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의 4년째 이어지는 한국 게임 판호(허가증) 미발급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청와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중국 게임 판호 전망과 방안 모색’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중국 판호 발급 재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게임은 생선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상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생선이 썩어가는 중"이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역설했다. 이번 토론회는 콘텐츠미래융합포럼과 송영길 의원실(외교통상위원장), 이상헌 의원실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중국 정부는 2017년 3월부터 한국 게임에 단 한 건도 판호(허가증)를 발급하지 않았다. 4년이 다 됐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위 학회장은 "판호 발급을 막은 것은 WTO 기본 원칙을
위배하는 일로, 그동안 세계 무역에서 이런 불공정 무역이 존재한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은진 명지전문대 교수, 윤선학 중원게임즈 대표,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 우수근 중국 산동대학교 객좌교수, 김현환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한동숭 전주대 학장,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 / 오시영 기자
(왼쪽부터) 이은진 명지전문대 교수, 윤선학 중원게임즈 대표, 황성익 한국모바일게임협회장, 우수근 중국 산동대학교 객좌교수, 김현환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한동숭 전주대 학장,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 / 오시영 기자
위정현 학회장 "판호 발급 재개하기 적합한 시기가 왔다. 남은 것은 행동"
우수근 교수 "판호 해결 낙관적으로 볼 수 없어, 청와대가 나서야"

위정현 학회장은 "중국의 한국 게임 업계 견제 전략은 판호 허가를 늦추거나 불허하면서 현지 게임사가 한국 게임을 베끼고, 시장을 선점할 시간을 확보해 한국 게임이 경쟁력을 잃도록 하는 것"이라며 "사실 중국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이미 한국 게임을 규제할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2017년부터 문화부 대신 공산당 선전부가 게임을 관활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위 학회장은 판호 발급이 재개되기 적합한 시기가 왔다는 전망을 내놨다. 코로나19 팬데믹 현상 발생 이후 한국 정부는 중국 국민의 입국을 한 차례도 금하지 않는 등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한 점, 최근 미중 무역 분쟁이 심해지면서 중국이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을 미국과 분리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위 학회장은 "만약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다면 2020년 상반기 시진핑 주석이 방한했을 것이고, 그 시점에 맞춰서 판호 발급이 재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방한이 늦어지면서 상황이 다소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한국을 한한령으로 압박하는 것은 중국에도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인 탓에 판호 해결을 위한 기본적 조건은 갖춘 셈"이라며 "한국 정부나 민간에서 실제로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할지가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 오시영 기자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 오시영 기자
우수근 중국 산동대학교 객좌교수는 판호 발급 재개 여부를 낙관적으로 볼만한 상황이 아니며, 일개 부처가 아닌 청와대에서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외교 특보로도 일했던 중국전문가다.

우 교수는 한동안 한중 관계가 서서히 풀리는 듯하다가 최근에는 다시 꼬이는 방향으로 가는데, 이는 중국에서 미·중 무역 분쟁 속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쪽을 자꾸 택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탓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게다가 중국 게임 시장이 세계 1, 2위를 다투고, 한국 게임 업계 입장에서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중국이 알기 때문에 일종의 ‘갑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판호 문제는 결국 중국 정부 선전선동부가 나서야 해결되므로, 청와대가 중국과 외교 문제를 알맞게 풀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판호 발급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방식과 양은 아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한 "향후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믿을만한 중국 파트너와 손잡는 것이 거의 유일한 길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 현지에서 화상으로 행사에 참여한 김상현 센터장 / 오시영 기자
중국 현지에서 화상으로 행사에 참여한 김상현 센터장 / 오시영 기자
김상현 콘진원 센터장 "유명 IP활용, 여성 이용자 공략 등 전략이 중요"
업계 "자본력 탓에 결국 중국 파트너 입맛에 맞는 게임 개발할 듯"

중국 현지에서 영상으로 이날 행사에 참여한 김상현 한국콘텐츠진흥원 북경센터장은 중국 진출을 노리는 한국 기업을 위해 조언을 건넸다. 그는 "최근 일부 기업이 게임 저작권을 제 3국 기업에 넘기고 서비스하는 방법을 활용하지만 이는 일종의 ‘편법’처럼 보일 수 있다"며 "최근 중국 현지에서는 이렇게 우회해서 서비스하는 게임에 대해 조사한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한국 게임, 웹툰, 런닝맨 등 다양한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게임을 만들 것을 추천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나루토, 헌터X헌터 등 만화 작품이나 축구 PES 시리즈 등 콘솔 게임 기반 IP 게임을 중국에 다수 선보이는 상황이다. 2020년 중국이 발급한 외자판호(해외 게임에 대한 판호)는 총 27건인데, 이 중 일본게임이 최소 12건이다.

김 센터장은 장기적으로 볼 때, 최근 현지에서 구매력과 영향력이 높아진 여성 이용자를 공략한 캐주얼 게임을 개발하거나 중국 문화를 활용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판호를 발급받기에 유리하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황성익 모바일게임협회장(사진)은 전략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 논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판호를 받아 중국에서 서비스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므로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모바일게임협회 회원사는 중국 파트너와 함께 현지에 진출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탓에 결국 퍼블리셔가 원하는 게임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선학 중원게임즈 대표는 "최근 세계적으로 캐주얼게임이 유행하는 추세이므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중"이라며 "사실 캐주얼게임은 게임을 잘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출시 전에 성공 여부를 미리 분석할 수도 있는 장르이므로, 빅데이터 분석 등 노하우를 쌓아 중국에 진출해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은 "판호 문제와 관련해 범정부 차원의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며 "특히 판호 발급 절차는 매우 까다로워서 한국 기업이 스스로 판호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닌데, 이 부분을 정부가 개선해 기업에게 기회를 줘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우 정책국장(왼쪽), 윤선학 대표 / 오시영 기자
최승우 정책국장(왼쪽), 윤선학 대표 / 오시영 기자
이날 행사 참여자는 판호 발급이 재개된다고 해서 한국 게임 업계가 장미빛 미래를 맞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위 교수는 "판호 발급 재개가 한국 게임의 중흥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며 "다만 중국 게임과 대결하고 겨뤄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중국 업체가 돈을 짊어지고 와서 한국 게임을 서비스하게 해달라고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모바일게임 시대가 되면서 중국의 게임 개발력이 한국 수준을 뛰어 넘었다"며 "이탓에 게임 기업 입장에서 단순히 판호가 풀린다고 해서 보증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만큼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현환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방향성 자체는 맞지만 여전히 중국 시장은 중요하다"며 "문체부는 판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체를 통해 공식적·비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한·중 교류 행사를 추진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위정현 교수는 "중국 최대 게임 기업 텐센트는 2004년 별볼일 없는 기업이었다. 이 기업을 세계적으로 키운 것이 한국 게임 크로스파이어, 던전 앤 파이터이므로 한중협력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며 "이처럼 판호 발급 재개는 한국만 발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상생과 공생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수근 교수(왼쪽), 김현환 국장 / 오시영 기자
우수근 교수(왼쪽), 김현환 국장 / 오시영 기자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