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통신사업법 입법을 예고하자 일부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반발했다. 모호하고 과도한 법규정으로 사업의 예측가능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의견 수렴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사업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는 입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8일 개정 전기통신사업법 시행에 필요한 세부사항을 정하고 중소·벤처기업의 IoT 분야 진입장벽 완화 등을 위해 마련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9일부터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현판 / 과기정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현판 / 과기정통부
이번 개정안은 부가통신사업자의 서비스 안정성 확보 등을 위한 조치, 유보신고제(15일내 약관 신고 반려 가능) 도입에 따른 반려의 세부기준, IoT 서비스 재판매사업 진입장벽 완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가장 논란이 있는 조항은 바로 ‘넷플릭스법'으로 불리는 부가통신사업자의 서비스 안정성 확보 조치 내용이 담긴 제22조의7항이다.

과기정통부는 부가통신사업자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제22조의7 신설에 따라 적용대상이 되는 기준과 필요한 조치사항 등 법률에서 위임된 사항을 규정했다.

서비스 안정성 확보에 대해 실질적 수단과 능력을 보유한 필요최소한의 법 적용 대상 사업자를 선별할 수 있도록 이용자 수와 트래픽 양 기준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는 2019년도 말 3개월간 일평균 이용자 수와 트래픽 양이 각각 100만명 이상이면서 국내 총 트래픽 양의 1% 이상인 부가통신사업자를 적용 대상으로 정했다. 5~7월 트래픽양 기준 대상사업자는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네이버, 카카오 등 5개 사업자다.

시행령에는 이용자가 이용환경(단말, ISP 등)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 받도록 부가통신사업자가 취해야 할 필요한 조치를 서비스 안정수단의 확보를 위한 조치와 이용자 요구사항 처리를 위한 조치로 구분해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서비스 안정수단 확보를 위한 조치사항은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트래픽의 과도한 집중, 기술적 오류 등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 ▲트래픽 양 변동 추이를 고려해 서버 용량, 인터넷 연결의 원활성 등에 대한 안정성 확보 ▲안정성 확보를 수행함에 있어 필요한 경우 기간통신사업자를 포함한 관련 사업자와 협의하고 트래픽 경로 변경 등 서비스 안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 사전 통지 ▲안정적인 전기통신서비스 제공에 관한 자체 가이드라인 마련 등이 있다.

이용자 요구사항 처리를 위한 조치사항은 ▲온라인·ARS 채널 확보 ▲장애 등 서비스 안정성 상담 제공을 위한 연락처 고지 ▲이용자가 생성한 지능정보화기본법 제2조제4호 나목에 따른 데이터에 대한 전송을 요청하는 경우 이를 이용자가 전송 받을 수 있는 절차 마련 ▲유료 서비스 이용자에 대해 복수 결제·인증수단 제공 등으로 정했다.

하지만 일부 CP들은 이같은 입법예고에 강하게 반발하며 반대 성명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들은 규정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CP업계 한 관계자는 "다 반대다"며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유의미한 내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3호에서 기간통신사업자도 아니고 관련사업자까지 넓혀서 협의하고 사전통지하는 의무를 부여한 것은 계약관계도 없는 ISP에 전화해서 상의하라는 것이다"며 "트래픽의 ‘과도한 집중', ‘콘텐츠의 전송량 최적화', ‘서버의 다중화', 연결의 원활성' 등 불확실한 표현들도 많다"고 말했다.

또 "가장 큰 문제는 이용자가 단말, ISP 등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 받도록 하도록 하라는 것이다"며 "단말 제조사도 기간통신사업자도 못하는 것을 부가통신사업자에 하라는 것은 불가능한 의무를 일정규모 이상 부가통신사업자에 강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CP들은 대상사업자를 국내 총 트래픽 양의 1%로 한 것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간사업자인 이통3사에서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정부가 규제대상을 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제공사업자(ISP)들은 시행령 제정을 반기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ISP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을 포함한 일정규모 이상의 CP에 대해 서비스 안정성 확보와 이용자 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조치를 마련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다만, 사업자간 계약원칙 등 더욱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나, 이번 시행령에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실효성·역차별 논란 선긋는 정부

정부가 해외 사업자를 대상으로 집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있다. 법 위반시 부과하는 과태료가 2000만원에 불과해 실효성이 있겠냐는 것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법 미이행 시 시정조치를 내리고, 이행을 하지 않을 경우 2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며 "해외사업자는 국내 대리인을 반드시 지정해야 하며, 위반 시 벌칙·시정명령·행정명령이 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시행령 만드는 과정에 글로벌 CP들이 국내 CP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정도로 사업자들이 느끼는 책임감이 크다"며 "막대한 가입자를 갖고 있는 만큼 서비스 문제가 발생했을 땐 2000만원 이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단순히 과태료 규모만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법학과)는 "해외사업자 규제가 집행력을 갖기 위해선 끊임없이 하는게 중요하다"며 "적은 금액이라도 가랑비 옷 젖듯이 꾸준하게 규제해야 하며 정부가 합리적인 법안을 만들어 규제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시행령이 역차별 논란이나 통상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한미 FTA 관련해 내부 직원은 물론 로펌 관계자도 참여해 통상문제를 주의깊게 봤고, 서버 현지화를 의무화하지 않았으므로 FTA 위반과는 상관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또 "프랑스에서는 규제 대상이 외국기업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며 "특정국가의 특정기업 목표로 해서 시행령을 규정한 것은 아니고 국내외 사업자를 막론하고 일정규모 이상 부가통신사업자를 규율대상으로 해서 통상문제가 없는 것으로 검증받고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국내외 사업자 모두 이 법에 대해 우려가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국내 사업자들은 이미 상당한 조치를 취하고 있어 시행령 대다수의 조건들을 충족하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도 역차별 논란이 없도록 계속 설명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10월 19일까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