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불티나는 달러화 발행에 세계 각국 디지털 화폐 눈독
日 입장 선회 "일본은행의 최우선 과제는 디지털 엔화 발행"
中 2022 베이징 올림픽이 디지털 위안화 실험대
韓 올해 안으로 디지털 화폐 설계하고 구현 기술 검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쇼크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천문학적인 돈 풀기 정책을 펼친다. 미국 투자은행 사이에서는 달러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가 속속 나온다.

이 같은 우려에 세계 각국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중앙은행이 전자적 형태로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에 눈을 돌린다. 중국, 유럽, 필리핀에 이어 최근에는 디지털 화폐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일본까지 가세했다. 설계만 제대로 하면 달러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셔터스톡
/셔터스톡
디지털 엔화 도입 속도 내는 日 ‘패권 전쟁’ 가세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중앙은행(BOJ)은 최근 디지털 엔화 시범운용에 본격 나섰다. 기무라 다케시 일본은행 부국장은 최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CBDC는 일본은행 내에서 최우선 이슈 중 하나로 다뤄질 것이다"라며 "준비 단계를 넘어 논의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일본은 ‘경제정책운영·개혁 기본방침 2020’을 통해 디지털 엔화 도입 방침을 확정하면서 디지털 자산 패권전쟁에 가세했다. 안건에는 디지털 엔화를 관련있는 국가와 연계하겠다는 내용까지 포함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일본중앙은행 CBDC 시범운용은 언제 어디서나 활용할 수 있는 ‘접근성’뿐 아니라 천재지변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도 사용 가능한 ‘복원력’에 중점을 뒀다. 일본중앙은행은 디지털 엔화가 발행돼도 기존 현금 수요가 있는 한 공급할 계획이다. 현재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하는 높은 현금 유통량을 보인다. 향후 디지털 엔화는 현재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현금 없는 결제 시스템의 통합을 촉진하게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디지털통화 발행은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과거와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앞서 일본 중앙은행은 CBDC가 기존 상업은행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 발행을 꺼려왔다.

업계 일각에선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발행에 속도를 낸 것이 배경이 됐다고 분석한다. 일본이 엔화의 기축통화 체계가 무너질 것을 고려해 입장을 선회했다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가간 통화거래에서 달러화 비중은 88%를 기록했다. 유로화(32%)와 엔화(17%)가 그 뒤를 이었다. 위안화 비중은 4% 정도로 세계 8위에 해당한다.

일본 디지털 엔화의 구체적인 개발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일본은행에서 최근 ‘디지털통화그룹’이라는 부서를 출범한만큼, 디지털 엔화 개발 및 도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전방에 선 中 ‘2022 베이징 올림픽은 위안화 국제화 시험대’

중국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CBDC 개발에 나섰다. 달러패권 도전 최전방에 서있는 국가인 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0여개 중앙은행과 위안화 스와프 계약을 맺는 등 위안화의 국제화에 노력해 왔다. 하지만 중국의 도전은 빛을 보지 못했다. 최근 미국 달러 약세에 위안화의 국제화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중국은 4월부터 일부 도시를 상대로 CBDC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등 글로벌 기업 19곳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최근에는 디지털 위안화 출시를 앞당기기 위해 4대 국유은행과 차이나텔레콤, 차이나모바일, 화웨이, 메이퇀뎬핑(중국 최대 음식배달업체), 디디추싱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협력해 테스트 작업에 돌입했다.

인민은행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한다는 목표다. 조만간 올림픽 경기장에서 실증 실험을 진행할 전망이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송금·결제를 진행할 수 있는 모델을 고려한다. 올림픽을 통해 자국 통화의 국제화 가능 여부를 시험해보고 이를 현실화한다는 목표다.

韓 올해 디지털화폐 설계 & 구현 기술 검토

한국은행도 디지털 화폐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 설계를 마치고 발행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관련 변화의 흐름에 궤를 함께 할 전망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한은 창립 70주년 기념사에서 CBDC 연구·개발을 향후 주력 과제로 꼽았다. 그는 "디지털 혁신은 중앙은행 고유 지급결제 영역까지 파급될 수 있다"며 "중앙은행으로서 변화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CBDC 연구·개발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올해 9월까지 CBDC를 설계하고 기술 구현을 검토한다. 이후 CBDC 발행 권한과 한은-시중 금융기관-민간과의 법률 관계 등을 모두 따져볼 예정이다. 내년 1월부터 12월까지는 파일럿 시스템을 구축해 시범 운영을 진행한다. 특정 환경에서 CBDC가 지급결제 수단으로 정상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지를 테스트한다.

일각에선 한국은행이 디지털 원화를 발행할 가능성이 미미하다고 본다. 디지털 달러화와 위안화, 엔화, 유로화 등과 겨루기에는 디지털 원화가 갖는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한국은행 디지털화폐 연구팀과 밀접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은 디지털 원화를 무작정 발행하기 보다는 우선 시범적으로 운영을 해보겠다는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며 "디지털 달러화와 위안화에 연동되는 환전 모델을 염두에 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