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지배자 IBM에 도전하던 애플, 2020년에는 ‘빅브라더’로 묘사돼

게임·게임엔진 개발사 에픽게임즈와 모바일 앱 플랫폼의 공룡 구글·애플이 모바일 앱 수수료 문제를 두고 맞붙었다. 양측의 갈등은 최후의 한명만 살아남는 ‘배틀로얄’ 게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해졌다. 소송전도 불사한다. 에픽게임즈는 최근 구글과 애플의 독점에 맞서 싸운다는 의미로 두 회사에 각각 독점금지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게임사와 플랫폼의 정면대결, 첫 신호탄은 에픽게임즈가 쐈다. 세계에서 3억5000만명 이상이 즐기는 게임, 에픽게임즈의 대표작 포트나이트에 구글·애플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직접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 ‘에픽 다이렉트 페이’를 추가한 것이 발단이다.

에픽게임즈는 에픽 다이렉트 페이에 할인률 20%라는 파격적인 유인책을 제시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앱 다운로드 선택지가 많아지고 할인 혜택도 볼 수 있겠으나, 플랫폼 입장에서는 수수료를 전혀 받을 수 없다는 문제가 된다.

애플의 1984 광고에서 빅브라더에 망치가 날아드는 장면(왼쪽), 에픽게임즈가 최근 공개한 광고에서 빅 브라더로 묘사된 애플에 포트나이트 게임 아이템 ‘라마 유니콘 곡괭이’가 날아드는 모습 / 애플, 에픽게임즈
애플의 1984 광고에서 빅브라더에 망치가 날아드는 장면(왼쪽), 에픽게임즈가 최근 공개한 광고에서 빅 브라더로 묘사된 애플에 포트나이트 게임 아이템 ‘라마 유니콘 곡괭이’가 날아드는 모습 / 애플, 에픽게임즈
결국 플랫폼은 정책을 내세워 ‘플랫폼을 거치지 않은 직접 결제 시스템 도입을 금지’했다. 애플은 정책 위반이라며 포트나이트를 즉각 자사 앱스토어에서 내렸다. 더이상 앱스토어에서 새로 포트나이트를 내려받을 수 없게 됐다.

에픽게임즈도 맞불을 놨다. 포트나이트 홈페이지에서 애플을 상대로 65장 분량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고소장에는 ‘애플의 30% 수수료는 너무 과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비슷한 내용으로 구글에도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의 ‘1984’ 광고를 비꼰 상징적인 영상도 공개했다. 애플의 1984 광고는 상영 당시 PC 시장을 주름잡던 IBM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브라더(감시자)’로 묘사하고, 이를 파괴하는 내용을 담았다. 에픽게임즈는 영상에서 애플을 빅브라더로 묘사한다. 영상 말미에는 이런 문구도 등장한다.

"에픽게임즈는 앱스토어의 독점에 맞서왔다. 애플은 보복으로 포트나이트를 수십억대의 기기로부터 차단한다. 2020년이 '1984'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투쟁에 동참해달라"

포트나이트 앱이 플랫폼에서 내려간지 얼마 되지 않아 고소장을 제출하고 이 영상을 공개한 것으로 보아, 에픽게임즈는 이 상황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PC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 혁신과 함께 시장에 자리 잡은 30% 수수료


스팀 이미지, 스팀의 등장은 게임 유통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혁신을 일으켰다. / 스팀
스팀 이미지, 스팀의 등장은 게임 유통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혁신을 일으켰다. / 스팀
사실, 플랫폼의 30% 수수료는 게임 유통 업계에서 그동안 ‘통행료’, ‘불문율’로 여겨졌다. PC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이 등장하면서 자리 잡은 행태다.

스팀 등장 이전 게임은 CD등 물리적 저장장치에 담겨 마트에 진열돼 팔리는 상품이었다. 스팀이 게임을 디지털 형태로 유통하기 시작하면서 게임 생태계는 지금처럼 플랫폼에서 다운로드해 즐기는 모습으로 변했다.

스팀 덕에 개발사는 물리적 저장장치 생산비, 유통비 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게임 중고거래·불법복제도 큰 폭으로 줄어서 결과적으로 개발사의 이득이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7:3 수수료 비율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30%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거나, 특정 플랫폼이 독·과점적 지위를 누린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스팀은 2018년 한차례, 많은 수익을 낼수록 수수료를 최대 20%까지 인하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애플과 구글은 출범 이후 한결같이 플랫폼이 수익의 30%를 가져가는 7:3 수수료 정책을 유지한다.

구글은 오히려 한술 더 떠 자사 결제 시스템 사용을 사실상 강제하는 방향으로 게임이 아닌 일반 앱에도 30% 수수료율을 적용하려 노력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음원, OTT, 웹툰 앱도 높은 수수료를 내고 구글에 입점해야 한다. 업계 이익이 줄어들면 이용자가 부담할 금액이 커질 수도 있다.

애플·구글 측은 이 수수료 체계가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앱 배포 시 대역폭 비용, 거래 처리 비용은 물론 안전한 생태계를 제공하는 대가 등이 수수료에 포함됐다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앱스토어에서 특정 앱을 다운로드할 때 이용자는 해당 앱이 악성코드인지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플랫폼이 보증하는 덕분이다.

에픽게임즈, 자사 플랫폼·자체 유통으로 수수료 구조를 바꾸고자 꾸준히 노력

에픽게임즈 스토어 수익 배분율을 설명한 이미지 / 에픽게임즈
에픽게임즈 스토어 수익 배분율을 설명한 이미지 / 에픽게임즈
사실 에픽게임즈가 30% 수수료에 반기를 든 것은 처음이 아니다. '터질 게 터졌다'고 말할수 있다. 개발자 출신인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대표는 지금까지 수차례나 7:3 수수료 구조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개발자는 수수료를 제한 수익을 퍼블리셔 등과 또다시 나눠야 한다. 앱 서비스 비용도 든다. 기본 비용에 플랫폼 수수료까지, 뗄 것 다 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에픽게임즈는 7:3 수수료 구조를 바꾸고자 여러 실험을 시도한다. 2018년 12월에는 유통 플랫폼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출시했다.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수수료를 12%만 받는다. 이 플랫폼에서 게임을 유통하면, 언리얼엔진 사용 수수료 5%도 면제된다. 에픽게임즈가 앱스토어에서 적용했던 외부 결제 시스템도 지원해 이에 해당하는 수수료는 받지 않는다.

독점 지위를 누리던 스팀의 경쟁자가 생기면, 플랫폼 경쟁이 벌어져 소비자의 선택권, 혜택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도 예상됐다.

하지만 출시 초기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비난을 받았다. 부실한 기능, 여러 게임을 독점 제공한 탓. 한편으로는 매주 다른 게임을 무료 공개해 이용자를 모았다. 최근에는 문명6, GTA5, 아크서바이벌이볼브드 등 비싸고 유명한 게임을 풀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에픽게임즈는 자사 스토어의 모바일 버전 또한 준비하고 있다.

에픽게임즈는 2018년 말 구글에 지불하는 30%의 수수료가 과도하다며, 구글 플레이스토어 이외 다른 공간에서 게임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2020년 4월에 돌연 구글 플랫폼에 포트나이트를 선보였다. 당시 성명서에서 에픽게임즈는 "18개월간 구글 플레이스토어 밖에서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비입점 개발사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알게됐다"고 밝혔다. 구글이 비입점 게임에 불이익을 준다는 주장도 했다.

이에 대해 박성철 에픽게임즈코리아 대표는 6월 IT조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생태계를 공정하게 바꾸겠다는 의지를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다. 앞으로도 에픽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애플의 개발자 계정·도구 중단 조치, 거대 기업의 지원 사격…수수료 전쟁 결말은?

애플이 불이익을 주겠다고 통보한 사실을 알리는 에픽게임즈의 글 / 트위터
애플이 불이익을 주겠다고 통보한 사실을 알리는 에픽게임즈의 글 / 트위터
게임사와 플랫폼,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진다. 에픽게임즈가 18일(현지시각) 밝힌 내용에 따르면 애플은 28일까지 에픽의 모든 개발자 계정을 종료하고, iOS 운영체제와 맥 개발도구에서 에픽게임즈를 차단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개발자 계정, 개발 도구 사용 권한이 없으면 앱스토어용 앱을 제작할 수 없다. 새 게임을 출시하거나 업데이트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게임사와 플랫폼의 고래 싸움에 졸지에 포트나이트 이용자가 피해를 보는 모양새가 됐다.

애플은 17일(현지시간) 다수 외신에 "에픽게임즈가 스스로 만든 문제는 그들이 동의하고 모든 개발자에 적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다"라며 "애플은 소비자를 보호하는 지침보다 비즈니스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기므로 에픽게임즈에 예외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시점에서 두 회사 모두 타협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플랫폼 수수료에 문제를 제기한 단체는 에픽게임즈 하나가 아니다. 미국 하원 반독점 소위원회 위원장인 데이비드 시실린 의원(민주당)은 애플 앱스토어를 두고 날강도짓(Highway robbery)을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6월 애플 앱스토어를 반독점법 위반과 관련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스포티파이, 페이스북 등도 모두 최근 공개적으로 애플의 앱스토어 정책을 비판하며 에픽게임즈에 힘을 보태는 분위기다. 7월 29일에는 미 하원 법사위 반독점 청문회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아마존·애플·페이스북·구글 등 미국 4대 IT 대기업 CEO가 증인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이번 사건이 시장에 자리 잡은 30% 수수료 구조를 깨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해프닝으로 그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단순한 기업간 이익 다툼이 아니라 거대 기업 여러 곳이 참가하고, 정치권까지 관심을 두면서 여느 때와는 다른 규모로 일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게임 매체 폴리곤은 해설을 통해 "독점 금지법은 소비자의 이익을 위한 법이므로 구글, 애플의 관행이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주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 에픽게임즈에게 유리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또 "사실 애플이 앱스토어 관행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맞닥뜨린 지는 무려 10년이 넘었으나, 최근 미국, 유럽 지역에서 기술 기업을 규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이번 사건의 결말을 보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