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기준 8조원대 기술 수출…2017년 이후 급성장
韓 제약·바이오, 지난해 이어 올해도 기술 수출 훨훨
레고캠바이오, 알테오젠 이어 유한양행, 한미약품까지

국내 제약·바이오사의 기술 수출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풍년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혁신 신약 또는 관련 플랫폼 기술을 필요로 하는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사는 항암제와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대사성 질환 치료제, 혁신 플랫폼 기술 등에 집중하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24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8월 기준 국내 제약·바이오사 기술 수출 규모는 약 8조원대에 달한다. 지난해 한해동안 거둔 실적을 4개월 쯤 앞당긴 셈이다.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기술 수출은 2017년 1조4000억원에 불과했던 규모가 2018년 5조원, 2019년 8조원, 2020년에는 그 이상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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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美 제약사에 5000억원 규모 기술이전

가장 최근 기술 수출과 관련해 희소식을 알린 곳은 유한양행이다. 유한양행은 미국 프로세사 파머수티컬과 위장관 질환 치료 신약 후보물질(YH12852)의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최대 4억1050만달러(약 5000억원)다.

유한양행은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 200만달러(약 24억원)를 프로세사 주식으로 받는다. 개발·허가에 따른 기술료(마일스톤)를 포함해 제품 상용화 후에는 순매출의 일정 비율로 로열티를 받는다. 프로세사는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YH12852의 개발·제조·상업화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확보한다.

YH12852는 유한양행이 자체 개발한 합성 신약이다. 기존 허가 약물인 ‘시사프라이드’는 다양한 위장관 운동 질환에서 치료 효과를 나타냈지만, 심각한 심혈관 부작용이 보고되면서 약물 허가가 취소됐다. YH12852는 국내에서 전임상과 임상 1상을 진행했고, 심혈관 부작용 없이 장운동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프로세사는 내년 초 미국 FDA와 임상 개발 관련 미팅을 시작으로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증권가에선 유한양행의 이 같은 기술 이전 계약으로 회사 측의 연구개발(R&D) 역량이 어느정도 입증됐다고 보고 있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임상 2상 중단 이후 별다른 개발 진척이 없던 후보물질을 5000억원 규모로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한 점을 R&D 엑시트 전략으로 매우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아직 시장규모가 작은 기능성 위장관 치료제 시장을 공략한다는 점에서 큰 기업보다 프로세사 같은 바이오텍들의 임상 개발 진도가 더 빠를 수 있다"며 "향후 임상 결과에 따라 다국적 제약사로 또 다시 기술 이전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미약품, 1조원대 기술수출로 재기노려

한미약품은 비만·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하다가 기술 수출이 무산됐던 신약 후보물질을 간염 치료제로 다시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MSD에 바이오신약 후보물질 ‘LAPSGLP/Glucagon 수용체 듀얼 아고니스트’를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로 개발·제조·상용화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약품은 MSD로부터 확정된 계약금 1000만달러(119억원)와 함께 개발 단계별로 최대 8억6000만달러(1조272억원)를 받는다. 제품이 출시되면 두 자리 수 %의 판매 로열티도 받기로 했다.

HM12525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LAPSGLP/Glucagon 수용체 듀얼 아고니스트’는 원래 비만·당뇨 치료제로 개발됐다. 2015년 임상1상 단계에서 9억1500만달러(약 1조원) 규모로 미국 얀센에 기술 수출됐다.

얀센은 2019년 7월 이 신약후보물질의 개발 권리를 반환했다. 임상2상에서 당뇨를 동반한 환자의 혈당 조절이 내부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은 당시 "약물 개발 가능성은 충분히 입증됐다"며 방향을 새롭게 잡겠다고 밝혔다. 한미약품이 듀얼 아고니스트를 비알코올성지방간염 치료제로 MSD에 기술 수출한 배경이다.

‘플랫폼’ 내세운 알테오젠·레고켐바이오 상반기 수출규모 ‘묵직’

약물을 원하는 부위에 배달하는 약물 전달 기술(플랫폼)을 앞세운 기술 수출도 각광받는다. 이는 올해 이뤄진 기술 수출 중 가장 큰 비중의 수출 규모를 자랑한다.

그 중심에는 알테오젠이 있다. 알테오젠은 올해 상반기 4조7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기술 수출 소식을 전했다. 정맥주사제를 피하주사제로 변환하는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원천기술(ALT-B4)’에 대한 비독점적 사용권 계약으로, 파트너사는 10대 글로벌 제약사 중 한 곳이다.

ALT-B4는 기존 정맥주사용 항체나 단백질 의약품을 피하주사용으로 바꿔주는 플랫폼 기술이다. 환자가 침대에 누워 4~5시간가량 맞아야 하는 정맥주사를 배나 허벅지 등에 찔러 5분 내 투입할 수 있도록 바꾸는 형식이다.

바이오벤처 레고켐바이오는 올해 약물-항체결합(ADC) 관련 기술 수출을 두 건 성사시켰다. ADC는 항원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항체와 치료 효과를 지닌 약물을 접합하는 기술이다. 항체에 결합한 약물을 항원에 정확히 전달하도록 도와 약물 효과를 높인다.

레고켐바이오는 4월 영국 익수다 테라퓨틱스에 3개 ADC항암치료 후보물질에 적용하는 플랫폼 기술이전계약(4936억원 규모)을 체결했다. 5월에도 익수다에 스위스 항체개발 전문기업 ‘노브이뮨’과 공동개발한 ADC 항암제 후보물질(LCB73)의 글로벌 시장 독점권을 부여하는 기술이전계약(2784억원 규모)을 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