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업종에서도 ‘극일(克日)’이 통했다. 일본 JDI가 애플에 액정표시장치(LCD) 공급만 고집한 반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탈LCD’를 통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빠르게 전환했는데, 이것이 희비를 교차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애플이 아이폰 차기작 전 제품에 OLED를 탑재하기로 결정한 것도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에 호재로 작용한다.

스마트폰의 OLED 전환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지만, 미래 준비가 미흡했던 JDI는 경쟁력을 잃었다. 대신 삼성과 LG로 대표하는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이 OLED 패널 공급을 위한 집안 경쟁을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미국 IT 전문매체 폰아레나가 아이폰12 디자인으로 추정해 보도한 이미지./ 조선일보DB
미국 IT 전문매체 폰아레나가 아이폰12 디자인으로 추정해 보도한 이미지./ 조선일보DB
1일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9월 공개할 아이폰12 시리즈에 OLED 패널을 사용할 예정이다. 공급사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다.

아이폰12 시리즈는 ▲아이폰12(5.4인치) ▲아이폰12 맥스(6.1인치) ▲아이폰12 프로(6.1인치) ▲아이폰12 프로맥스(6.5인치) 등 네 가지 모델로 출시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이폰12, 아이폰12 맥스, 아이폰12 프로 등 3종에 적용하는 패널을 맡고, LG디스플레이는 아이폰12맥스 패널 물량을 생산한다.

LG디스플레이는 대량 공급을 준비하기 위해 경기도 파주 OLED 공장을 조만간 풀가동 할 예정이다. 신규 스마트폰용 시장 진입에 성공하면서 3분기 이후 흑자 전환 기대를 높인다.

스마트폰용 OLED 패널 시장을 실질적으로 독식해 온 삼성디스플레이 입장에선 마냥 낙관적 상황은 아니다. 중국 BOE가 자국 기업에 소량 공급하는 것을 빼면 대부분 중가 이상 스마트폰에 삼성 OLED 패널이 들어갔는데, LG디스플레이의 부상으로 시장을 나눠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독점업체로서 애플과 협상력 우위를 누렸다. 애플은 OLED 패널을 탑재한 아이폰11 프로, 아이폰11프로 맥스의 판매량 부진으로 1조원이 넘는 위약금을 물어줬다. 아이폰11 판매 저조로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급하는 OLED 패널을 구매하지 못해서다.

스마트폰 화면은 점차 LCD에서 OLED로 전환할 전망이다. LCD는 일부 보급형에, OLED는 중간 가격대 이상 스마트폰에 쓰이는 추세다.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삼성디스플레이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코로나19 여파로 2019년 대비 13% 감소할 전망이지만 스마트폰용 OLED 패널 출하량은 5억1300만대로 2019년(4억7100만대) 대비 9% 증가한다. 연간 15억대씩 팔리는 스마트폰 3대 중 1대는 OLED 패널을 사용하는 셈이다.

스마트폰용 OLED 시장 규모는 2018년 처음 4억대를 넘었다. 2025년은 OLED(8억대)가 LCD(7억대)를 넘어서는 골든크로스의 해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애플에 LCD 패널을 납품한 JDI는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JDI는 일본 경제산업성의 주도로 소니, 도시바, 히타치제작소의 LCD 패널 사업을 통합해 2012년 출범한 회사다.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는 JDI 하쿠산 공장이 스마트폰 고정밀 액정패널을 양산하는 전략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JDI는 기술력 부재로 LCD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OLED 사업은 한국에 밀렸고, LCD는 중국 저가 공세를 감당하지 못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미래 전략거점 하쿠산 공장은 2019년 7월 가동을 중단했고, 공장 설비 일부 소유권도 애플과 샤프로 이전을 앞뒀다.

재정악화에 들어선 JDI는 OLED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 기쿠오카 미노루 JDI CEO는 "경쟁사가 사용하는 증착이 아닌 다른 제조 방식을 도입하겠다"며 "양산 여부는 생산 수율에 달려 있고, 2022년에나 본격 양산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OLED로 도약하는 국내 기업이 JDI를 반면교사로 삼는 동시에 중국과 격차를 벌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디스플레이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애플, 화웨이 등이 OLED 패널을 스마트폰 등 용으로 속속 채택하면서 OLED 전환에 실패한 일본 기업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면서도 "중국이 일반 OLED와 플렉서블 OLED, 마이크로 LED, 미니 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도 투자를 강화하는 만큼 LCD처럼 주도권이 넘어가지 않도록 시장 선점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