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집단휴진에 ‘업무개시명령’ 카드 꺼낸 정부
새벽까지 이어진 면담에도 입장 차 못좁혀
빅5 병원, 파업에 외래 진료·비()응급 수술 줄여
전공의·개원의에 이어 전임의까지 ‘의료공백 불가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등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26일부터 28일까지 집단휴진에 돌입했다. 지난 21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 전공의(인턴·레지던트), 개원의, 전임의까지 참여하면서 대규모 의료공백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며 의료계 조이기에 나섰다.

26일 의협에 따르면 의료계는 이날부터 28일까지 제2차 전국의사총파업을 실시한다.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야외 집회나 모임은 하지 않고, 비대면으로 진행키로 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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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파업은 정부 불통에 항의키 위한 유일한 수단"

의료계가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정부의 의대 증원, 공공의대 설립,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육성 등 4가지 정책 철회를 위해서다. 의협은 이날 파업에 대해 "정부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결정이다"라고 밝혔다. 정부 불통에 항의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만큼, 부득이하게 단체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의협 관계자는 "보다 빠르고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 국무총리, 보건복지부 장관과 만나 의료계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지만,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며 "부족한 부분은 담대하게 인정하고 의료계가 최소한의 신뢰를 가질 수 있는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신뢰와 존중의 관계로 발전적으로 전화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하며 "언제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국내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한 데 따라 의료계에 단체행동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남에 따라 의료계와 전날부터 오늘 새벽까지 대화를 진행했지만 의료정책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공백 불가피…외래진료 영향·수술 줄인 병원들

이번 의료 총파업으로 인해 의료 공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병원 163곳, 전공의 1만277명 중 5995명(58.3%)이 이날 휴진했다. 전임의 휴진율은 6.1%(2639명 중 162명)다.

동네의원 파업 참여율이 관건이다. 지난 14일 1차 파업 당시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의 약 3분의 1정도(약 33%)가 휴진했다.

정부는 동네의원 휴진율이 상승하면서 의료공백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비상 진료 대책을 구축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비상 진료 대책을 세워서 보건소를 중심으로 한 의료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병원들은 의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수급 의료진과 입원 전담 전문의 등을 활용하고 진료·수술 일정을 조정했다. 실제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주요 대형 병원들은 비()응급 환자의 수술 일정 연기, 수술 건수 조정 등 대비에 들어갔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외래 진료는 교수님들이 보고 있지만, 통상 전임의가 하는 역할까지 도맡다 보니 진료 지연이 발생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술의 경우, 상대적으로 덜 위급한 수술은 잡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하다보니 수술 건수가 평소 대비 60~70% 가량 줄어든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전공의와 전임의가 응급수술 등 필수 분야에 대해서는 남아주기로 했다는 것이다"라며 "이 부분에선 진료공백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정부 "진료 한다고? 그럼 징역 또는 벌금형"

의료계의 집단반발에 보건복지부는 26일 오전 8시를 기해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소재 수련병원에 근무 중인 전공의·전임의를 대상으로 즉시 환자 진료 업무에 복귀할 것을 명령하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정부는 수도권 수련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부터 현장조사를 통해 근무여부를 확인하고 개별적 업무개시명령 후 이행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이후 수도권 수련병원의 수술·분만·투석실, 비수도권의 응급·중환자실, 비수도권의 수술·분만·투석실 순으로 개별적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한다는 방침이다.

개별적 업무개시 명령 불이행시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1년 이하 면허정지, 금고이상 면허취소 등 조치가 가능하다.

정부는 이 밖에도 개원의를 포함한 의료기관의 집단휴진을 계획·추진한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대상으로 공정거래법 위반 신고 및 의료법에 근거한 행정처분 등도 실시한다. 공정거래법은 구성사업자의 사업내용 또는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정부는 의협이 1, 2차 집단휴진을 결정하고 시행한 것은 ‘부당한 제한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업무개시명령 등 필요한 법적 조처를 할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국민과 의료계 모두가 불행해지는 불필요한 갈등과 소모적 다툼은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로 인한 의료계 반발은 오히려 증폭할 것으로 보인다. 8월 14일 총파업에 앞서 정부가 업무개시명령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 최대집 의협 회장은 개인 SNS에 "만약 13만 의사회원 단 하나의 의료기관이라도 업무정지 처분을 당한다면 의협 13만 회원들의 의사 면허를 모두 모아 청와대 앞에서 불태우겠다"며 "의료기관이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14일동안 13만 의사 회원 모두 업무를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이런 폭압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는 의료법 59조인데, 이는 의료인들의 단체행동권을 부정하는 악법이다"라며 "이번 대정부 투쟁을 통해 이 악법을 철폐시키고 의사들의 단체행동권이라는 자유시민의 권리를 되찾아야겠다"고 강조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