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세 아버지와 19세 아들이 함께 시집을 썼다. 같은 주제를 서로 다른 시각으로 본지라, 시의 느낌이 사뭇 독특하다. 부자유친(父子有親), 아버지와 아들은 대개 닮는다고 한다. 시집 제목은 ‘부자유별(父子有別)’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닮을줄 알았는데, 시를 함께 쓰며 이야기해보니 은근히 다른 부분이 많더라는 의미다.

19세 아들이 성인의 문턱을 넘자 함께 펜을 잡고 시집을 내자며 다독인 아버지는 조철제 KT VIP고객관리팀 팀장이다. 데면데면할 법도, 귀찮을 만도 한데 아버지를 따라 두말없이 시를 쓴 아들은 조위래(日 리츠메이칸APU대학 입학예정)씨다.

11일, 비가 갠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조철제 팀장과 조위래씨를 만나 시집 ‘부자유별’을 쓰기까지의 과정, 이모저모를 들었다.

조철제 KT VIP고객관리팀 팀장(왼쪽)과 아들 조위래씨 / 차주경 기자
조철제 KT VIP고객관리팀 팀장(왼쪽)과 아들 조위래씨 / 차주경 기자
-같은 주제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쓴 시집, 교차편집이라는 독특한 형식이다. 엮을 때 힘든 점 혹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면?

조철제 팀장 : 천성이 게을러서, 뭔가 강압이 없으면 제 시간에 일을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목표를 정했다. 삶의 버킷리스트(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시를 쓰는 일이었다. 마침 아들의 대학교 입학 일정이 밀렸다고 하기에 함께 시집을 내자고 생각했다. 생각은 바로 실행했다. 계산해보니, 아들과 내가 1주에 시를 세편씩 써야 입학 전까지 시집을 낼 수 있겠더라. 매주 일요일 아들과 만나 각자 쓴 시를 나눠 읽고 다음 시제어를 정했다.

혼자서라면 게을러서 못했을 일이다. 하지만, 아들에게 모범이 되려 스스로를 채찍질했더니 예정에 맞출 수 있었다. 아들도 그랬을거다. 사실, 아내도 한 몫 거들었다. 옆에서 ‘시를 언제 쓰냐’며 채찍질을 가하기도 했다.

-같은 주제를 두고 서로가 쓴 시를 봤을 때 첫 느낌은 어땠는지?

조위래씨 : 처음에는 아버지의 시와 내 시 사이에 연관성이 없을 줄 알았다. 아버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시를 읽다보니 내가 모르던 아버지의 학창시절과 과거, 나에 대한 속마음 등이 녹아있더라. 나는 아버지와 아직 친하지 않구나, 더 알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의 흐름도 달랐다. 아버지는 주로 삶을 되돌아보고 회고하는 시를 쓰셨다.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날, 미래를 대할 각오 등을 녹여냈다. 아버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조철제 팀장 : 아들이 쓴 시를 보니, 내가 아들의 성격을 오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다롭고 비판적인 성격인줄 알았는데, 아들이 쓴 시를 읽어보니 정 반대더라. 삶을 즐기는 밝은 성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이 잘 큰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아들에게 고마웠다.

-각각 독자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혹은 스스로에게 의미 깊은 시는?

조철제 팀장 : 40개 주제 가운데 ‘아들’이라는 시를 독자에게 가장 추천한다. 아들 욕을 한참 하는 내용인데, 시를 다 쓰고 보니 내 이야기라는 내용이다.

조위래씨 : ‘아들’이라는 시가 나도 가장 마음에 든다. 나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하고, 시집을 사 읽어보면 나와 같은 20대 초반 독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이사’라는 시는 내게 의미 있는 시다. 입학과 졸업, 취업 등 시시각각 달라지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싶다는 의미의 시다. 나 자신의 상황이, 가장 친한 친구의 상황이 녹아든 시다. 이 역시 20대 초반 독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시집 부자유별 / 차주경 기자
시집 부자유별 / 차주경 기자
-이 시집은 어떻게 보면, 20세가 된 아들의 성년 기념 선물 성격도 있는 듯하다. 아들이 48세가 될 때 아버지는 77세인데, 또다른 시집을 낸다면 어떤 주제로 내고 싶은지

조철제 팀장 : 아들과 아버지가 시집을 함께 내는 것은 아마 한국 최초가 아닐까? 꼭 수십년 후 이야기가 아니라, 아들이 일본 대학교에 입학할 때, 직장 생활을 할 때, 결혼할 때 등 삶 속의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이런 시집을 내고 싶다. 그러다가 손자나 손녀가 생기면 두명이 아닌 세명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자 손녀가 엮는 시집이 될 것이다. 재미있지 않겠나. 시인 삼대(三代).

조위래씨 -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많다. 내가 아버지 나이, 중년이 된다면 아버지처럼 예전을 돌아보는 주제로 시를 쓰지 않을까 싶다.

-시집을 내고 싶지만, 어려움에 펜을 미처 못 떼는 직장인에게 선배로서 한마디

조철제 팀장 : 책을 내기 쉬운 시대가 왔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책 쉽게 낼 수 있다. 결국은 ‘마음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먼저 꼭 시도해라. 시를 쓰는 것이 두려운가?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꺼려지는가? 주저하지 말고 자신을 표현해라. 무조건 실행해봐라. 짧은 인생이니 생각날 때 실행해야 한다. 그래도 어려우면 가족과의 약속처럼 외부의 강압(?)을 하나 만들어봐라.

조위래씨 : 주변에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다. 책을 내고 싶어하는 이, 자신만의 미술전을 열고 음원을 녹음하고 싶어하는 이가 많다. 무엇이든 용기를 가지고 해보기를 바란다.

차주경 기자 racingc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