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레트로 게임 수요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8·16비트 복각 게임기 제작을 넘어서 명작으로 칭송받는 게임을 부활시키기 위한 펀딩 등 다채로운 움직임이 포착된다. 레트로 게임과 게임기 제작·공유 문화는 30~50대를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상품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는 1995년작 롤플레잉게임 ‘환상수호전(幻想水滸伝)’을 부활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펀딩은 하루를 넘기기도 전에 목표 금액을 채우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펀딩을 시작한 이는 환상수호전 1·2탄을 개발한 ‘무라야마 요시타카(村山吉隆)’와 환상수호전 1·4을 만든 ‘카와노 쥰코(河野純子)’다. 이들은 ‘래빗 앤 베어 스튜디오(Rabbit & Bear Studios)’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환상수호전의 정신적 후속작인 ‘백영웅전(百英雄伝)’을 발표했다.

백영웅전은 100명이상의 등장인물의 관계를 치밀하게 구성한 이야기를 즐길 수 있고 2D그래픽으로 그려진 캐릭터에 3D그래픽 필드로 화면을 구성하는 등 환상수호전 시리즈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았다.

아날로그 포켓 / 아날로그
아날로그 포켓 / 아날로그
킥스타터는 2015년, 14년만에 시리즈 부활 신호탄을 쏜 ‘쉔무3’ 펀딩을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 당시 펀딩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목표 금액을 달성한 바 있다. 당시 쉔무3는 ‘가장 빠른 게임 펀딩 목표금액 달성’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1989년 등장해 게임업계를 흔든 닌텐도 게임보이 호환기가 등장해 레트로 게임 이용자의 눈길을 끌었다. 미국 아날로그가 만든 ‘아날로그 포켓(Analogue Pocket)’은 2개의 FPGA(field-programmable gate array) 프로세서를 탑재해, 2780개 이상의 게임보이·게임보이 컬러·게임보이 어드밴스 게임을 완벽에 가깝게 구동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소프트웨어로 게임기 동작을 흉내내는 에뮬레이터 앱과는 괘를 달리한다.

6월에는 게임사 세가(SEGA)가 8비트 휴대게임기 ‘게임기어’를 미니 사이즈로 복각시킨 ‘게임기어 미크로’를 발표했다. 회사설립 60주년 기념으로 만든 게임기어 미크로는 1990년 출시된 게임기어를 40% 줄여만든 상품이다. 화면 크기는 1인치에 불과하다. 게임기어 미크로에는 ‘소닉 더 헤지혹’ 등 인기 게임 4개를 내장했다. 블랙·블루·옐로·레드 등 4가지 색상별 게임기에 각각 다른 게임 콘텐츠를 담았다.

게임기어는 1년 앞서 등장한 닌텐도 게임보이와 휴대용 게임기 시장 패권다툼을 벌였던 게임기다. 게임보이 보다 더 나은 성능과 휴대용 게임기 최초로 컬러 액정화면을 탑재했다.

세가 아스트로시티 미니 / 세가
세가 아스트로시티 미니 / 세가
세가는 7월 1990년대 대표적인 오락실 기체인 ‘세가 아스트로시티(Astrocity)'를 미니 버전으로 부활시킨다고 밝힌 바 있다. 아스트로시티 미니에는 3D격투게임 원조라 평가받는 ‘버추어파이터’를 필두로 액션게임 ‘골든엑스’, ‘수왕기’, ‘에일리언스톰’ 슈팅게임 ‘판타지존’등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오락실 인기 게임으로 자리잡았던 명작 36개 콘텐츠가 담긴다. 아스트로시티 미니는 소형 LCD스크린에 조이스틱과 총 8개 버튼을 탑재했다. HDMI케이블을 통해 게임 화면을 대형TV로 출력할 수 있다.

1970~1990년대 오락실 기기를 모방한 미니 게임기는 3050 올드 게임 팬들 사이서는 인기 아이템이다. 미니버전 오락실 기기는 일본에서만 연간 10만대 이상의 판매량을 자랑한다. 가격도 2만~3만원대로 저렴해 1020세대들 사이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유통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게임기 시장 규모 자체가 작아 판매 대수는 많지 않지만, 레트로 게임기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이어지는 추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레트로 게임에 대한 열기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게임색(Game Sack) 등 수많은 레트로 게임 전문 유튜버가 방송을 만들어 공유한다. 이들은 온라인을 넘어 별도의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하는 등 레트로 게임 자체를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만든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일본에서는 1980년대 명작 게임을 탄생시켰던 게임 개발자를 강연자로 초빙해 개발 당시의 비화를 직접 듣는 토크쇼와 명작 레트로 게임을 소재로 한 음악 콘서트도 빈번하게 개최된 바 있다.

닌텐도클래식 미니 패밀리컴퓨터 / 닌텐도
닌텐도클래식 미니 패밀리컴퓨터 / 닌텐도
레트로 게임기 열기에 불씨를 당긴 것은 닌텐도다. 이 회사는 1983년 등장한 8비트 게임기 패밀리컴퓨터를 미니 게임기로 복각한 ‘닌텐도클래식 미니 패밀리컴퓨터’로 1980년대 추억을 가진 올드 게임 이용자를 구매행렬에 동참시켰다. 닌텐도는 2018년 11월 일본서 열린 실적발표회를 통해 패미컴과 슈퍼패미컴 미니 등 자사 복각 게임기 시리즈의 전 세계 누적 판매대수가 1000만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레트로 게임기에 대한 수요를 확인한 게임업계는 메가드라이브(제네시스), PC엔진, 아타리, 네오지오 등 복각 레트로 게임기를 등장시켰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