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오히려 일본 스스로 경제를 옭아매는 부메랑이 됐다. 글로벌 경쟁사가 한국을 새로운 생산기지로 선택했고, 규제에 옥죄인 일본 기업은 ‘탈(脫)일본’을 선언했다.

28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화학소재 업체 듀폰은 극자외선용(EUV) 포토레지스트 생산 공장을 국내에 짓는다. 일본 도쿄오카공업(TOK)도 인천 송도에 있는 공장에서 7월쯤 포토레지스트 생산에 돌입했다. 반도체 소재 공급에 위기를 맞은 삼성전자가 1년 만에 공급 다변화로 가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경기도 화성 소재 삼성전자 극자외선(EUV) 전용 반도체 생산라인 전경/ 삼성전자
경기도 화성 소재 삼성전자 극자외선(EUV) 전용 반도체 생산라인 전경/ 삼성전자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기판에 바르는 감광액이다. 삼성전자의 7나노 EUV 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소재다.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한국 수출시 포토레지스트를 일반포괄허가 대상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변경하며 한국 기업 압박에 나섰다.

포토레지스트 시장은 JSR(일본합성고무의 후신)·신에쓰·TOK 등 일본 기업이 글로벌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규제 당시만 해도 국내업체가 이들 외에 포토레지스트를 공급받을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국산화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투자와 함께 공급처 다변화를 통해 이를 극복하는 중이다.

듀폰은 2021년까지 2800만달러(332억원)를 투자해 충남 천안에 EUV 포토레지스트 생산 시설을 구축한다. 7월에 첫 양산품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듀폰의 투자 결정은 정부의 역할이 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듀폰과 직접 접촉해 투자 유치를 확정지었다.

TOK는 인천 송도에 있는 삼성물산과 합작법인 TOK첨단소재에서 포토레지스트를 생산 중이다. 자국 정부의 수출규제 기조에도 한국 내 제품 생산을 늘리고 있다. 안정적 공급망을 원하는 삼성전자와 굳건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듀폰이 한국에 포토레지스트 생산 시설 구축에 나서면서 TOK로써는 최대 납품처인 삼성전자를 놓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직원이 클린룸 반도체 생산라인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전자 직원이 클린룸 반도체 생산라인 사이를 걸어가고 있다./ 삼성전자
더딘 측면이 있지만 포토레지스트 국산화도 이뤄지고 있다. 불화크립톤(KrF) 감광액을 상용화한 동진쎄미켐은 추가로 불화아르곤(ArF) 감광액을 업계에 최근 공급하고 있다. 이 업체는 EUV 포토레지스트 직전 단계인 반도체용 불화아르곤 액침 포토레지스트를 2010년 국내 최초로 개발·생산한 소재업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초미세공정 단계에서 쓰는 포토레지스트는 국산화까지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7년 말 협력사 지분투자 개념으로 동진쎄미켐에 483억원을 투자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추가 지분투자로 소재 국산화를 앞당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포토레지스트 국산화를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공급다변화를 위해 다양한 대안을 찾겠다는 입장이다"라며 "TOK 생산 확대와 듀폰의 투자로 공급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