "이번 세법개정안 내 해외금융계좌 신고 대상에 가상자산 거래 계좌가 포함됐기 때문에 관련 협약 체결국에서는 대신 세금을 매겨달라는 요청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세회피처 내 거래소에 가상자산을 보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결국 원화로 현금화할 때는 세금납부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라며 "정부 방침은 그렇게 보인다"고 덧붙였다.

거래소를 통하지 않는 미등록 OTC 업자를 통한 매매 거래나 개인간 지갑을 통한 P2P 거래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각종 가상자산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문의하는 게시글이 잇따라 등장한다.

이에 대해 권 변호사는 "미등록 가상자산 사업자를 통해 매매하거나 개인지갑을 활용할 경우 투자자가 신고를 누락해도 과세관청이 거래를 포착하기는 힘들다"며 "자진신고를 하지 않으면 소득을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