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판 뉴딜 정책에 발맞춰 규제 개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3일 발표한 '가상·증강현실(VR·AR) 분야 선제적 규제혁신 로드맵'이 그 주인공이다. 규제를 정비해 VR·AR 산업 성장을 뒷받침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2025년까지 관련 시장 규모를 14조원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환영할 만한 시도다. 낡은 규제는 보완하고 개선해야 한다. 관련 업계에 변화를 기대하고 밝은 미래를 구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는 여전히 아쉽다는 말이 나온다. 신·구 산업 간 갈등을 피하고 ‘안전한’ 길을 택했다는 평가다. 모빌리티, 핀테크, 의료 등 기존 산업과 갈등이 심한 산업을 피하고 비교적 반발이 적은 AR·VR 산업을 선제적으로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VR·AR 산업은 아직 초기란 점에서 규모가 크지 않고 비교적 논란 거리도 적은 분야다"라며 "타다 등 기존 산업과 갈등이 심화돼 있는 산업의 규제를 우선 처리하는게 나았을 듯 싶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물론 이번 정책을 출발점으로 삼아 점진적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변화는 예측하기 어렵다. 실제로 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대적인 선언에 비해 내실이 부족해 보인다.

일례로 의료 부문에서 AR을 활용한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허용한 조항에는 현지 의료 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경우로 제한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게다가 이는 규제 샌드박스로 임시 허용된 비대면 진료 서비스에 AR을 접목한 것에 불과하다.

정부는 신산업 논란이 있을 때마다 소극적 자세를 취해왔다.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 사태에도 사회적 타협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타다가 쓰러져 가는 사이 동남아 우버 ‘그랩’은 고공성장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성장에 힘입어 배달, 금융 등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한다. 덕분에 아세안 지역에서는 디지털 경제가 빠르게 크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는 전전긍긍한다. 산업이 빠르게 변하는데 법과 제도는 따라오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불분명한 규제 탓에 어떤 걸 하고 어떤 걸 하지 않아야 하는지 머리가 아프다고도 한다. 이들이 규제와 씨름하는 사이 혁신 동력은 힘을 잃는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기업은 규제개혁에 호응해 혁신을 이룰 준비가 돼 있다. 정부도 업계의 의견에 귀 기울여 적극적인 개혁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정부가 주창하는 4차 산업혁명의 성패도 여기에 달려 있다.

장미 기자 mem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