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카드용 GPU(그래픽 프로세서 유닛) 개발사에서 엔터프라이즈 데이터센터 분야 핵심 솔루션기업으로 성장한 엔비디아를 보면 참 대단한 회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픽 출력용으로나 쓰던 GPU를 연산 가속 장치로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어느새 인공지능(AI) 연구개발의 선도주자로 등극해 유서 깊은 IT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말이다.

실적도 눈부시다. 지난 19일(현지시각) 공개한 2021회계연도 2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전년 동기 대비 50%나 증가한 38억7000만 달러(4조6045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1분기와 비교해도 39% 상승하며 코로나 19라는 악재 속에서도 날아올랐다.

고무적인 것은 이번 분기에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이 처음으로 게이밍(그래픽카드) 부문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고속 네트워크 솔루션 전문 기업 멜라녹스를 인수한 것이 제대로 통했다는 분석이다. 확실하게 ‘데이터센터 솔루션 전문기업’으로 거듭난 모양새다. 주가도 21일 기준 500달러를 돌파했다. 시가총액에서도 삼성전자를 제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하는 중이다.

놀라운 성장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를 보면 현재 ICT 업계의 토대를 쌓아온 IBM,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IBM, HP 등에서 느껴지는 관록이나 존경스러움 등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신흥 강자’라 그런 것은 아니다. 해당 분야의 기술력과 그로 인한 성과,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 등은 저들과 비슷하면 비슷했지, 못할 수준이 아니다.

엔비디아의 GPU는 AI 연구개발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지도와 수요를 자랑한다.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용 A100 텐서코어 GPU / 엔비디아
엔비디아의 GPU는 AI 연구개발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지도와 수요를 자랑한다.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용 A100 텐서코어 GPU / 엔비디아
엔비디아의 행보를 살펴보면 ‘베풂’에 매우 인색하다. 시장과 소비자들이 자사의 제품과 솔루션을 선택함으로써 짧은 세월 빠르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런 기술들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혜택 보다는 단지 기술적 가치와 시장논리만으로 산정한 비싼 청구서뿐이다.

대표적인 것이 엔비디아의 본업이자, 여전히 주력 사업인 게이밍(그래픽카드용 GPU) 부문이다. 최근 차세대 신제품인 ‘지포스 30시리즈’의 정식 발표를 앞두고 ‘예상 가격’에서 잡음이 적지 않다. 주요 라인업의 가격이 이전 ‘지포스 20시리즈’보다 최소 100달러(11만8900원)에서 최대 400달러(47만5700원) 이상 오를 것이라는 소식에 세계 각국의 하드웨어 커뮤니티에서는 거의 한목소리로 ‘너무 비싸다’라는 의견이 쏟아져나왔다.

이미 엔비디아는 이전 세대인 지포스 20시리즈에서 ‘실시간 레이트레이싱’과 AI 기반 화질 개선 기능인 ‘딥 러닝 슈퍼샘플링(DLSS)’ 등의 신기술 도입과 이를 위한 RT코어, 텐서코어 등의 구성요소 추가로 가격을 대폭 올린 바 있다. 20만원대 전후였던 메인스트림급 그래픽카드의 가격은 어느덧 40만원 전후로, 60만~80만원 하이엔드급 그래픽카드의 가격은 100만원 중반대까지 오른 상태다.

그 때문에 차세대 지포스 30시리즈에서는 가격이 최소 동결 내지 소폭 인상에 그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가격이 대폭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터져나왔다. 스마트폰으로 치면 매년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가격을 두 자릿수 단위로 올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경쟁사의 부진이 장기화하고, 반독점에 가까운 상황이 되니, 가격 상승을 억제하던 브레이크가 풀린 모양새다.

일반 소비자 시장뿐만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GPU를 활용한 딥러닝, 머신러닝 등 AI 연구개발이 활성화되고, 그로 인해 GPU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하던 지난 2018년 초, 엔비디아는 갑작스럽게 라이선스 정책 변경으로 일반 소비자용 GPU(그래픽카드)를 AI 연구개발에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못을 박았다. 기업이나 연구소 등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고가의 연산용 GPU 대신 일반 GPU를 연구개발용으로 사용하자 퇴짜를 놓은 것. 그 때문에 예산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일반 GPU를 사용했던 중소규모 연구실 및 학교 연구실 등의 큰 반발을 산 바 있다.

자사의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시 다양한 유상·무상적 지원을 약속한다. 하지만, 대신 경쟁사 제품을 노골적으로 배제하라는 반 강압적인 마케팅을 비밀리에 추진하려다 해당 경쟁사 및 언론을 통해 사전에 들통나자 부랴부랴 취소한 바도 있다. 그렇다 보니 필요할 때는 전폭적인 협력도 마다하지 않는 ITC 업계에서 유독 적을 많이 둔 기업이기도 하다.

왜 기업을 대표하는 창업자이자 CEO가 관심 있는 대중들 사이에서 ITC 업계의 노련한 전문가나 본받을 만한 리더, 최신 기술의 선구자 등의 이미지보다는 ‘치밀한 장사꾼’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까. 기업의 존재 의의인 기술적, 금전적, 양적 성장에는 충실했지만, ‘선한 기업’으로서의 노력은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소프트뱅크가 매물로 내놓은 ARM의 차기 인수 후보로 엔비디아가 매우 유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업계 관계자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