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기업들이 상표권 설명란에 ‘가상화폐’ 넣는 이유는

입력 2020.08.11 06:00

가상자산 금융 시대 준비하는 국내 기업들
서비스 상표 설명란에 ‘가상통화 중개업’ 명시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서비스의 상표권을 등록하며 설명란에 ‘가상자산’을 잇따라 표기하고 나서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관련업계는 해외에서 결제, 수탁(custody) 등 가상자산을 활용한 금융 서비스가 늘어나자 우리 기업도 이를 따라잡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한다. 다가올 가상자산 금융 시대를 대비하려는 모습이 역력해 보인다.

/픽사베이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정보통신(KICC)과 카카오, GS리테일 등이 새로운 서비스의 상표권 설명란에 ‘가상통화 중개업’, ‘가상통화간 교환거래중개업', ‘가상화폐의 교환용 소프트웨어’ 등 가상자산 관련 내용을 기입하고 있다. 당장 가상자산으로 서비스를 하지는 않지만, 향후 현금 대신 가상자산으로 결제·수탁하는 시대가 다가올 것을 대비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한국정보통신, 출금·이체용 서비스에 ‘가상통화 중개업’ 명시

한국정보통신은 8월 7일 특허청에 ‘이지CMS(EASYCMS)’라는 명칭의 상표를 출원했다. 기업용 CMS(자금관리서비스) 출금·이체 서비스다. ▲ATM 은행업 ▲가상통화 중개 및 환전업 ▲가상통화 중개업 ▲결제업무 및 컴퓨터결제시스템 관리업 ▲구매대금 결제중개업 ▲국제금융업 ▲금융투자업 ▲대출금융업 ▲모바일 및 인터넷 결제 중개 서비스업 ▲보증금융업 ▲신용카드 지불처리업 ▲신용할부금융업 ▲온라인 현금계좌업 ▲은행계좌 자금이체업 ▲재무업 등 27개 부문에 활용된다.

한국정보통신은 신용카드 단말기를 공급해 신용카드 조회 서비스를 하는 밴(VAN, 부가가치통신망) 사업 전문 기업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밴 사업 외에도 IC카드 사업, 인터넷 사업 및 신규 통신사업 등이 있다.

한국정보통신이 지난 7일 출원한 상표권. 지정상품류에 ‘가상통화 중개업’이 포함됐다. / 특허청
한국정보통신 관계자는 이번 이지CMS 상표권에 대해 "아직 출원 단계라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럽다"면서도 "전반적인 CMS 출금 이체 업무를 위한 상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상자산이 결제 수단으로 인정될 상황을 대비해 ‘가상통화 중개 및 환전업’을 상표권 내 지정상품으로 미리 등록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한국정보통신이 국내 금융권의 결제 대행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만큼, 글로벌 금융권의 움직임을 주시해 이번 상표에 가상통화 관련 내용을 포함시켰다고 보고 있다. 최근 비자와 마스터카드 등 글로벌 카드사는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와 제휴를 맺고 가상자산으로 결제 및 출금이 가능한 직불카드를 선보였다. 국내 금융권은 가상자산 업계와 손잡고 가상자산 수탁 사업부터 손을 대면서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한국정보통신이 가상자산 시장에 관심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가상자산 투자 붐이 일던 2017년 한국정보통신은 ‘이지코인’이라는 상표를 출원했다. 회사는 이를 ▲가상화폐의 교환용 소프트웨어 ▲내려받기 가능한 가상화폐 ▲내려받기 가능한 모바일 상품권 ▲내려받기 가능한 전자화폐 등 용도로 출원했다. 해당 상표는 등록은 마쳤으나 상용화는 안된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 T포인트도 가상자산 시대 의식

포인트 제도 도입으로 최근 각광받은 카카오모빌리티도 가상자산 시장을 의식하는 눈치다. 카카오모빌리티가 6월 T포인트에 대해 설정한 상표설명과 지정상품에는 ▲가상화폐의 교환용 소프트웨어 ▲가상통화 중개업 ▲가상통화간 교환거래중개업 등을 포함한다.

카카오모빌리티 T포인트는 택시 호출과 자전거, 대리운전, 내비게이션, 주차 등 카카오모빌리티의 다양한 서비스에서 적립과 이용이 가능한 통합 포인트다. 이용자는 카카오T 앱에서 제공하는 택시, 주차, 바이크, 대리운전 등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이용금액의 일정 비율을 포인트로 적립하고 결제 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포인트는 가상자산과 궁합이 잘 맞아 떨어지는 영역으로 꼽힌다. 포인트를 현금처럼 쓰고, 리워드를 이자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강해지다보니, 포인트를 화폐와 유사한 형태로 보는 요구가 높기 때문이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향후 가상자산이 결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를 염두에 두고 상표를 출원한 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 관계자는 "상표에 대한 권리를 넓게 보장하는 차원에서 지정했다"며 "카카오모빌리티가 당장 집중하는 것은 포인트 그 자체로, 포인트를 적립해 활용하는 선불전자지급 기능에만 당장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걸어서 배달하는 ‘우리동네딜리버리’ 가상자산 지급하면?

GS리테일도 가상자산을 미래 결제 수단이라고 내다보고 이를 대비한 움직임을 보인다. 특허청에 따르면 GS리테일이 6월 출원한 ‘우리동네딜리버리’ 상표권 내 설명란에는 ‘가상통화 중개업’이 포함됐다.

우리동네딜리버리는 GS25에서 고객이 주문한 배달상품을 실버 세대와 주부, 퇴근길 직장인 등 일반인이 배달하는 서비스다. 오토바이 등 운송 기기나 관련 면허가 없는 일반인도 도보 동선에 부합하는 배달 건이 있으면 참여가 가능하다.

배달 반경은 주문 상품을 픽업하는 GS25로부터 1.5km 내 지역으로 한정된다. 배달 상품 중량은 5kg이 넘지 않는다. 배송하는 일반인은 배달 1건당 2800원~3200원을 GS리테일로부터 받는다.

GS리테일 관계자는 "결제 수단이 기존 원화에서 가상자산으로 확대될 것을 대비해 지정상품에 가상통화 중개업을 넣어놓은 것으로 안다"며 "당장 서비스를 가상자산으로 하려는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규제도 안풀렸는데 왜…"미리 준비"

국내 기업들이 상표 설명에 가상자산을 포함한 데는 향후 결제 수단에 가상자산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 봤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로 당장은 가상자산 사업에 나서지는 않지만, 향후 가상자산으로 결제할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상표권을 보호하면서 이를 활용하기 위한 포석을 미리 깔아두는 것이다.

특히 현재 새롭게 출시되는 서비스 대부분이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만큼, 가상자산을 포함시키는 것은 필연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밀레니얼 세대와 그 이후 세대는 원화보다 가상자산을 선호한다는 분석이 힘을 싣는다.

블록체인 전문 벤처캐피탈(VC) 블록체인캐피탈은 "밀레니얼 세대를 경기침체로부터 구해낼 동아줄은 가상자산이다"라며 "매번 실패하는 휘발성 경제 구조의 대안으로 가상자산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외 시장을 따라가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는 직간접적으로 가상자산을 지원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국내서도 해외의 이 같은 움직임을 벤치마킹해 아직 수요는 덜 하더라도 서서히 공급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단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도 "국내 금융사를 비롯한 기업들은 가상자산 결제를 지원하지 않지만, 해외에선 관련 시장이 점차 열리고 있다"며 "이를 비춰볼 때 국내 기업이 미리 업계에 진출하기 위해 상표권으로 포석을 깔아둔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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