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21세기 최악의 바이러스로 기록될 전망이다. 26일 기준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600만명을 돌파했다, 사망자는 64만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 6년 간 미국의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의 합은 41만명쯤이다. 작년말 코로나19 발생 후 단 7개월이 지난 지금 미국인 사망자 수는 15만명에 달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과학기술 세상을 살고 있지만, 코로나19 펜데믹(전세계 확산)은 전쟁보다 세계인 모두를 위협하는 안보 이슈가 됐다.
한 국가의 안보정책은 과학기술 정책에 의해 뒷받침된다.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는 전통적으로 군사적 안보와 신흥 비군사적 안보로 구성된다. '비군사적 안보'는 재난 대응 및 감소, 치안 분야로 구성되는 국민안전의 영역이다. 비군사적 안보로는 탈냉전 이후 기후변화와 원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환경 문제, 사이버 이슈, 코로나19·메르스 등 전염병·감염병의 확산과 같은 보건 문제 등이 있다. 안보의 개념은 초국가적이며 글로벌한 영역의 위협요소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군사적 중심성과 국가 중심성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계속 확장 중이다. 한국의 경제 안보는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한·일 무역분쟁으로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현재는 이를 극복하고자 소재·부품·장비 분야 100개 전략적 핵심 품목을 선정해 집중 투자를 추진 중이다.

안보는 ‘안전보장’이란 뜻이다. 객관적으로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위협의 부재 상태가 ‘국가의 안전이 보장된 상태’라는 뜻이다. 안보정책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생활방식을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안보는 국가 번영과 국방, 그리고 국민안전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신흥안보 개념 중 비전통 안보의 중요성은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행한 ‘인간개발보고서’ 발표 후 강조되기 시작했고, ‘포괄안보(comprehensive security)’ 개념은 일본과 ASEAN 국가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경제는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경제위기는 국가부도로 이어지는 등 개인의 생존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따라서 경제안보는 포괄안보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에 주요한 영향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 전략은 미 본토 방어, 번영 제고, 힘을 통한 평화, 미국의 영향력 확대 등 네 개의 축(Pillar)으로 구성된다. 강한 과학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미국이 추구하는 네 가지 안보 목표 중 어느 하나도 실현할 수 없다. 과학기술력이 안보의 핵심이라 할 수 있고 과학기술력이 곧 안보력이다.

김시중 전 과기처 장관은 2006년 국가안보를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한 기고문을 통해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건강, 더 많은 일자리, 더 높은 생활수준, 그리고 우리 문화의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사항이며, 기술은 미래의 자산이자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다. 국가의 생존능력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국가간 경쟁과 교류의 절대적인 담보물이다’라고 제시했다. 한국의 국가안보 전략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목표의 기반을 ‘강한 안보와 책임국방’에 두고 있다. 국방 분야에서는 과학기술 주도 미래전장 대비, 과학기술과 국방 협력적 도약, 국방 연구개발(R&D) 체질 혁신 등 내용을 담았다. 우수한 과학기술이 강한 국방력이 되는 기술주도형 자주국방 실현을 추진 중이다.

한국의 2020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24.2조원이다. 한국은 GDP 대비 R&D 예산 비중에서 세계 1위를 수년째 유지 중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하 연구회)와 연구회 소관 25개 출연연 예산은 2조1000억원 규모다.

2014년 KISTEP이 발표한 연구보고 자료를 보면, 1990년대말부터 산자부의 ‘전략성’ 국가 R&D 예산이 크게 증가했고 과기부의 예산규모를 2000년대초 추월했다. 국가 R&D 주도부처는 과기부에서 산자부로 변화했다. 미국 국가안보 전략 중 ‘번영 제고’에 해당하는 시장 즉 산업 경쟁력이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한국은 과학기술정책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과학기술 정책이 실패가 많은 기초·원천기술의 진흥이나 과학기술 인력 양성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종전에는 국가 R&D 예산증가에 정책적 관심을 기울여 왔다면, 앞으로는 투자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해답을 국가 R&D 구조 개선의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은 어떻게 국가 R&D 투자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을까.

2020년 국방 R&D 예산은 3조9000억원으로, 정부의 R&D 총 예산 24조2000억원 중 16.1%를 차지한다. 재난 안전 R&D 예산인 1조3000억원까지 합하면 21%에 달한다. 2019년 말 KISTEP이 발간한 국방 R&D 혁신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국방기술개발 분야 중 전략‧비닉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전용기술개발(5083억 원) 분야 제외 시 순수 국방기술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4372억원이다. 국방R&D 수행 주체는 2017년 기준 국방과학연구소(56.8%), 정부부처(10.7%), 중견기업(17.5%), 대기업(5.8%), 중소기업(1.9%), 출연연(5.3%), 대학(1.7%) 순이다. 출연연 및 대학의 참여와 기여는 극히 낮다.

현재 한국에서는 출연연과 대학의 연구 역량을 국방 R&D에 직접적이고 장기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출연연과 대학이 보유한 역량을 국방 R&D에 더 많이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한미군의 순환배치 기갑여단이 탱크 기동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 미군
주한미군의 순환배치 기갑여단이 탱크 기동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 미군
미 육군은 2018년 7월 역사상 최초로 4성 장군이 지휘하는 미래사령부(Army Futures Command)를 창설했다. 외부 파트너와 더 긴밀히 협력하기 위해 군부대가 아닌 텍사스대에 본부를 설치했다. 미 육군 현대화 추진을 임무로 하는 미래사령부는 기존에 해왔던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획득 방식을 지양했다. 대신 성숙한 기존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방식대로라면 10~15년이 걸릴 획득 절차를 그 절반 이내에 끝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과학기술 융합으로 인한 신속한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현재 무기 발 주부터 획득까지 15년이 걸리는 사업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단축 방안을 찾는 일 자체가 난제이기는 하지만, 방사청 출연기관 주도의 빈틈없는 국방기술 기획 방식이 경직성 과 비효율성의 원인일 수 있다. 좀 더 유연하고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민 주도 민군협력 구조가 이 난제를 더 신속하고 쉽게 풀어줄 가능성이 있다.

방사청은 국방R&D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2019년부터는 총액 년 수백억원 규모의 ‘한국형 DARPA’ 미래도전기술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국방 R&D를 요약한다면, 관(官) 주도 민군협력으로서 B+ 이상의 점수를 줄 수 없다. 민군협력을 주도할 민군협력진흥원이 국방과학연구소 부설기관이라는 점은 관 주도 민군협력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지난 20년의 한국 민군겸용기술사업 역사를 보듯 예산만 증액해서는 민군협력의 체질과 내용이 개선될 수 없다. 한국형 DARPA 또한 유연하고 효율적인 민군협력 생태계 안에서 국가안보를 강하게 뒷받침할 경우 투자효율성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정착·발전할 수 있다.

미국은 2차대전 이후 국방 R&D의 보안 문제, 국방기술 기획의 중복성 문제 등의 장애물을 민과 군이 역할을 분담 협력해 왔다. 미국을 모범사례로 삼아, 국가 R&D 자원 활용의 투자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혁명적 대전환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전담부서를 중심으로 정부 R&D 예산의 평균 60%인 국방 R&D 예산을 집행하고, 실질적으로 과기부 역할을 수행하는 미국의 국방부와 각 군은 이미 MIT링컨연구소, 존스홉 킨스대 응용물리연구소 등 우수 대학 부설연구소에 연간 1조원 이상의 연구예산을 지원 중 이다. 이들에게 ‘국가안보를 위한 첨단 과학기술 개발’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민군협력 생태계 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미국은 그야말로 민(民) 주도 민군협력 구조를 공고히 했다. ‘국방을 위한 과학기술’이 아닌 ‘국가안보를 위한 과학기술’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민군협력을 통한 국가적 시너지 창출과 함께 국가 R&D의 투자 효율성을 높였다.

과기부는 2017년말 국방부와 협약을 체결하고 국방R&D 기획과 수행, 인력양성, 정책기획 등을 추진 중이다. 국가 R&D - 국방 R&D 협력을 통해 혁신적 기술을 확보하는 생태계 구축을 위해 ‘미래국방 기초원천 R&D’ 기술로드맵을 만든다. 과기부는 수년간 수천억원 규모의 예비타당성 사업을 기획 중이지만, 실행 규모와 착수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출연연과 대학에 미래국방 연구협력센터를 설치하는 내용을 포함해 산·학·연 역량을 종합하고, 미래국방 기술로 연계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정치적 관성이 아닌 과기부 스스로 주도적 실행 필요성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갖췄는지가 중요한 시점이다.

국방부와 각 군에는 무기체계와 전력지원 체계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지만, 과학기술과 R&D 전담 부서는 없다. 방사청 출연기관에 백퍼센트 위탁하는 현재의 국방R&D는 개선이 필요하다. 미국처럼 국방부와 각 군에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리더를 맡는 과학기술 전담부서가 있어야 하다. 무엇보다 과기부 등 정부기관과 손잡고 과학기술과 R&D 협력을 추진함으로써 안보를 위한 과학기술과 R&D를 진행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

국가 R&D는 비국방 R&D와 국방 R&D로 구성되고, 국가 R&D 역량은 두 영역 역량의 합 그리고 공동활용 시너지에 의해 결정된다. 비국방 R&D와 국방 R&D 간 새로운 협력 생태계 구축을 통해 국가 R&D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한 단계 향상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를 통한 국가경쟁력의 신속한 개선도 가능하다.

한국은 2019년 WEF 국가경쟁력에서 141개국 중 13위로 평가 받지만, 제조시장과 인적자원(기술) 부문에서는 각각 59위와 27위로 저평가를 받았다. 대학과 출연연이 주체가 되는 민 주도 민군협력 기반의 안보과학기술로 전환할 경우, IMD의 기술인프라와 교육 부문, WEF의 제조시장과 인적자원(기술) 부문 경쟁력 개선이 가능하다. 또한 전문연구요원의 역할이 보다 뚜렷해질 것이고, 소모적 논쟁을 지속해 온 제도 유용성에 대한 소모적 논쟁과 특혜 시비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국가 번영과 국방, 그리고 국민안전을 포괄한 확장된 안보 개념의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비국방 R&D와 국방 R&D 간 협력 구조 개선을 통한 국가 R&D의 투자효율성 향상이 필요하 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의 관 주도 민군협력의 국방과학기술에서 민 주도의 안보과학기술 중 심으로 국가적 전략을 신속히 전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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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 교수는 안보과학기술 전문가다. 공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재난안전에서 국방 영역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국가안보를 바라보는 과학기술 융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안보과학기술(Security Science & Technology)의 개념 정착과 확산, 그리고 그 결과를 경제활동과 일자리 창출로 연결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GIST 교수로 재직 중이다. khlee35@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