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K배터리를 위협한다. 자사 전기차에 최적화한 배터리를 직접 개발해 탑재하는 ‘내재화 전략’이 그 중심에 있다. 유럽 완성차 및 배터리 업체들도 독자 개발을 위한 투자로 공세에 나섰다.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기술 격차 벌리기로 반격을 가한다. 글로벌 완성차의 배터리 독립을 허용하지 않고, 20년 넘게 축적한 기술 경쟁력으로 K배터리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방침이다.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공장/ LG화학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공장/ LG화학
테슬라는 9월 22일 예정한 ‘배터리데이’에서 배터리 신기술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원가 절감을 목표로 배터리 독자 개발을 추진 중이다. 2월 미 프리몬트 공장에 배터리 셀 생산을 위한 시험 생산라인을 구축한 것이 알려진 후 배터리 업계의 관심을 모은다.

독일 BMW는 7월 스웨덴 배터리 생산업체 노스볼트와 20억유로(2조8000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셀 주문계약을 체결했다. 2024년부터 스웨덴 북부 셸레프테오에 있는 노스볼트 기가팩토리에서 BMW 5세대 배터리 셀을 생산·공급한다.

폭스바겐그룹도 5월 노스볼트 AB의 합작법인 ‘노스볼트 즈웨이’ 공장 건물과 기반건설 구축을 위해 4억5000만 유로(6000억원)를 투자한다. 이 공장의 배터리 셀 생산은 2024년 초 시작한다. 초기 생산능력은 시간당 16기가와트(GW)로 전망된다.

완성차 뿐 아니라 유럽 각국의 배터리 업체는 최근 정부 지원을 발판으로 전기차용 배터리 투자에 돌입했다.

영국 배터리업체 브리티시 볼트는 영국 내 40억파운드(6조1900억원)을 들여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프랑스 배터리 업체인 베르코어도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 독일 소형 배터리 업체 바르타도 정부 등으로부터 3억유로(4200억원)을 지원받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테슬라 프리몬트 공장 전경 / 테슬라
테슬라 프리몬트 공장 전경 / 테슬라
미국과 유럽의 이같은 움직임에 일부에서는 K배터리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당장 시장 변화는 없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대부분 상용화 단계가 아닌 투자 및 개발 단계에 그쳐 있어서다. 이들이 개발한 배터리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배터리 산업을 이끄는 한·중·일에 대항하기 위한 미·유럽 업체들의 도전은 실패로 끝난 바 있다.

미 최대 전기차용 배터리 업체였던 ‘A123’은 2009년 미시간주에 리튬전지 공장을 세울 당시 정부 보조금 2억4900만달러를 유치하는 등 전폭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기술력 부재로 양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A123은 결국 2012년 파산했고, 2014년 중국 최대 자동차 부품기업인 완샹그룹에 인수됐다.

폭스바겐, BMW, 벤츠 등 독일 완성차 3사도 과거 배터리 내재화를 위한 투자를 지속했지만 개발에 실패했다. 배터리 셀 제조사가 아닌 완성차 기업이 배터리 개발을 병행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LG화학은 중국과 일본 경쟁업체에 밀려 20년 가까이 적자에 머물렀다. 하지만 포기 없이 성장 가능성 하나만 보고 달려온 끝에 글로벌 시장 선두에 올랐다. 2분기에는 2018년 4분기 일회성 흑자를 낸 이후 처음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원가 구조 혁신 및 수율 정상화에 20년간 투자한 집념의 결과다.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후발주자들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 수익화가 가까워졌다는 기대감이 높다.

‘넥스트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는 진입장벽이 낮아 자본력만 있으면 누구나 진입할 수 있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장비만 있으면 반도체를 만들수 있다는 얘기와 같다. 완성차나 신규 배터리 업체가 배터리 양산에 돌입하더라도 안전성, 성능, 주행거리 등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배터리 업계는 이들이 개발한 배터리가 자체 조달 외에 장점을 기대하기 어렵고, 기존 배터리 셀 제조사 만큼의 영향력을 갖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LG화학 관계자는 "과거 사례에서 보듯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사업은 당장 경쟁력을 가지기 힘들다"며 "오랜기간 R&D 투자와 사업 노하우를 쌓아야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