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시련 속에서도 피어나는 국립수목원의 꽃

  • 이동혁 칼럼니스트
    입력 2020.08.08 06:00

    요즘은 코로나 대신 장마가 안부 인사에 등장하곤 합니다. "비 피해는 없으세요?" 하고 말입니다. 관측 이래 최장기간 장마라는 기록은 둘째치고, 엄청난 양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손써볼 시간도 없이 피해가 속출합니다.

    무궁화가 피어나는 국립수목원 풍경
    제가 적을 두고 있는 국립수목원에도 물폭탄이 쏟아졌습니다. 예쁘게 피어나던 상사화 무리는 그리움이고 뭐고 모두 쓰러져 눕고 말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열었다 닫았다 하던 문을 최근에 다시 열고 광릉숲길도 재개방했건만,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임시휴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폭우로 쓰러지기 전의 상사화
    비를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대청부채
    개방하지 않고 있던 몇 달 동안 광릉숲은 모습이 약간 변했습니다. 사람의 출입을 금했던 옛 시절처럼 수풀이 자라 우거져버린 덕에 숲은 충분히 비밀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에 보지 못한 천마가 나타나기까지 했습니다. 좀 더 자연스러운 숲의 모습에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문 닫고 지내는 동안 수목원 안의 꽃들이 속세와 멀어지면서 김소월 시인의 산유화처럼 저만치 피어서 아름다운 꽃이 된 듯합니다.


    전시원에 핀 백운산원추리
    코로나가 설쳐대기 전 작년 겨울이었습니다. ‘키작은 나무 언덕’이라는 전시원에서 낯익은 껍질과 열매를 가진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팻말 없이 서 있긴 해도 노각나무처럼 얼룩덜룩한 껍질, 꼬리처럼 아래로 처진 열매로 보아 매화오리나무가 분명했습니다. 확인할 겸 다시 찾아갔다가 그 근처에서 매화오리나무 ‘Rosea’라는 품종이 몇 그루 심어진 것도 발견했습니다. 내년에는 꼭 이 나무들의 꽃을 확인해 봐야겠다는 계획을 그때 세웠습니다.

    하지만 암만 계획을 세워도 잊어버리기 일쑤인 게 우기에 피는 꽃들입니다. 매화오리나무도 그럴 뻔하다가 우연히 기억났습니다. 늦은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며 찾아갔다가 그제야 피어나는 모습에 반가움이 더했습니다.

    국립수목원 ‘키작은 나무 언덕’에 핀 매화오리나무
    매화오리나무는 일본과 중국에 분포하는 종으로, 우리나라 제주도의 한라산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있을 법한데 확인되지 않아 발견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하는 나무로 설악산에서는 가문비나무를 꼽고, 한라산에서는 매화오리나무를 꼽습니다. 매화오리나무는 중국과 일본에 있으므로 그 사이에 자리한 우리나라에도 있을 법합니다. 그런데 발견되지 않고 있으니 먼저 찾으면 임자(?)라는 생각에 기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년에 일본으로 출장 갔을 때 많이 만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시기가 일러 꽃봉오리만 보고 와야 했습니다. 야생에서 만난 매화오리나무와의 인연은 제 개인적으로 그것이 전부입니다.

    천리포수목원에 핀 매화오리나무
    몇몇 수목원에 있는 것을 기록한 적은 있습니다. 기록하는 데만 급급했기에 관찰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서 이번에 국립수목원에 핀 것을 관찰해보았습니다.

    일단 꽃에서 매우 특이한 향기가 났습니다. 매화를 닮아서 붙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름이라지만, 꽃이 예뻐서가 아니라 향기가 특이해서 붙여진 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름다운 꽃을 매화에 비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꽃이 매화와 닮아서가 아니라 매화에 견줄 만큼 예쁜 꽃이 핀다는 뜻이구나 하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사실 매화오리나무의 꽃은 매화보다는 앵초과의 까치수염이나 큰까치수염에 가깝습니다.
    오리나무라는 것은 잎이 오리나무의 잎과 닮아서 붙여진 것이지, 매화오리나무가 오리나무 종류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사람의 코가 맡을 향기라면 곤충의 코에는 더 잘 감지될 게 분명합니다. 두 번 관찰하는 동안 같은 곤충이 날아드는 것을 보았는데, 박각시나방 종류입니다. 박각시나방류는 벌새나 헬리콥터 또는 드론(drone)처럼 공중에 정지 상태로 있을 수 있는 호버링(hovering)이라는 비행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굳이 꽃이나 잎에 앉지 않더라도 공중에 뜬 상태에서 꽃의 꿀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빨라서 초점 맞출 새도 없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통에 제대로 사진 찍기가 어려운 녀석입니다. 어렵사리 찍어서 동정해 보니 매화오리나무에 단골로 날아온 그 녀석은 검정황나꼬리박각시였습니다. 박각시 앞에 단어가 세 개(검정, 황나, 꼬리)나 붙었습니다. 곤충 이름은 식물 이름보다 어려운 게 확실합니다.

    매화오리나무 꽃에 날아오는 검정황나꼬리박각시
    매화오리나무는 아래로 늘어지는 총상꽃차례에 꽃이 핍니다. 아래로 늘어져서 피니까 미상꽃차례 아니냐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상꽃차례는 수상꽃차례의 일종으로, 꽃자루가 없는 꽃이 다닥다닥 피는 것을 말합니다. 매화오리나무의 꽃은 꽃자루가 있는 꽃이 달리므로 총상꽃차례입니다. 꽃자루의 길이가 각각 다른 총상꽃차례의 꽃들은 순차적으로 핍니다. 그에 비해 수상꽃차례나 미상꽃차례에 달리는 꽃들은 꽃자루가 없고 순서 없이 제멋대로 피거나 일시에 피는 경향을 보이는 점이 다릅니다.

    그런데 꽃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암술의 길이가 제각각 다르고 수술의 성숙 시기도 제각각 달라 보였습니다. 자가수분을 방지하는 자웅이숙 기제 중에서 수술이 암술보다 먼저 피는 웅예선숙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양성화 중에 자웅이숙을 하는 꽃이 많습니다.

    매화오리나무의 재배품종도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생각났습니다. Rosea 품종 말입니다. 다시 찾아가 보니 왜 그런 품종명을 붙였는지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연한 분홍빛의 장미색 꽃이 가지마다 달려 있었습니다. 이 품종은 꽃차례가 늘어지지 않고 위를 향해 꼿꼿이 선 모습이 꼭 분홍 촛대 같습니다.

    매화오리나무 ‘Rosea’ 품종
    전례 없이 길게 이어지는 이번 장마도 다음 주 말이면 물러간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지루한 코로나 사태도 언젠가 종식될 것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생태계는 여러 시련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하고 솎아내려고 할 것입니다. 시련 속에 피는 꽃은 그래서 더 아름답습니다. 코로나 덕에 국가의 위상이 높인진 탓일까요? 올해는 전시원의 무궁화가 그 어느 해보다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전시원에 핀 무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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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혁 칼럼니스트는 식물분야 재야 최고수로 꼽힌다. 국립수목원에서 현장전문가로 일한다. ‘혁이삼촌’이라는 필명을 쓴다. 글에 쓴 사진도 그가 직접 찍었다. 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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